LIFESTYLE

차를 부숴야 사는 자동차 스턴트 세계

차를 망가뜨리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스턴트맨이다. 크고 화려하게 부술수록 칭찬받는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2019.01.28

 

<베이비 드라이버>, <택시>, <트랜스포터>. 눈치챘나? 자동차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들이다. 이 외에도 컴퓨터 그래픽을 지양하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다크 나이트>를 촬영하며 15톤짜리 트레일러를 실제로 전복시킨 장면이나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에서 수십 대의 차가 빌딩에서 우수수 추락하는 장면은 자동차 액션의 백미로 꼽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끝내주게 멋진 자동차 액션 장면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건 대체 어떻게 찍는 거지?”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스턴트의 역사는 길지 않다. 90년대 중후반 정두홍 무술감독을 필두로 스턴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싹을 틔웠다. 그 싹이 자라 서울액션스쿨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스턴트 일은 어렵다. 위험천만한 장면을 도맡아 하지만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잘못 나오는 경우도 많다. 골절과 흉터를 훈장처럼 생각하는 그들을 만나 자동차 액션 촬영 방법을 물었다. 처음에는 영업 비밀이라며 말하길 꺼리더니 어느새 ‘그게 사실은…’이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전복 | 점프대&에어 캐넌

자동차 액션 중 난도가 가장 높다. 난도가 높다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달리는 차를 뒤집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점프대를 이용하면 차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주행 방향 그대로 날아가며 뒤집힌다. 일정 속도로 달려 미리 설치해놓은 점프대를 밟으면 차가 비스듬히 기울며 공중을 날게 된다. 방향은 예측할 수 있지만 달려오던 속도에 따라 날아가는 거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약속한 속도로 점프대를 밟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도 예쁘지 않고 촬영 스태프가 위험할 수 있다. 에어 캐넌은 말 그대로 압축한 공기를 쏘아 차를 뒤집는 걸 말한다. 점프대와 다른 점은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뒤집히며 옆으로 회전한다는 점이다. 더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운전자가 직접 버튼을 눌러 작동시켜야 한다는 게 문제다. 촬영 동선 따라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와중에 버튼을 눌러야 하므로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타이밍을 놓치면 차가 뒤집히지 않는다. 승용차뿐만 아니라 버스나 덤프트럭도 가능하다. 영화 <황해>에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가 전복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두홍 무술감독의 작품이다. NG를 내지 않기 위해 촬영 전 사비로 트럭을 구해 연습했다는 후문이다.

 

 

드리프트 | 레버식 주차 브레이크

영화에 사용되는 드리프트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뒤로 달리다가 진행 방향은 유지한 채 차 앞머리와 엉덩이 위치를 바꾸는 ‘리버스 턴’, 주차된 차 사이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할 때 사용하는 ‘J턴’ 등 어떤 라인을 그리며 타이어 자국을 내느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진다. 하지만 꺾고 멈추고라는 기본 원리는 같다. 이때 필요한 장비가 레버식 주차 브레이크다. 만약 촬영 팀에서 준비해놓은 차에 레버식 주차 브레이크가 없는 경우 공업사에서 개조해야 한다. 보통 드리프트는 후륜구동 차로 하지 않냐고 묻자 “제가 15년 전 처음 드리프트를 배울 땐 후륜구동 차가 드물었어요. 당연히 영화 촬영할 때 쓰는 차도 후륜구동이 아니었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브레이크 말고도 손보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쇼크업소버다. 서스펜션이 너무 무를 경우 드리프트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할리우드 스타일

 

추락 | 케이블과 고임목

“예전에는 추락 직전에 뛰어내렸어요. 아니면 진짜 차랑 같이 떨어지거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죠.” 송민석 무술감독의 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초창기에는 정말 그랬다. 실제로 촬영 중 강으로 추락한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례가 있다. 요즘은 아니다. 케이블을 이용해 차를 끌어당기거나 운전대를 고정하고 가속페달에 고임목을 설치해 차를 움직이게 한다. 심지어 원격조종이 되는 차도 나왔다.

 

 

충돌 | 담력과 신뢰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준비물이 ‘담력과 신뢰’라니.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다. “충돌 장면은 진짜로 부딪혀요. 타이어 같은 완충재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실감이 살지 않아 별로 쓰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심하게 충돌하진 않는다. 액션 연기를 할 때 주먹이 스치기만 해도 맞는 사람이 멀리 나가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앞서 말한 것들과 달리 충돌 장면은 팀원 간 호흡이 중요하다. 예외는 있다. 어차피 망가질 차라는 이유로 상태가 좋지 않은 차로 촬영에 임하곤 하는데 살짝 부딪혔는데도 차축이 휘거나 바퀴가 빠지는 경우다. 그럴 땐 새로운 차가 공수될 때까지 촬영이 잠시 중단된다. 


Q&A 권귀덕&송민석 무술감독

송민석

 

자동차 스턴트 전문인가? 자동차 액션을 자주 하긴 하지만 전문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색하다. 아직 전문이라고 할 만큼 세분화돼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액션 말고 다른 것도 다 한다. 자동차 액션에 애착이 조금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자동차 스턴트를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정보는 주로 해외 유명 액션 영화 메이킹 필름을 찾아보거나 유튜브를 뒤져가며 얻는다.

 

연습은 어떻게 하나? 사실 자동차 액션은 연습하기 어렵다. 주먹을 주고받는 건 시간만 주어지면 수십 번이라도 합을 맞춰볼 수 있지만 자동차는 다르다. 연습하다가 차가 망가지면 상황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으려 노력한다. 그렇다 보니 실전을 통해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스턴트 경험이 없는 후배가 들어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는 건 아니다. 후배와 함께 내 차를 끌고 한적한 공터로 간 다음 요령을 전수하는 식이다. 연습 중 발생하는 비용(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등)은 전부 개인 부담이다. 예전에 어떤 후배는 연습한다고 산 지 얼마 안 된 새 차를 끌고 왔다가 사고로 반파된 적이 있다.

 

권귀덕

 

듣기만 해도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위험하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동차 스턴트는 할 때마다 긴장되고 떨린다. 보호 장구와 4점식 안전벨트, 롤케이지를 전부 갖추고 촬영에 임하는데도 기절하기 일쑤다. 지난해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영화에서 그랬다.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튀어 올라 공중에서 1바퀴 반을 돌고 떨어졌는데 추락 지점을 잘못 계산해 땅에 부딪히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원래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온 것처럼 7바퀴 반을 구르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지만 영화에는 꽤 그럴싸하게 나와 다행이었다.

 

할리우드는 다르다던데? 마블의 <블랙 팬서>가 부산에서 촬영할 때 할리우드식 자동차 스턴트를 직접 봤다. 영화 산업의 규모가 달라서 그런지 촬영 준비부터 남달랐다. 예들 들면 스턴트에 필요한 장비나 차 세팅을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다. 한국에서의 촬영을 위해 장비를 전부 본토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느리더라도 안전하고 꼼꼼하게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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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호준PHOTO : Heyhoney(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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