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너와 나의 적정 거리

안전거리는 외우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겐 100m도 부족하고, 누군가에겐 30m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자기 차에 대한 이해와 운전에 대한 집중력이다

2019.02.15

 

벌써 다섯 살 숙녀가 된 이든이는 요즘 차 안에서 주변 이정표나 간판을 읽는 게 취미다. 덕분에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동네 지하도와 터널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됐다. 이든이는 운전석 뒤에 단 유아용 시트에 앉는다. 그런데 시트 적정 거리를 조절하기 어렵다. 가까우면 새로운 터널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신이 나서 내 등받이를 걷어차고, 멀어지면 엔진 소리에 묻혀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요샌 손잡고 나란히 걷는 시간도 많아졌다. 마지막으로 유모차에 태운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내 보폭이 조금 커지기라도 하면 곧장 깔깔거리며 달리기 시작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그런데 함께 뛰다 보면 나와 부딪치는 경우가 생긴다. 뛰는 아이를 멀리 두기도 불안하고, 가깝게 두자니 충돌이 일어나고 만다. 우리 둘이 유지해야 할 적절한 거리는 어디쯤일까? 아이의 행동이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며 생각이 많아진다.

 

자동차 레이스 중에는 상대와의 거리 개념이 센티미터(cm) 단위로 쪼개진다. 공기저항을 덜 받기 위해 범퍼가 닿을 만큼 바짝 붙거나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실수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오래 유지하면 라디에이터를 통과해야 할 주행풍까지 줄어들며 냉각 성능이 떨어지므로 적절한 계산이 필요하다. 자리싸움을 위해 두 대의 차가 코너를 나란히 들어가는 상황도 많다. 서로의 사이드미러가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궤적을 그리는 장면에선 보는 이도, 타는 이도 모두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가끔은 여러 대의 레이스카가 기차처럼 일렬종대로 꼬리를 물고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국의 나스카 시리즈나 호주의 V8 슈퍼카 시리즈의 초근접전을 단연 최고로 꼽는데, 레이스카로 만든 뱀이 코너를 휘감아 도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가끔 대형 다중 추돌사고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접촉이 발생해도 상처가 나지 않거나 가벼운 긁힘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의외의 결과는 무엇 때문일까? 레이스카들의 주행속도는 매우 높지만 각 레이스카 사이의 상대 속도 차이는 아주 낮기 때문이다. 상위권 드라이버들은 트랙의 모든 영역을 거의 비슷한 스피드로 달린다. 시속 220km로 달리는 앞차를 시속 222km의 속도로 부딪혀도 상대 속도 차이가 시속 2km에 불과해 범퍼에 스크래치도 잘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흔히 생각하는 안전거리보다 비이성적으로 가까운 근접전을 과감하게 펼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럼 일반 도로에서의 적정 차간거리란 어느 정도일까? 제한속도 시속 100km인 고속도로에서는 100m의 차간거리를 권장하고 있다. 그다지 와닿는 문구는 아니다. 그렇게 넓게 잡으면 끊임없이 다른 차가 들어오기 때문에 지킬 수가 없다. 게다가 이는 성문법도 아니다. 도로교통법 19조에 따르면 앞차가 갑자기 정지하는 경우에 충돌을 피할 수 있는 필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몇 미터’라는 식으로 정해진 법령은 없다. 대신 급정지하는 앞차에 추돌하면 안전거리 미확보가 된다. 앞차와 100m의 거리를 두어도 누군가는 앞차를 들이받을 수도 있고, 30m를 유지하다가도 누군가는 여유 있게 멈출 수도 있다.

 

차간거리는 외우지만 정작 자신이 정지할 때까지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마른 노면에서 일반 승용차의 경우라고 가정하면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완전히 멈춰 서는 데에는 약 50m가 필요하다. 하지만 고정벽에 부딪히는 초현실적 상황이 아니라면 속도를 줄이는 동안 앞차 역시 더 이동하게 되므로 뒤따르는 차에게 필요한 안전거리는 50m보다 짧아도(실제로는 훨씬 더 적다) 된다. 물론 이는 기후나 정비 상태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보단 운전자가 전방 주시를 얼마나 잘하고, 감속 상황을 빨리 인지하며, 얼마나 강한 제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독일 아우토반에선 30m보다도 짧은 차간거리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앞차의 앞차 흐름까지 읽으며(윈도 틴팅을 하지 않는 차가 많아 상대적으로 파악이 용이하다) 속도 무제한이라는 야생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상대 속도에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 실정은 어떤가? 실현 불가능한 안전거리 홍보보다 최대 제동력을 익힐 수 있는 운전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강한 제동을 하지 못하는 운전자나 시커먼 유리창 속에서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긴 운전자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대로는 100m도 부족할지 모른다.글 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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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강병휘PHOTO : 최신엽(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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