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등잔 밑이 어둡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조등 스위치를 깜박 잊는 운전자가 늘고 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안전을 위해 점등 유무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다

2019.03.19

 

지난 설 명절, 민족 대이동의 흐름에 우리 가족도 동참했다. 똑똑해진 내비게이션 덕분에 정체 구간을 피해 낯선 지방 국도를 달릴 일이 많아 은근히 즐거웠다. 요즘 국도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편안하다. 고속화 국도는 차로폭이 넉넉하고 중앙분리대도 갖췄으며 포장 상태도 깨끗하고 신호등도 적다. 국도를 여유롭게 달리다 보면 평소 보기 힘든 높은 연비에 도달하곤 한다. 아내와 이든이랑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덤이다. 하지만 잔잔한 비행 중 으레 한 번은 만나는 불안정 기류처럼, 어둠 속 국도에선 정신이 번쩍 드는 스텔스 모드의 차를 종종 만난다. 헤드램프를 켜지 않고 암흑 속 박쥐처럼 자기 길만을 달리는 자동차 말이다.

 

이런 ‘박쥐 차’는 오래전부터 드문드문 존재해왔다. 과거에는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주행 중 전구가 나가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운전자는 스위치를 켰지만 램프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은 양상이 다르다. 램프 스위치를 켜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계적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의 조작 미숙이다. 어째서 이런 경우가 많아진 걸까?

 

여기엔 조명 기술과 관련된 역설적 배경이 있다. 오토라이트, 상시 조명 계기반, 주간주행등 이 세 가지 조명 기술의 대중화가 엉뚱하게도 오늘날 박쥐 차를 만들고 있다. 자동화는 운전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운전자를 외부 환경에 덜 민감하게 만든다. 자동 점등 기능이 있는 전조등의 자동차를 오래 타면 운전자 스스로 라이트 스위치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쉽게 잊고 만다. 항상 알아서 켜지니 막연히 지금도 라이트는 오토 모드에 있을 것이라 믿거나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비소나 발레파킹, 대리운전 등 타인에게 잠시 차를 맡겼다가 라이트가 오토가 아닌 오프 상태로 되돌아왔을 때에도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옛날 자동차라면 아마 계기반을 보고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차들은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고급차의 기본 장비처럼 여겨지는 LCD 디지털 계기반은 물론, 대중적인 아날로그 계기반도 헤드램프가 꺼져 있을 때에도 빛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앞창 너머 도로가 컴컴하다면 운전자가 문제를 쉽게 알아차릴 수도 있을 테다. 하나 비극적이게도 요즘 차는 주간주행등이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차선이 그럭저럭 보인다. 외부가 어두울수록 주간주행등은 더 밝게 느껴진다. 그렇게 운전자는 자신이 몰고 있는 자동차가 스텔스 모드로 달리고 있음을 상상도 못한 채 도로 위 차량 사이에 스며든다.

 

난 이런 차를 만나면 되도록 라이트가 꺼져 있음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운이 좋아 신호등 앞에서 나란히 서게 되어 창문을 열고 이야기를 꺼내면 십중팔구 알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지금 라이트 켜져 있지 않나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볍게 웃고 넘기거나 한심하다고 혀를 찰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신 또는 당신의 가족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범적인 정답은 운전자가 차의 상태를 항상 꼼꼼하게 챙기는 운전 습관을 갖는 것이지만, 타성에 젖은 인간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계기반 어딘가에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표시되는 초록색 전조등 아이콘을 매번 확인한다는 건 의외로 힘든 과제일 수 있다.

 

만약 자동차 제조사가 나서서 친절을 베풀면 어떨까? 오토라이트 센서를 이용해 주위가 어두운데도 전조등을 켜고 있지 않을 때 경고 메시지를 띄워준다면? 혹은 시동을 걸 때마다 헤드램프 스위치를 오토로 강제 복귀시키고 사용자 필요에 따라 한시적으로 끌 수 있게 설계를 변경한다면? 최근 소수의 해외 브랜드가 이런 개념의 헤드램프 스위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화려해져 가는 등잔(조명 기술) 밑에서 어둠의 질주를 하는 운전자가 늘고 있나 보다.글 강병휘(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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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강병휘PHOTO : 최신엽(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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