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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시뮬레이터가 뭔가요?

제아무리 카레이서라도 매일 서킷에 가기는 어렵다. 그럴 때 이용하는 게 레이싱 시뮬레이터다. 그냥 게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분명 훈련의 일부다

2019.03.27

 

<모터트렌드> 2018년 11월호에 강병휘 선수가 쓴 ‘취하지 않아도 취했습니다’라는 칼럼이 실렸다. 내용은 간단했다. 맥주 반 캔을 마신 후 서킷을 달려 평상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신은 멀쩡한데 랩타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떨어졌다. 그는 결국 원래 기록보다 2%나 느린 기록으로 주행을 마무리했다. 2%면 프로의 세계에선 일등과 꼴찌의 차이보다 크다.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주행 데이터를 확인했더니 브레이크 압력, 코너 진입 각도, 트랙 사용 폭 등 여러 부분에서 미숙했다. 그는 실험 결과를 통해 ‘음주 단속에 걸리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의 알코올도 알게 모르게 운전에 영향을 준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까 싶어 밝혀두자면 그는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그는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이용했다.

 

레이싱 시뮬레이터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레이싱 게임과 모양은 비슷하되 현실성이 훨씬 뛰어나다고 이해하면 된다(값도 훨씬 뛰어나다). 레이서들이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아이 레이싱’과 ‘아세토 코르사’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그란투리스모나 프로젝트 카스와 비교해 게임적인 요소가 적고 현실에 가깝다. 아세토 코르사를 예로 들면, 계기반에 표시되는 정보 외에도 타이어 온도, 페달 압력 등 레이싱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무리한 변속을 반복하면 변속기가 고장 나거나 엔진이 퍼지기도 한다. 충돌에 대한 피드백도 명확해서 범퍼카 몰듯 함부로 운전하다가는 금세 차가 망가진다. 시뮬레이터에 대해 알아갈수록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지만 한 대에 1000만원이 훌쩍 넘는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탓에 영접할 방법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을 찾았다. 레이싱팀이 시뮬레이터를 마련해 운영하는 경우는 국내에선 인디고 레이싱팀이 유일하다. 대부분은 선수가 개인적으로 구매해 사용한다. 지난해 슈퍼레이스 캐딜락 6000 클래스 우승자인 김종겸 선수도 최근 거액을 들여 시뮬레이터를 마련했다. 시뮬레이터 덕분인지 지난해 인디고 레이싱팀은 TCR 코리아에서 초대 챔피언을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블랑팡 GT에서도 포디움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시뮬레이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휠, 모션기어, 거치대다. 휠에는 페달도 포함된다. 손맛을 결정하는 장치가 휠이기 때문에 브랜드와 종류가 다양하다. 실제 경주차는 성인 남성도 돌리기 뻑뻑할 만큼 운전대가 무거운데 시뮬레이터 역시 그렇다. 공업용 모터를 사용해 개조한 휠의 경우 카운터 스티어링을 할 때 운전대를 잡은 손을 다칠 만큼 강한 반발력을 구현해낸다. 페달 또한 유압식 쇼크업소버를 적용하면 밟는 느낌이 한결 단단해진다. 모션기어는 휠을 통해 입력된 레이서의 움직임을 게임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물리 엔진’이라 부르는 복잡한 연산 과정을 실현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뮬레이터 장비 중 가장 비싸다. 거치대는 시뮬레이터의 골격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모니터, 버킷 시트, 2축식 브래킷, 스피커를 아우른다.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레이싱 시뮬레이터를 운영한다.

 

설명이 길었다. 취재를 돕기 위해 함께한 인디고 레이싱팀의 김진수 선수는 “타보면 바로 느낌이 올 거예요”라며 시승을 권했다. 마다하지 않고 잽싸게 시트에 올랐다. 시트 포지션은 운전대와 페달의 높이가 수평에 가까웠다. 익숙한 둥근 운전대 대신 직사각형에 가까운 운전대를 손에 쥐었는데 조향감이 카트를 탔을 때와 비슷했다. 세아트 TCR 모델로 패들시프트를 튕겨가며(실제 경기 중에도 TCR 차는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변속한다)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을 달렸다. 옆에서 김진수 선수가 끊임없이 변속과 제동 타이밍을 말해줬는데도 코스를 이탈하기 일쑤였다. 연석을 밟거나 급제동을 했을 때 엉덩이와 손에 느껴지는 진동이 꽤 매섭다. 42인치짜리 모니터가 석 대나 달려 있었지만 이어지는 코너에 정신이 팔려 눈에 들어오는 시야는 바늘구멍만큼 좁았다. 짧은 시간 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한 바퀴를 돌았을 때 김진수 선수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타면 완주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 정도면 잘 타셨어요.” 빈말인 줄 알지만 큰 위로가 됐다.

 

국산 경차 한 대 값보다 비싼 시뮬레이터를 두고 인디고 레이싱팀 관계자는 “저렴한 편이죠. 이 정도면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귀를 의심하며 ‘인디고 레이싱팀에는 부자만 있나?’라고 생각하는 걸 눈치챘는지 김진수 선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기기만 놓고 보면 비싸죠. 하지만 서킷에서 실제로 달리는 데 드는 비용에는 비할 바가 못 돼요.”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사실 서킷에서 연습 주행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경주용 차 운반, 패독 대여료 등 모든 게 돈이기 때문이다. 연습 중 사고라도 일어나면 시즌에 차질이 생길 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그에 비하면 언제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시뮬레이터가 저렴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인디고 레이싱팀 매니저는 “주행 데이터 분석은 현장보다 시뮬레이터로 하는 게 더 편하고 정확할 때가 많아요”라고 귀띔했다.

 

구매는 어렵지 않다. 대행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발품을 팔수록 돈을 아낄 수 있다. 설치비용과 운송비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블로그에 시뮬레이터 설치 방법과 호환성에 대한 정보가 많이 있으므로 스스로 장비를 세팅해보는 것에 도전할 만하다. 일반적인 사양으로 꾸몄을 때 800만~1000만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잘 생각해보면, 박스카 레이스 중 가장 문턱이 낮은 모닝 레이스도 차값을 포함해 한 시즌을 소화하는 데 최소 20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뮬레이터는 차를 바꿔가며 전 세계 서킷을 두루 달릴 수 있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열리는 레이싱 대회도 있다. 무턱대고 질렀다가 아내나 엄마에게 등짝 맞을까 두렵다고? 그럴 때 유용한 명언이 있다. ‘허락보다 용서가 빠르다.’ 못다 이룬 레이서의 꿈을 시뮬레이터로 이뤄보는 건 어떠신지.글_박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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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모터트렌드> 편집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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