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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A 50년,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돌아보다

미국 최고의 스포츠카 경주 시리즈가 획기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19.04.02

 

50년 전에 설립된 국제 모터스포츠 협회(International Motorsports Association), 즉 IMSA는 스포츠카 경주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그리고 지난 1월 26~27일까지 미국 데이토나에서 열린 롤렉스 24시간 내구레이스 대회로 2019년 시즌이 시작됐다. IMSA는 과거 어느 때보다 미래가 더 밝아 보인다.

 

나스카(NASCAR) 사장 빌 프랜스(Bill France)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받은 존 비숍(John Bishop)과 그의 아내 페기(Peggy)가 1969년에 IMSA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프로 스포츠카 시리즈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IMSA는 1969년 10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포코노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서 첫 경주를 치렀다. 12년 동안 미국 스포츠카 클럽(Sports Car Club of America, SCCA)에서 활동한 비숍은 오픈휠 경주차가 관심을 끌 것이라 생각했고, 이벤트는 포뮬러 포드와 폭스바겐 엔진을 쓴 포뮬러 비(Vee) 경주가 중심이 됐다. 참가자 수는 348명이었다.

 

“뭐 좋은 생각 없어?” 존 비숍(왼쪽)과 나스카 총수 빌 프랜스는 나스카가 스톡카에서 그랬듯 로드 레이싱도 발전하기를 원했다.

 

비숍이 제대로 된 스포츠카들이 출전하는 스포츠카 시리즈를 만들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고, 1971년에 IMSA는 양산차 기반의 FIA 지정 승용차 클래스 시리즈가 됐다. 당시 새로 선보인 굿리치(Goodrich) 래디얼 타이어의 이름을 따 곧바로 RS 또는 래디얼 세단(Radial Sedan) 시리즈가 된 베이비 그랜드(Baby Grand)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그 클래스에는 오펠 만타로부터 AMC 그렘린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가 선보였고, 그런 형태의 IMSA 경주는 1971년 4월 18일에 버지니아 인터내셔널 레이스웨이에서 처음 열렸다. 경주의 중심에는 여러 포르쉐와 쉐보레 콜벳이 있었고, 그 차들은 모두 딱 어울리는 배기음을 들려줬다. 버지니아 서킷에서는 대표 클래스에 24대의 경주차가 출전했고,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54대의 차가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최종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IMSA는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SCCA를 포함해, 다른 주관 단체들은 못마땅했다. 그리고 R.J. 레이놀즈(R.J. Reynolds) 담배회사와 그 회사가 거느린 담배 브랜드 카멜(Camel)이 스폰서로 나서 카멜 GT 시리즈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은 훨씬 더 불편해지게 된다. 카멜의 홍보 캠페인 덕을 크게 보면서부터 실제로 시작된 IMSA의 성장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89년에 이르러 비숍은 IMSA를 새 소유자에게 넘길 준비를 했다. 시리즈는 1994년에 매각되었고, 1996년에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1999년에 돈 페이노즈(Don Panoz)가 서둘러 인수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American Le Mans Series)가 탄생했고, 패키지의 일부로 IMSA를 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2012년에 페이노즈는 IMSA와 ALMS를 NASCAR에 매각했다. 그 과정에서 자체 경주인 그랜드앰(Grand-Am) 스포츠카 시리즈도 인수에 포함됐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2014년 데이토나 롤렉스 24시간 경주로 시작하게 된 IMSA 튜더(Tudor) 통합 스포츠카 선수권 대회였다.

 

2016년 시즌에는 시계 브랜드 튜더를 대신해 웨더테크(WeatherTech)가 타이틀 스폰서가 됐다. 어떤 의미에서 IMSA는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1969년에 NASCAR 설립자인 프랜스가 시리즈에 재정지원을 하며 시작되었고, 이제 다시 NASCAR의 우산 아래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기사에서 우리는 IMSA가 지나온 세월과 미래를 살펴볼 것이다.

 


 

여섯 시기로 구분되는 역사

 

1969~1989년

NASCAR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설립자 빌 프랜스는 로드 레이싱으로 관심을 돌렸다. 존 비숍은 미국 스포츠카 클럽에서 프로 경주 프로그램 개발을 돕는 일을 주로 맡아 하고 있었다. 경영진의 반발이 불만스러웠던 그는 프랜스의 사업에 합류했다. IMSA는 느리게 시작했지만, 프랜스가 새 투자자를 영입한 1970년대에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듯 비숍은 차의 형태, 엔진, 유럽과 북미에서 공동으로 치를 수 있는 경주에 관해 유럽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협상을 해야 했다. 1987년에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비숍은 시리즈 매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경주 팬들은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겠지만, IMSA가 오래 인기를 끈 이유는 다양한 경주차가 출전한 데 있다.

 

1989~1994년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열리는 IMSA 그랑프리를 관리했던 마이크 콘(Mike Cone)과 제프 파커(Jeff Parker)는 CP 벤처스(CP Ventures)라는 이름의 회사를 통해 시리즈 전체를 인수하고 근거지를 코네티컷에서 탬파로 옮겼다. 지금도 IMSA에 관여하고 있는 마크 라포프(Mark Raffauf)는 시리즈 책임자 자리를 비숍으로부터 넘겨받았다. 프로토타입 경주차로 치러 경주 출전 비용이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되었던 엑손(Exxon) 세계 스포츠카 선수권 대회가 시작된 것을 빼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1994년에 이르러 콘과 파커는 손을 뗄 준비가 됐다.

 

 

1994~1996년

사우스 플로리다 출신 사업가인 찰리 슬레이터(Charlie Slater)는 1985년에 세브링에서 포르쉐를 몰고 처음 경주에 출전했지만, 너무 느리게 달린다는 이유로 피트인 페널티를 당했다. 알맞은 엔진을 살 만한 돈이 없었던 탓이었다. 1993년에 슬레이터와 그의 협력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의료 장비업체 심바이오시스 코퍼레이션(Symbiosis Corporation)을 1억7500만 달러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슬레이터에게 시리즈 전체를 사들일 수 있는 자금이 주어진 것이다. IMSA는 손실을 입고 있었고, 그가 성공을 거두기에 알맞은 공식을 찾는 동안 사업은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운전석이 개방된 월드 스포츠카 클래스에 집중했는데, 그 클래스에는 제조사들이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은 옛 GT 프로토타입 경주차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1996~1998년

1996년 9월, 인터내셔널 모터스포츠 그룹(International Motor Sports Group)이 IMSA를 인수했다. 보도에 따르면 200만 달러의 부채를 떠안은 것으로 추정되고, 명칭은 프로페셔널 스포츠카 레이싱(PSCR)으로 바꿨다. 전 리복 CEO인 로베르토 뮤엘러(Roberto Mueller)와 빌 게이츠의 투자상품을 관리했던 앤디 에번스(Andy Evans)가 주축이 됐다. 에번스는 레이싱 선수이기도 했고 스포츠카 팀과 인디카(IndyCar) 팀을 모두 소유했다. 1998년에 PSCR은 비숍, 빌 프랜스 2세, 로브 다이슨(Rob Dyson), 로저 펜스키(Roger Penske), 스킵 바버(Skip Barber), 랠프 산체스(Ralph Sanchez)를 비롯한 사람들이 새로 설립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로드 레이싱(United States Road Racing) 선수권 대회와 경쟁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업계는 한층 더 분열됐다.

 

 

1998~2012년

이때 돈 페이노즈가 등장한다. 그는 에번스의 팬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브링과 모스포트 서킷을 포함해 모든 것을 사들였다. 그는 이미 로드 애틀랜타 서킷도 인수한 상태였다. 페이노즈는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ALMS)라 새롭게 이름 지은 시리즈에 국제적 분위기를 더할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NASCAR 책임자인 짐 프랜스를 곤경에 빠뜨렸고, 결국 NASCAR는 그랜드앰이라는 이름의 독자 시리즈를 만들게 됐다. 두 시리즈 모두 충성도 높은 관중을 확보했지만, 분열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랜드앰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스포츠카 경주인 데이토나 롤렉스 24를 관리했고, ALMS와 새로 재정비한 IMSA는 두 번째로 중요한 경주인 모빌원(Mobil1) 세브링 12시간을 관리했다.

 

 

2012년~현재

2012년 9월 두 시리즈가 통합했지만, ALMS 직원들은 자신들의 급여가 이제 NASCAR에서 지급되는 것을 알게 됐다. 상당히 많은 ALMS의 요소들이 새로운 시리즈에 흡수되었고, ALMS 회장 스콧 애서튼(Scott Atherton)과 NASCAR의 에드 베네트(Ed Bennett)가 공동으로 지휘를 맡아 조합한 리그가 2014년 1월에 시작됐다. 새로운 시리즈는 지금 역대 미국에서 열린 것 중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통합된 모습으로 스포츠카 경주를 대표하고 있다.

 


 

IMSA에 영향을 주었거나 변화하게 만든 다섯 경주차

 

아우디 R10 TDI

2005년 12월, 아우디는 V12 5.5ℓ 트윈터보 디젤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이 프로토타입 경주차를 공개했다. 2006년에 첫 시즌을 맞아, R10은 세브링과 르망 경주에서 우승했다. 2009년에 아우디가 이 차를 은퇴시키기 전까지, 출전한 48차례의 경주에서 36번 우승했다.

 

 

델타윙

2010년, 2012년 시즌에 선보일 완전히 새로운 차를 내놓으라는 인디카의 요구에 대응해, 칩 개너시 레이싱(Chip Gannassi Racing)에서 일했던 벤 바울비(Ben Bowlby)는 델타윙(DeltaWing)을 만들어 2010년 시카고 오토쇼에서 공개해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인디카는 차체 뒤쪽은 넓고 앞쪽은 좁으며 작은 4기통 엔진을 얹은 델타윙의 출전을 거부했다. ALMS 소유주인 돈 페이노즈는 델타윙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경주차는 2012년 르망 24시간 경주에 맞춰 서둘러 만들어졌다. 29차례 경주에 출전하는 동안 델타윙은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300마력급 경주차가 도전자로서 두 배 이상의 출력을 자랑하는 모델들과 실제로 경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토요타 이글 MkIII

댄 거니(Dan Gurney)의 올 아메리칸 레이서즈(All American Racers)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이글 MkIII 경주차로 IMSA GTP 경주를 휩쓸었다. 거니는 토요타제 4기통 터보 엔진으로 달리는 경주차의 구조를 자체 설계하는 것을 감독했다. 1992년에 MkIII은 마지막 일곱 차례를 연속으로 우승한 것을 포함해 13차례 열린 경주에서 아홉 번 우승을 차지했다. 1993년에는 열한 차례 열린 경주에서 열 번 우승했고 열한 번째 경주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GTP 클래스는 막을 내렸는데, 이는 MkIII이 우승을 독차지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 토요타 이글 MkIII은 총 27차례 경주에 출전해 통산 21승을 거뒀다.

 

채퍼랠이 유명해진 무대가 캔앰 시리즈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경주차에 쓰인 아이디어는 IMSA와 다른 경주차들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포르쉐 962

노베르트 징어(Nobert Singer)가 설계한 962는 포르쉐가 프로토타입 경주에서 배운 모든 것을 담았고, 그 덕분에 처음 출전한 1984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라이비티어 팀들의 손을 거쳐 오랫동안 경쟁력을 지켰다. IMSA GT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둔 962들은 1986년과 1987년에 열린 르망 24시간 경주에서도 우승했다.

 

 

채퍼랠

짐 홀(Jim Hall)은 여러 채퍼랠 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발점인 채퍼랠 2A-첫 채퍼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트라우트만 & 반즈(Troutman & Barnes)가 만들었고, 홀과 동업자인 햅 샤프(Hap Sharp)가 만든 차들은 채퍼랠 2라고 불렀다-부터 시작해 엉뚱한 모습의 2J에 이르는 전체 채퍼랠 스포츠카 라인에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채퍼랠이 구현한 모든 혁신이 반영됐다. 공기역학의 천재인 홀은 운전석에서 조절할 수 있는 대형 리어 스포일러를 사용했고, 2J ‘빨판’ 경주차로 발전했다. 2J 경주차는 차체 뒤쪽에 별도의 2기통 엔진으로 작동하는 두 개의 커다란 회전날개가 있어, 차체 아래쪽에서 공기를 빨아들임으로써 놀라운 다운포스를 만들어냈다.

 


 

 

스포츠카 경주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자동차 경주가 처음 생긴 것은 두 번째 차가 만들어진 직후였으리라’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회자됐다. 마치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 경쟁의 역사가 10대 이전에 친구나 친척과 동네 길모퉁이에서, 저녁 식탁에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또는 학교 교문을 나설 때 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빠른가’를 따지는 것이 단순한 달리기 경주에서 수백만 달러짜리 스포츠카가 부서지거나, 부딪치거나, 이길 때까지 승부를 가리는 경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스포츠카 경주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일요일에 이기면 월요일에 팔린다’는 논리가 여전히 먹혀드는 소수의 모터스포츠 중 하나다. 페라리 F1 경주차나 나스카 몬스터 에너지(Monster Energy) 컵 경주차를 보고 서킷에서 달리는 기계가 그와 관련 있어 보이는 일반도로용 차와 의미 있게 부품을 공유하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다양한 스포츠카 클래스 중에는 그들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모델과 닮았을 뿐 아니라 실제 양산차를 바탕으로 만든 것들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서킷에서 갈고닦은 기술이 실제로 양산 모델에 반영된다는 점은 수십 년에 걸쳐 스포츠카 경주가 자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포르쉐가 좋은 예다. 포르쉐는 첫 자체 경주 프로그램에 출전하기 위해 550을 만들었고, 이내 1953년 뉘르부르크링 경주에서 우승했다. 포르쉐가 개발한 동기기구가 쓰인 5단 수동변속기는 1963년에 나온 901/911 양산차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포르쉐는 경주용 엔진에 연소실마다 두 개의 스파크 플러그를 썼는데, 그 아이디어는 1990년에 나온 911 카레라를 통해 등장했다. 특정한 경주 클래스를 위해 1983년에 개발한 959에는 센터 디퍼렌셜 잠금장치를 가변 제어할 수 있는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있었고, 포르쉐는 그 장치를 1990년형 카레라 4에 맞춰 조율해 썼다.

 

물론 기술 이전은 성능과 관련한 분야에서 이루어지지만 타이어, 브레이크, 구동력 제어, 충격 흡수, 신축식 스티어링 칼럼, 데이터 수집 등에서 발전을 통해 안전에도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졌다. 또한, 경주를 위해 개발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까다로운 환경 속에서 시험을 치른다.

 

콜벳 수석 엔지니어인 탯지 저크터(Tadge Juechter)는 “콜벳 레이싱 프로그램이 없다면 콜벳 브랜드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저희는 20년 동안 경주차와 일반도로용 차 개발팀을 완전히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내구 경주를 통해 공기역학, 엔진 성능, 섀시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서 숨겨진 정보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실제 데이터는 양산차 기술자와 설계자들에게 무척 중요하고, 저희는 서킷에서 그렇게 배운 것을 잘 활용해왔습니다.”

 


 

영원한 흔적을 남긴 레이서들

이 목록을 정리하면서 우승을 많이 한 사람들을 고르면 쉬웠을 테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포함됐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다른 영역에서도 공헌한 몇몇 사람도 선정했다. 여기에 오른 사람들은 특정한 순서로 정리하지 않았고, 자격이 있음에도 포함되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스콧 프루에트(Scott Pruett)

그가 이 자리를 차지한 가장 큰 이유는 숫자에 있다. 다만 IMSA에서 60승을 거두며 최다승 기록을 세운 프루에트는 설령 우승횟수 면에서 다른 모든 드라이버를 능가하지 못했더라도, 스포츠카 레이싱 분야에서 무척 사려 깊고 언변이 훌륭하며 전문적인 드라이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여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헐리 헤이우드(Hurley Haywood)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헤이우드의 경주 출전은 중단됐지만, 복귀한 뒤 IMSA에서 총 34회 우승을 차지했다. 주로 포르쉐 소속으로 출전했던 그는 데이토나 롤렉스 24시간 대회에서 다섯 번 우승해 프루에트와 같은 기록을 세웠고, 르망에서는 세 차례, 세브링 12시간 경주에서는 두 차례 우승했다.

 

 

빌 오벌렌(Bill Auberlen)

그는 프루에트의 뒤를 이어 IMSA에서 58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50세인 오벌렌은 지금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BMW가 직접 후원하는 선수로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매력적인 인물인 그는 프루에트와 공동 1위를 차지하거나 그 이상의 기록을 세울 듯하다.

 

 

조프 브라밤(Geoff Brabham)

인디카, 나스카 외에도 다른 여러 시리즈에 출전하며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브라밤은 IMSA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전설적 존재가 됐다. 그는 광포한 닛산 GTP ZX-T 경주차를 몰면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으로 IMSA GTP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피터 그레그(Peter Gregg)

멋있고, 부유하고, 하버드 대학을 다녔고, 운전 실력이 출중했던 그레그는 1965년에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있는 포르쉐 딜러 브루모스(Brumos)를 인수했다. 그 딜러는 그가 트랜스앰에 이어 IMSA에 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종종 함께 출전한 헤이우드와 그는 어마어마한 팀을 이뤘다. 그는 IMSA 선수권 챔피언을 네 차례 차지했고, 데이토나 롤렉스 24시간 경주에서는 네 차례 우승했다. 게다가 IMSA에서 차지한 41차례를 비롯해 출전했던 모든 시리즈에서 총 152번 우승했다. 그 모든 기록은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40세가 되기 전에 세운 것이었다.

 

 

데릭 벨(Derek Bell)

영국 출신인 그가 IMSA에서 거둔 20승 기록을 뛰어넘은 선수는 많다. 그러나 거침없는 언변에 냉혹할 정도로 솔직한 벨만큼 스포츠카 레이싱에 큰 영향을 준 선수는 거의 없다. 그가 거둔 중요한 우승 기록은 IMSA에 뛰어들기 전에 세워졌다. 르망에서의 5승, 배서스트(Bathurst)에서의 2승이 그렇고, 데이토나 롤렉스 24 경주에서는 3승을 차지했다.

 

 

앨 홀버트(Al Holbert)

그는 세 가지 면에서 위협적인 능력이 있었다. 엔지니어링 학위를 갖고 있었고, 엄청나게 재능 있는 선수였고, 집중력과 통찰력 있는 사업가였다. 그는 르망에서 세 차례, 세브링과 데이토나 24시간 경주에서 각각 두 차례씩 우승했다. 1983년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에서는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1988년 41세의 나이에 개인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브라이언 레드먼(Brian Redman)

그는 유럽에서 IMSA 시리즈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탁월한 이력을 쌓았다. 포뮬러 원 경주에 12번 출전했고, 이후 스포츠카 레이싱으로 옮겨 해당 분야에서 가장 전설적인 경주차들을 몰고 가장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과 맞서 경쟁했다. 레드먼이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그는 모든 것을 경험한 베테랑이었고 여러 젊은 선수들에게 조언자로서 도움을 주었다.

 

 

얀 마그누센(Jan Magnussen)

콜벳 레이싱 팀에서 거둔 우승 기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명단에 오를 수 있거나 올랐어야 할 선수는 많다. 그러나 F1, 인디카, 심지어 NASCAR를 포함하는 그의 이력을 넘어설 사람은 없다. 1999년에 페이노즈 팀 소속으로 IMSA에 뛰어들었을 때 그처럼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면 꽤 콧대가 높았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밥 월렉(Bob Wollek)

월렉은 세브링 근처에서 자전거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IMSA에서 18번 우승했고, 세계 최대의 경주로 손꼽히는 르망과 데이토나 롤렉스 24시간 경주에서 각각 네 차례 우승한 것을 포함해 통산 76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짐 다우닝(Jim Downing)

자신이 만든 마쓰다 로터리 엔진 경주차로 르망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IMSA에서 24승을 거둔 다우닝이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한 친구가 비교적 평범한 사고에서 두개골 골절로 세상을 떠난 뒤, 다우닝은 나중에 HANS 장비로 완성될 것을 설계하기 위해 처남인 로버트 허버드(Robert Hubbard)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보다 먼저 고 존 피치(John Fitch)가 그랬듯, 다우니의 안전에 대한 기여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폴 뉴먼(Paul Newman)

배우인 그는 1969년에 영화 <영광이여 영원히(Winning)>를 찍으면서 경주에 푹 빠졌고, 이후 30년에 걸쳐 성공적인 스포츠카 경주 선수와 팀 소유주가 됐다. 그와 더불어 스포츠카 경주는 멋진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뉴먼은 유명인이 선수로서 성공하는 모범 사례가 됐다.

 

 

린 세인트 제임스(Lyn St. James)

세인트 제임스는 IMSA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세브링 12시간 경주에서 한 차례, 롤렉스 24시간 경주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 또한, 르망 경주에 두 번 출전했고 뉘르부르크링 24시간 경주에서는 한 번의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스포츠카 경주뿐 아니라 일곱 번 출전한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를 포함한 인디카 경주의 대사 역할도 충실히 했다.

 

 

부치 라이칭어(Butch Leitzinger)

IMSA 선수로 성공을 거둔 밥 라이칭어(Bob Leitzinger)의 아들인 부치는 IMSA 49승을 기록했고, 그중 상당수를 업체로부터 든든한 후원 없이 여러 팀에 소속되어 출전하면서 거뒀다. 차분한 성격의 잘 교육받은 전문가로서 그는 재능과 직업 윤리, 느긋한 성격 덕분에 늘 인기가 많았다.

 

 

윌리 T. 립스(Willy T. Ribbs)

그처럼 엄청나고 의심할 여지 없는 재능이 있는 선수가 현장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알맞은 수준의 훈련이 있었다면, 립스는 사고가 나거나 우승했을 때에만 그러는 사람으로 여러분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흑인 선수가 유난히 없었던 시절, 그는 IMSA에서 열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종종 혈기가 넘쳤던 그는 다른 선수를 때려 IMSA로부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첫 선수가 됐다. 립스가 스포츠카 경주에 집중했다면 아마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글_Steven Cole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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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PHOTO : I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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