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CAR

직접 타보고 평가한 차의 가치, 페라리에서 지프까지!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자동차도 그렇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판매량으로 단순 환산할 수 없는 차의 가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2019.04.10

 

“아니, 이건 도대체 무슨 조합이야?” 포토그래퍼에게 촬영 계획을 설명하자 그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V12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페라리 GTC4루쏘, 유유자적 봄바람을 즐기기 좋은 메르세데스 벤츠 E 400 카브리올레, 운전재미와 실용 둘 다 잡으려는 기아 K3 GT     5도어, 자타 공인 오프로드 최강자 지프 랭글러 루비콘이 나란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주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차들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자동차 한 대씩 가지고 올 것!”이라는 주제였다. 이 기획은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4월호 <모터트렌드>에 실렸던 ‘Double Elimination’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그땐 6대가 모였지만 이번엔 4대가 모였다는 점만 다르다. 담당 에디터를 제외하면 서로가 어떤 차를 가지고 올지 몰랐기 때문에 시승차가 한 대씩 도착할 때마다 콧방귀와 비웃음이 난무했다. 우리 중 유일하게 10년 전 기사에도 등장했던 서인수 에디터는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질 않아”라며 새삼 추억에 젖기도 했다.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에디터가 자신이 끌고 온 차의 가치가 무엇인지 설명하면 다른 에디터가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이라 쓰고 썰전이라 읽는다) 식이다. 오고 갔던 대화를 읽기 쉽게 정리했는데, 언중유골(言中有骨)은 여전하다.

 


 

FERRARI GTC4LUSSO

 

페라리식 실용주의로 점철된 마지막 모델

류민 GTC4루쏘는 네 개의 시트를 얹고 V12 자연흡기 엔진으로 네 바퀴 모두를 굴리는 슈팅브레이크(2도어 왜건) 페라리다. V8 터보 엔진으로 뒷바퀴만 굴리는 GTC4루쏘T와는 결이 다르다. 페라리가 두 차를 다른 모델처럼 취급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라리도 SUV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산게’라는 이름의 페라리 SUV가 2022년 공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페라리 공장 주위를 맴도는 프로산게 테스트카들이 GTC4루쏘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 프로산게가 GTC4루쏘의 후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GTC4루쏘는 페라리 고유의 날카로운 몸놀림과 자연흡기 사운드를 즐기며 4명이 겨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최후의 페라리가 될지도 모른다. 페라리가 V6 터보 하이브리드를 개발 중이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멸종을 앞둔 희귀종이라고 모두 가치가 높은 건 아니다. GTC4루쏘가 라페라리나 아이코나 페라리의 몬자 SP1/2와 같은 특별판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페라리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페라리를 수집할 만큼 재력이 있는 사람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페라리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사라지는 차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GTC4루쏘는 콘셉트나 질감, 균형 등 그럴 만한 가치도 있다. 뭐, 사실 떠들어봐야 입만 아픈 문제다. 그렇게 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차고에 한 대씩 세워뒀을 테니까.

 

 

서인수 V12 자연흡기 엔진은 10년 후에 멸종할지 모른다. 그러니 그땐 정말 가치 있는, 아니면 정말 희귀한 엔진으로 대접받게 될 거다. 그런데 V12 자연흡기 모델 가운데 하필 GTC4루쏘라니. 이 모델의 가치는 판매량이 증명한다. 만약 GTC4루쏘가 시장에서 성공했다면 페라리는 어쩌면 SUV를 만들 생각까진 안 했을 거다. 네 명이 겨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최후의 V12 페라리라.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3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기는 싫다. GTC4루쏘가 페라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건 맞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그리고 자동차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런 획은 아니다.

 

안정환 페라리에 4인승이 웬 말인가.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슈팅브레이크? 페라리의 본질은 뒷바퀴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스포츠카, 아니 슈퍼카 아니었나? 아까 내가 고른 K3 GT의 하차감을 지적했는데 GTC4루쏘야말로 하차감이 아주 별로다. 앞좌석은 그렇다 쳐도 뒷좌석에서 내리려면 1열 시트를 앞으로 민 다음 그 사이로 몸을 배배 꼬면서 내려야 한다. 아무리 엠블럼에 앞발 추켜세운 말이 그려졌다 해도 이런 모양새로 내리는 건 볼품없다. 꼭 페라리에 4명이 함께 타고 싶다면 그냥 SUV 모델 프로산게를 기다리는 게 더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요즘같이 친환경 시대에 V12 자연흡기 엔진은 욕먹기 딱 좋다. 내뿜는 힘과 사운드는 매력적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아주 몹쓸 엔진이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마스크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시대착오적인 엔진부터 금지해야 한다.

 

박호준 인정한다. ‘실용적인 페라리’라는 표현 말이다. 안락하진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은 뒷자리와 골프백 2개를 꿀꺽 삼키는 트렁크는 기존의 페라리는 물론 정통 스포츠카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펙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 하나 못난 구석 없는 디자인은 또 어떻고. 페라리 특유의 섹시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간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을지 생각하면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V12 엔진은 덤이다. 하지만 다른 차와 비교했을 때도 뛰어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페라리를 살 정도의 재력가는 GTC4루쏘 한 대로 마트에 가고 서킷을 즐기며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워야 할 땐 S 클래스, 골프 치러 갈 땐 레인지로버를 타면 그만이다.

 


 

JEEP WRANGLER RUBICON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오프로드 제왕은 나다

서인수 랭글러 모니터에서 ‘오프로드 페이지’를 터치하면 이런 문구가 나타난다. ‘길을 잃을 수는 있지만 가지 못하는 길은 없다.’ 이 문구가 바로 랭글러의 가치를 말해준다. 랭글러는 국내에서 공식적인 루트로 살 수 있는 유일한 정통 오프로더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랭글러처럼 기민하고 경쾌하게 오프로드를 헤쳐 나가지 못한다. 그러기엔 몸집이 너무 비대하고, 움직임도 둔하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는 사막에 데려가기엔 이제 너무 매끈하고 고급지다. 곧 만나게 될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 G 바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랭글러는 다르다. 덤불이 가득한 산길은 물론 바위로 뒤덮인 오프로드도 부담 없이 데려갈 수 있다. 랜드로버가 도심형 SUV를 좇아 모노코크 보디를 채용했지만 랭글러는 여전히 보디 온 프레임을 고수한다.

 

랭글러는 자세를 낮추지 않는 껑충한 서스펜션에 4WD 로 기어까지 갖춰 경사로를 단박에 내려가고 올라갈 뿐 아니라 울퉁불퉁한 산길도 거침없이 타고 넘는다. 랭글러 중에서도 최강 오프로더인 루비콘은 앞뒤 액슬에 전자식 디퍼렌셜 록을 달고, 스웨이바 분리 버튼을 갖춰 바위도 타고 넘을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태초에 SUV는 오프로더였다. 하지만 요즘 SUV 가운데 제대로 된 오프로더를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랭글러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랭글러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오프로더일 테니까. 참, 신형은 11년 만에 풀모델 체인지를 거쳤지만 기존 랭글러의 디자인이 고스란하다. 그래서 누구라도 단박에 랭글러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 가치 있는 것은 인기나 유행에 따라 쉽게 모습을 바꾸지 않는 법이다.

 

 

류민 난 오프로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커다란 바위를 타고 넘거나 급경사를 치고 올라갈 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긴 하지만 일부러 그런 장소를 찾거나 하루 종일 험로를 달리는 걸 즐기진 않는다. 그럼에도 랭글러의 가치는 인정한다. 그런데 이유가 좀 다르다. 이만큼 개성 짙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차가 또 없어서다. 랜드로버는 이제 색깔을 잃었고(디펜더는 단종됐고, 디스커버리는 변했다), 메르세데스 벤츠(G바겐)는 너무 비싸다. 내가 랭글러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 건 단지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도어를 열 때의 촉감과 소리만으로도 난 진짜 남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바짝 선 A필러와 간결한 대시보드가 주는 묘한 낭만도 너무 좋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건 루비콘이 아닌 사하라다. 루비콘은 내게 너무 터프하다. 외모는 더 예쁘지만 오프로드 전용 쇼크업소버와 타이어에서 비롯된 소음과 진동을 매일 견딜 자신이 없다.

 

안정환 랭글러의 오프로드 실력은 인정한다. 요즘 키 좀 키우고 네 바퀴 굴릴 줄 안다고 해서 오프로더라는 타이틀을 감히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배기는 바로 이 녀석이다. 랭글러는 계절, 지형 상관없이 험로만 들어서면 물 찬 제비가 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온로드에선 그냥 근육만 무식하게 키운, 섬세함은 1도 없는 배드 보이에 불과하니까. 멀미 나는 승차감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소음, 그리고 연료를 퍼마시는 수준의 연비는 또 어떻고. 아무리 오프로드 실력에 가치를 두는 차라지만, 대도시에 사는 나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랭글러를 선택한 선배가 돌아가는 길에 나와 차를 바꿔 타자고 제안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성적인 가치는 좋았지만 막상 직접 몰고 가려니 별로였던 거다.

 

박호준 “선배, 진짜 가도 돼요?” “어, 완전 괜찮으니까 그냥 쭉 밟아.” 가파른 경사를 앞에 두고 나눈 대화다. 랭글러의 운전대에 앉으면 ‘괜찮을까?’라는 고민이 필요 없을 정도다. 오프로드는커녕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조차 가슴 졸여야 하는 스포츠카와 차원이 다르다. 이전 세대에 비해 간편해진 지붕 탈착 방식도 마음에 든다. 지붕을 걷어내고(차마 문짝까지 뜯진 못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오프로드를 누빌 때면 정글 모자와 채찍을 들고 보물 사냥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시승하는 내내 능력이 된다면 꼭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차를 3~4대 가질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나 역시 도저히 이 차를 매일 탈 자신이 없다. 하지만 10년 후에도 랭글러의 가치가 여전할 거라는 주장에는 이의가 없다.

 


 

KIA K3 GT 5DOOR

 

그런 차가 또 없습니다 (feat. 가성비)

안정환 우리는 흔히 사물의 가치를 가격에서 찾곤 한다. 비싸면 가치 있고, 저렴하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다고 받아들인다. 봐라, 가치 있는 차를 찾아오라 하니 다들 비싼 차를 가지고 왔다(모두 내가 끌고 온 차를 비웃었다). 누가 모르나, 비싼 게 좋다는 걸. 하지만 내 기준에서 가치 높은 차는 그 차가 갖는 상품성이다. 2000만원대 가격에서 K3 GT만큼 출중한 외모와 탄탄한 성능 그리고 풍족한 편의사양을 갖춘 차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찾아봐야 K3 GT와 피를 나눈 형제 모델일 것이다. 더욱이 내가 선택한 K3 GT 5도어는 이 급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뒤태까지 가졌다. 그뿐일까? 돈 좀만 보태면 순정 사양의 튜닝까지 더할 수 있다. AS까지 완벽한 튜닝이라니,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호사다.

 

최근 현대 벨로스터 N이 국산 대표 펀카로 불리곤 한다. 달리기 실력 하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실내는 성능과 달리 초라하다. 타보면 알 거다. 그런 면에서 K3 GT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준중형 차급치곤 인테리어가 끝내준다. 대시보드에 새겨진 'GT' 엠블럼에 6가지 빛깔을 입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넉넉한 2열 및 트렁크 공간은 또 어떻고. 지난번 <모터트렌드> 공식 SNS에 K3 GT를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한 외국인이 댓글을 달았었다. 자신의 나라에 K3 GT가 언제쯤 들어오는지 알 수 있냐고. 외국인이 누른 좋아요도 상당수였다. 벌써 먼 나라에서 K3 GT의 매력을 눈치채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서인수 거듭 말하지만 세상에 싸고 좋은 건 없다. 싸고 적당한 게 있을 뿐이다. K3 GT가 가격 대비 상품성이 괜찮다는 건 인정한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동시에 지원하는 차는 국산차 말고 흔치 않다. 옵션도 풍성하다. 1796만원짜리 럭셔리 모델도 앞자리에 열선·통풍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휠을 챙겼다. 하지만 이만한 옵션은 국산차에 흔하디흔하다. 운전 재미가 좋다고? 음, 나에겐 재미보다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운전대가 묵직한 데다 서스펜션 세팅도 단단한 편이어서 두 시간 남짓 운전하고 나니 손목부터 허리는 물론 목까지 저릿저릿했다. 노면 요철이 고스란히 엉덩이로 전해져 달리는 내내 거슬리기도 했고. 아, 그런데 10년 후에도 K3 GT가 살아 있을까?

 

류민 내 생각은 다르다. 가치가 있는 차와 가성비 좋은 차의 의미는 다르다. 그리고 요샌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가성비 좋은 차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능’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잘 달리는 건 기본 덕목이다. 누군가에겐 디자인이, 누군가에겐 ‘하차감’이, 누군가에겐 여유로운 공간이 성능일 수 있다. 수입차 베스트셀러가 캠리가 아닌 메르세데스 벤츠 E 300인 것도 좋은 이유다. 난 K3 GT가 애매한 차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고급스럽고 견고한 i30 N 라인이 눈에 밟힌다. i30 N 라인엔 고성능 브랜드인 N의 후광도 있다. 반면 기아의 GT 모델은 실체가 없다. 기아에서 GT는 대체 무엇을 뜻하지?

 

박호준 가성비가 뛰어난 차를 꼽는 기획이었다면 나라도 K3 GT 5도어를 끌고 왔을 거다. 최근 아반떼가 ‘삼각떼’라고 놀림을 받는 통에 K3의 주가는 승승장구하는 모양새다. 거기에 출력과 서스펜션을 업그레이드한 해치백 모델이니 취향 저격이 따로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가성비를 따지러 모인 날이 아니다. 물론 차를 대하는 여러 가치 중 하나로 가성비를 꼽을 수는 있다. 현실은 K3 GT 5도어가 벨로스터 N보다 판매량이 적다. 솔직히 길거리에서 K3 GT 5도어를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다. 흥행 참패다. 류민 에디터의 말처럼 운전재미, 편의성, 가격 모두 애매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MERCEDES-BENZ E 400 CABRIOLET

 

갬성 끝판왕

박호준 미세먼지 때문에 난리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젠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면 감사해야 하는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지붕을 열어젖힐 수 있는 카브리올레의 가치가 돋보인다. 일주일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딱 하루 맑은 날이 돌아왔을 때 지붕을 활짝 열고 온몸으로 깨끗한 공기를 즐기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카브리올레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억지스럽다고? 비슷한 예가 있다.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다. 연중 흐린 날이 많은 탓에 어쩌다 쨍한 해가 뜨는 날이면 많은 사람이 공원으로 몰려나와 수영복 차림으로 햇빛을 만끽한다. 흔치 않은 기회를 온전히 누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여러 컨버터블 모델 중 굳이 E 400 카브리올레를 선택한 이유는 ‘여유’ 때문이다. 부드럽고 넉넉한 출력을 내뿜는 V6 가솔린 엔진, 성인 남성이 앉아도 좁지 않은 뒷자리, 지붕을 열었을 때 옆 차가 곁눈질할 법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여유로움을 완성한다. 포르쉐 박스터나 미니 컨버터블처럼 승차감이 딱딱하지 않아 통근용으로 매일 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앞서 말한 장점을 두루 갖춘 차는 E 400 카브리올레밖에 없다. 물론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사기캐’ 브랜드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뭘 걱정하는지 안다. ‘1년에 몇 번이나 지붕 열고 타겠냐’, ‘쏟아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럽다’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열 수 있는데 열지 않는 것과 애당초 열 수 없는 건 엄연히 다르다. 선글라스만 있으면 그깟 시선쯤 가뿐히 무시할 수 있다.  이제 곧 완연한 봄이다. E 400 카브리올레를 타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꽃비를 맞는 상상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는 듯하다.

 

 

서인수 ‘오픈 에어링’, 참 설레는 말이다. 지붕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건 생각만 해도 즐겁고 흐뭇하다. E 400 카브리올레는 지붕 열고 달리는 맛이 참 좋다. 젠체하며 여유롭고 느긋하게 달리기에 그만이다. 하지만 차값이 1억원에 육박한다. 단지 오픈 에어링을 즐기기 위해 치르기엔 터무니없는 값이다. 그렇다고 E 400 카브리올레에 다른 필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후끈한 바람을 불어주는 에어스카프? 이건 그냥 두툼한 목도리로 해결하면 된다. 성인 남성이 앉아도 좁지 않은 뒷자리라고? 흠, 고정식 에디터도 태워봤나? 절대 좁지 않은 뒷자리가 아니다. 아, 덧붙이자면 랭글러도 지붕을 떼어내고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다. 랭글러는 문짝도 뗄 수 있다.

 

류민 굳이 벤틀리나 롤스로이스의 비현실성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4인승 오픈톱 모델 중 상품성을 따져보면 E 클래스 카브리올레만 한 차가 없긴 하다. 에어캡, 에어스카프 등 오픈 에어링을 돕는 고유 필살기도 있고 안팎 디자인도 섹시하다. 가격 차이를 상쇄할 만큼 더 넉넉하고 고급스러운 S 클래스 카브리올레가 있지만 국내에는 AMG 버전만 판매됐고 지금은 그마저도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내가 만약 E 클래스 카브리올레를 산다면 400이 아닌 220 d를 사겠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바람을 즐기는 데 굳이 비싸고 효율이 떨어지는 V6 터보 엔진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220 d로도 E 클래스 카브리올레의 핵심 가치를 모두 즐길 수 있다. 디젤 엔진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차라리 E 53 카브리올레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 E 400 카브리올레는 어쩐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다.

 

안정환 맑은 하늘이 머리 위로 드리워졌을 때 컨버터블만 한 차가 없다는 건 맞다. 그게 컨버터블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치다. 더욱이 E 400 카브리올레처럼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에 여유로운 승차감까지 갖춘 차라면 그 가치는 배가된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지붕을 덮었을 때의 라인이다. 쿠페 모델은 매끈하게 잘빠졌는데, 카브리올레는 세단과 쿠페 사이의 이도 저도 아닌 라인을 가졌다. 사실 볕 좋은 날은 며칠 없다. 보통은 뚜껑을 닫고 다닐 게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쿠페를 사지 않고 카브리올레를 산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컨버터블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이번에 나온 다른 경쟁 모델이 눈에 밟힌다. 특히 포르쉐 911 카브리올레는 너무나 매끈하다. 지붕을 덮어도 라인이 쿠페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때 그 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10년이면 천지개벽한다’ 정도가 어울린다. 10년 전 <모터트렌드> 에디터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차의 현주소는 어떨까?    

 

볼보 XC70 V70를 토대로 만들었던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지금은 크로스컨트리(V60)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볼보가 크로스컨트리 모델을 앞세워 국내 수입차 판매 1만대 달성을 노리고 있는 걸 보면 ‘두루뭉술하다’라고 했던 10년 전 평가는 틀렸던 것 같다.

 

푸조 207GT 207의 후속인 208 신형 모델이 지난 2월 공개됐다. 귀여우면서도 날렵한 외모 덕에 이목을 끌었다. 차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가솔린과 디젤 엔진은 물론 전기차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3 서인수 에디터는 이 차를 고른 이유를 “10년 후에도 멋져 보일 디자인 때문”이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각진 디자인을 버렸다. 바뀐 디자인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르노삼성 QM5 QM6에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10년 전보다 SUV 인기가 늘었는데도 QM6의 존재감은 신통치 못하다. 형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닛산 엑스트레일 역시 올 초 출시됐으나 존재감이 희박한 상태다.

 

포드 토러스 없다. 포드 코리아 홈페이지에도 없고 도로에도 없다. 2009년 6세대 토러스가 출시됐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현재는 7세대가 중국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S 320 CDI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 아닐까? 당시엔 ‘클린 디젤’에 힘입어 대형 디젤 세단을 타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미세먼지의 주범이자 불자동차(사실과 무관하게)로 취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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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호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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