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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E와 함께한 로마의 휴일

포뮬러 E 로마 그랑프리는 조용하지만 뜨거운 레이스였다

2019.05.14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포뮬러 E 참관을 위해서다. 드라이버로서 다른 경주를 본다는 건, 경주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간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견학의 목적도 있다. 목적지는 로마 공항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몬자 서킷이나 무겔로 서킷이 아니다. 바로 로마 도심이다. 버스 정류장과 횡단보도, 고가도로와 로터리가 있는 로마 한복판에 안전 펜스와 관중석이 지어졌다. 포뮬러 E는 백지에서 시작된 경주다. 기존 레이스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관중들을 먼저 생각했다. 배기가스와 주행 소음이 없으니 관객들의 생활권으로 무대를 옮길 수 있었다. 접근성이 좋고,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트랙이 도심 속으로 들어온 덕분에 이벤트를 치를 건물도 많다. 출발선 바로 옆 로마 컨벤션 센터에서 포뮬러 E 드라이버가 팬들과 시뮬레이터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팬 서비스

포뮬러 E는 다른 레이스에 비해 관중과 호흡하는 시간이 길다. 이번 로마전에선 드라이버와 AS 로마 축구팀과의 친선 축구 경기도 열렸다. 물론 진지한 경기가 아닌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서비스다. 이기려고 무리하다 부상이라도 입으면 큰일이다.

 

 

아우디 압트 스포트의 루카스 디 그라시와 다니엘 압트는 로마 시내에서 스쿠터로 피자 배달을 체험하는 이색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레이스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차피 그 시간에 연습 주행을 할 수도 없다. 시가지 서킷 특성상 선수에게는 단 2일간만 주행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첫날은 트랙 워크와 셰이크다운 한 세션만 허용될 뿐, 나머지 자유 연습과 예선, 결승은 모두 둘째 날 진행된다.

 

 

그래서 포뮬러 E 드라이버들은 팬들 또는 미디어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드라이버들에게도 팬 관리는 중요하다. 팬의 표를 많이 받으면 추가 출력을 얻어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팬 부스트(Fan boost)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난 16~17년 시즌 챔피언이었던 디 그라시에게 한 표를 던졌다.

 

 

트랙 워크

트랙 위를 걸어보며 경주장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트랙 워크라고 부른다. 이 작업은 연습 기회가 별로 없고 노면 상태 예측도 어려운 시가지 코스 특성상 아주 중요하다. 로마 서킷은 노면 파악이 핵심이다. 총 21개 코너가 끊임없이 연결돼 있는데, 대부분의 구간이 평탄하기보단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오르막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일부 구간에선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리다가 네 바퀴 모두가 뜨기도 한다. 레코드 라인을 따라가면 요철이 심한 급제동 구간도 있기 때문에 변칙적인 라인을 그릴 필요가 있다. 비가 오면 물길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몇몇 선수는 계측기로 연석 높이와 노면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기도 했다. 보수공사로 덮어둔 노면 단차를 비롯해 밟았을 때 유리한 연석과 불리한 연석도 판단해야 한다. 극도로 좁은 골목 구간도 있다. 머신 단 두 대만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빠듯하다. 그래서 각자 자신만의 추월 포인트와 방어 포인트도 미리 정해둬야 한다.

 

 

최첨단 포뮬러 E 머신, E 트론 FE05

아우디 E 트론 FE05는 이번 시즌에 새로 투입한 2세대 포뮬러 E 섀시를 기반으로 한다. 실물은 전투기의 상부 패널에 바퀴만 달아놓은 느낌이다. F1 경주차처럼 드라이버 머리를 보호하는 헤일로 프레임도 있다. 참고로 포뮬러 E의 헤일로에는 LED 표시창이 있다. 파란색이 켜지면 어택 모드, 빨간색은 팬 부스트 모드다. 결승 레이스 중 각각 34마력, 68마력이 늘어 흥미로운 반전 변수로 작용한다. 최고출력은 340마력, 무게는 900kg이며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2.8초다. 18인치 휠의 무게는 앞 6kg, 뒤 7kg에 불과하다. 서스펜션은 푸시로드 타입의 더블 위시본이다. 브레이크도 흥미롭다. 앞은 기계식, 뒤는 바이 와이어 시스템으로 에너지 회수율을 높였다.

 

 

섀시와 배터리는 규정품을 써야 한다. 하지만 파워트레인과 소프트웨어는 각 팀의 역량에 달렸다. 포뮬러 E의 심장은 MGU(Motor Generator Unit)라고 불린다. E 트론 FE05의 MGU는 아우디와 섀플러(아우디의 기술 파트너다)가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 개발한 물건이다. 포뮬러 E는 빠르게 달리면서 전기를 적게 쓰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 관리를 잘못하면 완주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난 멕시코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선두를 달리던 경주차가 피니시 라인을 수십 미터 앞두고 전력 부족으로 속도를 줄였고, 이를 E 트론 FE05가 추월하며 짜릿한 역전승을 연출했다. 모터스포츠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GREEN, GREEN, GREEN!

드라이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다. 아우디 스포츠의 디 그라시는 예선에서 기량을 다 끌어내지 못해 13번 그리드에서 결승을 시작했다. 로마는 폭이 좁고 직선이 짧아 추월에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는 자유 연습에서 최상위 기록으로 실력을 입증한 베테랑 드라이버. 두 번의 어택 모드 기회와 팬 부스트 득표율까지 챙겨 영리하게 추가 출력의 활용 시점을 찾아냈다. 빗방울이 흩날려 노면이 미끄러웠지만,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1.8m 너비의 E 트론 FE05를 펜스까지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앞서 달리던 12대의 경쟁자 중 절반을 추월해 7위에 올랐다.

 

 

물론 파나소닉 재규어 레이싱의 미치 에번스와 DS 테치타의 안드레 로터러의 선두 경쟁도 매우 흥미로웠다. 에번스는 눈치 싸움 끝에 먼저 어택 모드를 사용해 선두를 탈환했다. 반면 로터러는 어택 모드를 후반부까지 아꼈다가 연달아 사용했다. 그러나 역전에는 실패했다. 포뮬러 E는 조용하지만 뜨거운 레이스였다. 지난 일곱 경주 모두 다른 선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시즌의 행방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다.글 강병휘(레이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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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류민PHOTO : 아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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