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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SUV 납시오!

누군가는 강력하고 화려한 SUV를 원한다. 고성능 SUV는 아우토반을 아찔한 속도로 달리고, 진창길에서도 나와 가족을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

2019.07.03

 

SUV가 대세를 이루면서 나타난 현상은 고급화다. 사람들은 SUV를 타면서 좀 더 편한 차를 원했고, 자동차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차에 부가가치를 더하고 싶었다. 이제는 모든 프리미엄 브랜드가 고급 SUV를 내놓고 있다. 고급차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고, 시장은 커지는 중이다. 그동안 세계경제가 호황이었고, 중국시장이 고급차 수요를 늘렸다. 오늘 시승차는 그 고급 SUV의 끝에 자리한 슈퍼 SUV들이다.

 

SUV가 대세를 이루는 동안에도 슈퍼카 급의 SUV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최고급의 ‘끝판왕’을 지향하는 SUV가 점점 늘고 있다. 쏘나타를 타던 사람이 싼타페로 옮겨 탈 때, 메르세데스 마이바흐를 타던 사람이 탈 SUV가 필요했다. 세상에는 ‘슈퍼리치’가 많다. 고로 아주 비싼 차에 대한 수요는 늘 있다. 누군가는 강력하고 화려한 SUV를 원한다.

 

많은 브랜드가 슈퍼 SUV 시장을 탐내는 것은 당연하다. 비싼 차는 수익도 많이 내니 마다할 일이 아니다. 고성능 SUV는 이미지 리더로서의 역할도 크다. SUV는 원래 이기적이고 낭비가 심한 차다. 고성능 SUV는 그 정점에 서 있다. 기름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달리는 이 차들의 매력은 뭘까? 무게중심이 높은 차를 세차게 몰아치는 스릴이 있고, 은행을 털 때(?) 자동차 추격전에 유용한 차가 될 것이다. 아우토반을 아찔한 속도로 달리고, 진창길에서도 나와 가족을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 무엇보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가슴이 탁 트이는 후련함이 좋다. 슈퍼 SUV의 값은 보통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그런 만큼 존재감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슈퍼 SUV는 SUV보다 슈퍼카로서 의미를 둔다.

 

 

LAND ROVER RANGE ROVER SPORT SVR

랜드로버에서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역할은 그저 달리는 것에 있다. 오프로드가 아닌 아스팔트 위를 열심히 달린다. 오프로더의 명문 랜드로버 전통에 충실한 차는 아니다. 6년 전인가, 2세대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데뷔 행사로 영국 본사를 찾았을 때도 트랙만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있다.

 

 

시승차 SVR은 랜드로버의 고성능 차를 전담하는 ‘스페셜 비이클 사업부(SVO)’에서 만든 차로, R은 레이싱을 뜻한다. SVO는 BMW M이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 같은 부서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은 레인지로버 가운데 가장 빠르다. 레인지로버 역사에서도 가장 빠르다. 레인지로버만의 위엄 속에 스포티한 감각을 심었다.

 

 

단단함이 느껴지는 보디가 고급스럽다. 한눈에 레인지로버임을 알 수 있는 보디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강하다. 붉은색 보디가 매혹적인 시승차는 보닛을 탄소섬유로 만들어 무게를 25kg 줄였다. 탄소섬유 보닛은 옵션이라 이 차의 값은 2억원을 넘는다. 레인지로버는 원래 높이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가 자랑이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역시 레인지로버 전통에 따라 만들어졌다. 높이 앉아 ‘커맨딩 뷰’를 즐기는 차가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에어 서스펜션이 있어 키를 성큼 더 키울 수도 있다.

 

실내는 우아하고 깔끔하게 처리됐다. 붉은 가죽으로 치장한 실내가 영국의 ‘젠틀맨스 클럽’을 떠오르게 한다. 실내 곳곳에 탄소섬유를 넉넉히 써 슈퍼 SUV로서 여유를 갖는다. 비싼 차는 내비게이션의 지도 모양도 예술적이다. 레인지로버의 다이얼처럼 생긴 기어노브와 달리 ‘스포츠’만의 스틱 레버는 달리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다진다. 고성능 차에서 다이얼을 돌리고 있을 수는 없다. 눈길을 끄는 버킷시트는 무게를 30kg 줄였다는데, 완벽한 자세가 만족스럽다.

 

 

두터운 운전대를 잡은 손에 섀시의 단단함이 전해온다. 차는 묵직한데 최고출력 575마력, 최대토크 71.4kg·m에 이르는 힘을 뿜어내며 가볍게 달린다. 차의 무게가 2.4톤에 이르는데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이 불과 4.5초란다. 최고속도는 시속 280km. 가히 슈퍼카급이다. 가속페달을 밟는 내 발이 조심스럽다. 넘치는 힘을 조금만 쓰려고 한다. 있는 힘을 다 쓰는 것이 무서워 조금만 건드리는 식이다. 슈퍼카가 다 그랬다. 다이내믹 모드에서 가변배기 시스템은 우렁찬 배기음을 내는데, 그 소리가 좋아 모두들 슈퍼카를 탄다.

 

에어스프링과 어댑티브 댐퍼, 액티브 안티롤 바를 모두 갖춘 차는 보디 컨트롤이 아주 좋다. 무게중심이 높은 차의 고성능은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한 서스펜션이 불안감을 덜어준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의외로 자잘한 진동을 걸러내 부드럽게 달린다. 전자식 에어서스펜션은 시속 105km 이상에서 차고를 15mm 낮추고, 토크 벡터링을 포함한 전자식 리어 디퍼렌셜은 뛰어난 핸들링을 제공한다. ZF 8단 변속 시간도 빠르게 바뀌었다. 키가 큰 탓에 다루기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며칠 손에 익으면 운전이 쉬워질 것 같다.

 

 

고속주행도 만족스럽지만 연료계 바늘의 움직임이 자꾸 신경 쓰인다. SVR의 진짜 오너는 기름값을 걱정하지 않겠지만 자주 주유소에 들러야 한다면 그것도 스트레스다. SVR은 저속기어까지 갖췄다. BMW X5 등의 온로드 SUV에 맞서는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저속기어가 없는 모델이 많았다. 최고급 모델 SVR은 오프로드 왕좌까지 아우르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다. 슈퍼리치의 마음이 그렇다.

 

 

SVR은 우렁차게 그리고 터무니없이 빠르게 달린다. 묵직한 승차감으로 운전자를 로열패밀리처럼 모신다. 넘치는 힘은 재미를 넘어 스릴을 맛보게 한다. 타이어만 바꾼다면 오프로드 능력은 차고 넘칠 거다. SVR을 알아가는데 광고성 기사가 귀를 솔깃하게 한다. ‘SVR은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8분 14초라는 SUV 최고기록을 세웠어요. 어지간한 스포츠카보다 빨라요. 중국 톈먼산의 경사 가파른 999개 계단을 올랐고요, 산 아래부터 입구까지 99개의 코너를 9분 만에 달려 페라리 458보다 빨랐다네요.

 


 

 

MASERATI LEVANTE TROFEO

레인지로버에서 마세라티로 바꿔 타니 차가 바닥에 쫙 깔리는 기분이다. 르반떼가 이렇게 나지막했었나? 과장을 좀 하면 운전석 높이가 승용차에 탄 듯하다. 차도 나지막한데 타이어도 편평률이 35로 납작하다.

 

 

르반떼 중 최고급 모델인 트로페오는 SVR보다 비싼 만큼 출력도 조금 더 세고, 무게도 가볍다. 페라리에서 만든 최고출력 590마력을 내는 V8 트윈터보 엔진을 얹어 말 그대로 슈퍼카처럼 달린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 3.9초, 최고속도 시속 304km. 현재 판매되는 모든 마세라티 중에서 가장 빠르다. SUV가 쿠페보다 빠르다. 트로페오에만 달린 코르사 모드는 레이스 트랙에서 필요한 주행모드다. 론치 컨트롤도 있다. 코르사 모드를 켜자 배기음이 달라지면서  ESP가 꺼졌다. ‘음, ESP를 끄고 일반도로를 달리기는 부담스러운데….’ 펑펑 터지는 배기음 속에 맹렬하게 달리는 트로페오는 람보르기니 우루스의 대항마임을 내세운다.

 

시속 200km까지 가속이 금방이다. V8 엔진의 무지막지함 속에 경쾌한 몸놀림과 앙칼진 울부짖음이 너무 좋았다. 무게중심이 높은 SUV지만 SVR에 비해 안정감이 있어 마구 휘둘러댈 수 있다. 르반떼는 앞뒤 무게배분 50:50과 낮은 무게중심을 내세운다. 전자식 주행안전장치에 통합 차체 컨트롤도 적용했다.

 


구불거리는 길에서 코너마다 패들 시프트를 당기며 가속하면 통쾌함이 슈퍼카 그대로다. SUV를 슈퍼카처럼 몰아가는데 네바퀴굴림이 안정감을 더한다. 가벼운 운전대는 감각이 예리하다. 바닥에 들러붙어 달리는 기세가 기블리와 다를 바 없다. 스포츠 감성에 젖은 차는  패들 시프트도 큼지막하다. 조정이 쉬운 차에서 슈퍼카 타는 맛이 진하다. 지능형 Q4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평소에 뒷바퀴를 굴리다가 앞바퀴에 힘이 필요하면 앞뒤 50:50으로 구동력을 배분하고, 오프로드 모드에서 차체를 높인다. 뒷바퀴에 달린 기계식 LSD는 토크벡터링과 함께 코너링 성능을 돕는다. 스카이훅 에어 서스펜션은 고속에서 차체를 35mm 낮추고, 오프로드에 들어서면 40mm 높일 수 있다. 

 

 

레인지로버 디자인이 그들만의 이미지를 고집한다면 마세라티는 예술 감각 뛰어난 이탤리언 디자인을 자랑한다. 르반떼는 삼지창 엠블럼 아래 전혀 새로운 SUV 디자인을 제시했다. 오프로드 경험이 없는 마세라티는 SUV를 만들면서 레이스를 마음에 두었다. 공간이 넉넉한 보디의 공기저항계수는 0.33에 불과하다. 왼쪽에 달린 시동 버튼이 마세라티의 레이스 혈통을 말해준다. 트로페오는 우승 트로피라는 뜻이다.

 

 

실내 구석구석의 만듦새가 명품을 떠올린다. 끝마무리에서 장인의 손길을 느낀다면 마세라티가 1년에 5만대 정도 만드는 작은 회사임을 알아야 한다. 10년 전만 해도 5000대 만들던 회사였다. 작은 회사 제품의 희소가치는 명품의 조건이었다. 피에노 피오레라는 가죽 브랜드는 처음 듣지만 그저 최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부드러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명품을 즐기는 거다. 명품 마세라티에서 가죽과 알칸타라, 그리고 탄소섬유 장식의 중요함이 남다르다. 트로페오는 르반떼 엠블럼 아래 밑줄을 하나 그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트로페오는 친구 여럿과 골프백을 가득 싣고 달리는 페라리다. 슈퍼카처럼 몰아가는 트로페오가 너무 재미나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마세라티가 나에게 속삭인다. “페라리 SUV가 나오기 전까지 트로페오는 페라리에 가장 가까운 SUV입니다.” 마음속에 르반떼가 자리 잡는가 싶더니 점점 커져만 간다.글_박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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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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