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과거 현재 미래를 잇다, 인천 개항누리길

전기모터로 달리던 i8 로드스터는 속도를 높이자 내연기관이 걸걸한 배기음을 내뿜었다. 그렇게 난 하루 만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달렸다

2019.07.17

 

우리나라 도시는 빠르게 변한다. 1970년대부터 진행된 도시 개발은 과거의 흔적을 서서히 그리고 말끔히 지웠다. 옛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빽빽한 빌딩 숲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너무 빠르게 바뀌다 보니 향수를 느낄 여유도 대상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인스타그램을 보면(트렌드를 확인하기에 유용하다) ‘#뉴트로’가 자주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인천 개항누리길이 특히 궁금했다. 뉴트로 ‘갬성’에 흠뻑 취할 생각에 출발 전부터 설렜다.

 

 

‘뉴트로와 어울릴 만한 차가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은 어렵지 않았다. BMW i8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i8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로 앞바퀴는 전기모터가, 뒷바퀴는 내연기관이 굴린다. 구동 방식만 봐도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함께 보여주기에 최적의 차다. 주행 중에도 미래와 과거를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로드스터다. 지붕을 여닫을 수 있어 사람들의 눈과 카메라를 한눈에 잡아챈다. 시승차는 부분변경 모델로 모터와 배터리 기술을 손봐 전기모터 출력은 12마력 증가한 143마력으로, 배터리 용량은 7.1kWh에서 11.6kWh로 늘어났다. 덕분에 전기모터로만 달릴 때 최고속도가 시속 70km에서 105km로 높아졌고, 주행가능거리도 32km에서 39km로 늘었다. 날렵한 움직임 덕에 인천까지 가는 길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이왕 개항누리길에 들렀다면 인천 아트 플랫폼을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개항누리길과 이어져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 예술공간이다. 약 500m 떨어진 차이나타운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다.

 

인천 개항누리길은 제물포항에서 멀지 않다. 당시 제물포항은 다른 나라와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 후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였다.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상인과 군대, 전쟁 물자 등이 오가는 항구가 제물포항이었다. 자연스레 항구 주변에 외국 영사관과 상점이 밀집한 상권과 조계지가 형성됐다. 인천 중구청 바로 앞에 위치한 개항누리길은 일본 조계지에 속한 거리였다(중구청은 옛 일본 영사관이다).

 

 

개항누리길을 걷다 보면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가 된 기분이다. 괜히 말끝에 (하겠)소와 (아니)오를 붙이고 싶다.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의 영향이 크다. 개항누리길 골목골목엔 근대식 은행, 공원, 호텔, 학교, 일본식 목조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화거리 조성으로 외관만 근대식으로 바꾼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지금도 보수공사를 거치며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도 꽤 있다. 개항박물관, 근대 건축전시관, 인천 개항박물관, 인천시 역사자료관, 대불호텔을 보면 이곳이 드라마 세트장인가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본 곳은 ‘팟알’이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팥죽과 팥빙수를 판매하는 곳이다. 1880~1890년에 지어진 이 3층 건물은 일본식 목조 주택으로 점포 겸 공동 주택으로 쓰였다.   “1층만 보면 익선동이나 삼청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카페예요. 하지만 2, 3층은 다르죠.” 팥빙수를 만들던 사장님이 가게 구석구석을 살피는 나를 보고 말을 건넸다. “이곳이 항구다 보니 물자 등을 내릴 하역 노동자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잘 공간을 2, 3층에 마련한 거죠. 리모델링을 하긴 했지만 인테리어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한번 올라갔다 오세요.”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가 내는 삐걱 소리에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다. 바닥은 다다미식이고 창에는 나무 창살이 위아래로 길게 뻗어 있다. 3층 벽에는 그곳에 머물렀던 하역 노동자들이 적어놓은 낙서까지 남아 있다. 카페를 찾았다가 역사를 곱씹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개항누리길은 골목 하나, 가게 한 곳에도 개항기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어요. 이곳의 고풍스러운 외관뿐 아니라 그런 것들도 함께 알아줬으면 참 좋겠어요.” 사장님이 팥빙수를 내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인증샷을 찍느라 바쁜 커플들 말고도 안내표지판을 꼼꼼히 살피며 무언가 열심히 메모하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공부 중인 학생들의 눈빛이 진지했다. 이곳에 오기 전 뉴트로 ‘갬성’을 운운하며 들떠 있기만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다시 i8 로드스터에 올라 개항누리길을 빠져나오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근대 배경에서 어느새 우리가 사는 현재로 돌아왔고, 전기모터로 달리던 i8 로드스터는 속도를 높이자 내연기관이 걸걸한 배기음을 내뿜었다. 그렇게 난 하루 만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달렸다.글_김선관 

 

 

 

 

모터트렌드, 자동차, 여행, 인천 개항누리길, BMW i8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CREDIT

EDITOR : 박호준PHOTO : PENN 스튜디오, 셔터스톡

모터 트렌드 ©motortrendkorea.com, ©motortrendkorea.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