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집념이 완성한 작품, 1965 폰티액 비방트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 차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2019.08.19

 

2년 전이었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나는 잡지에서 보거나 읽은 기억이 없는 1960년대 스타일의 GM산 드림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제작 품질은 분명 내가 GM 디자인실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례적인 기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스타일링은 수수께끼 같았다. 여느 GM의 드림카들에 비하면 덜 치장된 그 차는 전형적인 60년대식 쐐기 형태이면서도, 1950년대 초반 프랑코 스칼리오네가 디자인한 BAT 콘셉트카의 핀들을 참고해 부드럽게 다듬은 것이 분명했다.

 

콩쿠르가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폰티액을 주제로 만든 비방트가 GM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적 노력이 만들어낸 차라는 것을. 그는 최고의 능력을 가졌다. 프로젝트 진행 비용 전체를 자기 수입으로 마련할 만큼 탁월하고 열정적이다. 또한 대부분의 작업을 스스로 했다. 주인공은 바로 허브 애덤스다. 그는 이제 추억이 된 GM 산하 브랜드 폰티액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폰티액 GTO 개발로 이름을 알렸으며, ‘파이어버드의 아버지’라 불린다. 여기서 그의 명성과 엔지니어링 역량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

 

기원이야 무엇이든, 스타일링 주제는 진정한 우아함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몇몇 세부 요소와는 대조적으로 디자인은 대체로 탁월하다. 최소한의 저항과 최대한의 안정성으로 공기 속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다트를 연상케 한다. 궂은 날씨에 승객을 보호해줄 장치나 범퍼, 사이드미러, 도어 핸들이 아예 없는 건 드림카나 아이디어 모델, 쇼카, 콘셉트카 등 한 대만 만들어지는 차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비방트는 그런 장치나 번호판이 없음에도 일반도로 주행을 승인받았다. 그리고 애덤스는 12년 동안 규칙적으로 비방트를 몰았다. 미시간주는 미국 내 다른 주보다 늘 자동차에 대한 규제가 약했다. 1955년 1월 1일까지는 어떤 종류의 거울도 달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초기 모델이 이탈리아의 거장들에게 영향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최종 디자인에서는 이탈리아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비방트는 부인할 수 없는 미국차의 모습이다. 특히 원형이 아닌 휠 아치는 작은 차에는 반영할 수 없는 시각적 개성이다. 작은 차 비방트는 왠지 더 큰 차처럼 보인다.

 

이런 개인적인 차를 만드는 것이 아직 가능은 하지만, 애덤스가 작업하던 50여 년 전보다는 훨씬 까다로워졌다. 새롭게 법적인 의무사항이 된 것들이 너무 많고, 적용하기에 너무 비싼 요소도 정말 많다. 제법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개인적인 계획을 방해하는 데 혈안이 된 비관론자들도 있다. 이런 수준의 열정은 더 오래된 차일 경우 핫 로드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누릴 수 없는 수준의 자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일이다. 디자인이 이렇게 훌륭한데….글_Robert Cumberford

 

 

앞모습1 윈드실드 위쪽 모서리의 틀을 없앤 건 훌륭한 아이디어지만 법적 안전 요건에는 완전히 어긋난다. 윈드실드의 소재는 원래 플렉시글라스였다.
어느 쪽에서 봐도 이어지는 선이 없는 에어클리너 위 사각의 돌출 부분은 훌륭한 프로페셔널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면 나올 수 없었을 차체 표면 요소다.
3 차체 앞쪽 끝에서 시작해 차체 맨 뒤 수평으로 날이 선 곳에서 반전된 형태로 끝나는 이 선은 사실 약 5cm 너비로 단면이 솟아오른 것이다. 다른 어떤 차에서도 본 기억이 없는 혁신이다.
4 한 쌍의 공기흡입구 바깥쪽 모서리는 완벽한 타원으로, 내가 GM에서 10년 앞서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쪽 부분은 꺾인 뒤 다시 한 점으로 모인다.
대부분의 법규에서는 헤드램프가 너무 낮다고 판단하겠지만, 이 위치에서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을 앞쪽으로 밀어내어 전면에 역동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7 양쪽 공기흡입구 트인 부분 전체를 감싸는 부드러운 곡면은 차체 앞쪽 끝부분에 존재감을 준다.
차체 앞쪽에서 나타난 강렬한 선이 차체 표면으로 잠시 사라졌다가 금세 차체 길이만큼 뻗은 핀의 모서리로 다시 나타난다. 이 부분은 대단히 훌륭하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9 멋진 휠을 여덟 개의 볼트로 드럼 브레이크에 고정하는 구조는 폰티액 대형차의 선택사항이었다. 휠 지름은 15인치다. 무척 작은 이 로드스터와 걸맞은 비례를 보여준다.
10 거대한 배기 파이프를 보면 늘씬한 보닛 아래 무척 커다란 엔진이 들어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랬었다. 폰티액이 설계한 것을 개조한 낡은 엔진이었는데, 폐품으로 75달러에 팔렸다.
11 시각적 효과 때문에 차체 아래쪽 문턱을 자주 꼬고 비트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지면과 멋지게 평행을 이뤄 쭉 뻗은 부분이 단순하면서도 신선해 보인다.

 

 

뒤 측 세부사항1 어떤 소재로 만들었는지를 표현하는 뒤쪽 끝 날은 실제로 ‘판’의 성격과 이를 사용했음을 강조한다.
2 디자인 달인의 솜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핀의 끝부분이다. 한쪽에서 보면 면도날처럼 날카롭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단면이 절묘하게 끝난다.
3 차체 측면에서 가장 멋진 부분 중 하나는 차체 앞뒤 전체에 흐르는 이 역방향 곡면이다.

 

 

옆모습1 핀의 끝부분은 차체 길이를 극단까지 활용해 앞쪽으로 잘 뻗었다.
2 매우 기다란 문짝의 뒤쪽 끝부분은 놀랄 만큼 뒤로 물러났다. 경계선이 뒤 차축 중심선 위에 놓인다.
3 실제로는 바람막이에 불과한 앞유리의 경사각은 특이하다. 유리가 아주 낮아, 기능적으로는 이상적이고 심미적으로는 납득할 수준이다.
4 이 선은 내가 이 차에서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각선 방향으로 위쪽을 향하는 이 선은 핀 단면과 어우러지기에는 너무 곧게 뻗었다. 차체에서 가장 넓은 지점의 반사되는 면과 교차하면서는 혼란스러워진다.
5 휠이 들어가는 부분의 위쪽을 평평하게 만든 것은 1960년대의 흔적이고 아주 미국차다운 특징이다. 차체 길이를 강조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6 극단적으로 위를 향해 휘어진 차체 뒷부분은 탁월한 이탈각을 제공한다. 다만 낮은 차체의 로드스터를 험로용 SUV처럼 만든 세부 디자인은 그리 중요치 않다.

 

 

실내운전석을 보고 이 차가 개인적인 노력으로 단 한 대만 만들어진 차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전문가가 만든 고급스러운 모델명 표시, 센터콘솔 측면의 정교한 핸드 레일, 정확하게 틀에 맞춘 금속제 표면 처리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1 도어 안쪽 패널의 단순함은 분위기가 무척 좋다. 요란하지도, 복잡하지도, 성가시지도 않다.
2 나무 테를 두른 운전대는 멋스럽게 가늘고 보기 좋다.
3 속도계와 태코미터는 대단히 전문적인 솜씨가 엿보인다. 하지만 같은 시기 이탈리아 및 영국 차들에 쓰인 것과 비교하면 촌스러울 만큼 작다.
4 두말할 나위 없다.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활기찬 느낌의 모델명은 놀라운 작품이다.
5 계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만든 차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6 표면처리로 질감을 살린 이 조수석 앞 패널도 인상적이다.
7 좌석은 쇼카에서 구현한 것치고는 보기 좋다. 다만 인체공학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8 이것을 양산차 부품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9 차체 앞쪽에 도드라진 띠는 차체 뒤쪽에서도 돌출된 띠 형태로 반복되다가 차체 끝부분을 가로지르는 가장자리 직전에서 은은하게 사라진다.

 

화려한 형태의 차체는 탁월하게 숙련된 장인들이 패널 성형용 특수 장비인 잉글리시 휠을 사용해 합금 패널을 늘려 만들었다. 물론 허브 애덤스의 디자인에 맞춰 제작됐다.

 

뒷모습1 핀 단면의 모서리는 조여든 앞쪽에서 시작해 꾸준히 넓어지며 뒤쪽으로 갈수록 평평해진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탁월하다.
2 차체 단면 역시 앞쪽에서는 둥글고 꽉 찬 형태에서 시작하지만, 핀 끝에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울 만큼 평평해진다. 그러다 차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의 곡률보다 낮게 휘어지며 핀 끝에 이른다.
3 차체 중심의 오목한 부분이 차체 뒷부분 윤곽을 자연스레 빚어낸다.
4 핀 끝부분을 이 각도에서 보면 아주 얇은 차체 윤곽을 드러낸다.
5 차체 뒷부분 아래의 강판은 뒷바퀴가 들어가는 부분의 뒤쪽에서 차체를 가로질러 앞쪽으로 꽤 멀리까지 이어지며 바닥면을 매끈하게 정리한다.

 

 


 

 

인터뷰 허브 애덤스비방트의 디자이너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허브 애덤스는 제네럴 모터스 인스티튜트(1998년 이후로는 케터링 대학으로 알려짐)에서 공학 학위를 받았다. 풍부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5년 과정의 실무 프로그램이 운영됐던 곳이다. “스타일링과 엔지니어링 모두 고려했지만,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화가보다는 조각가에 가까운 편이었죠. 그래서 엔지니어링을 선택했습니다.” 비방트의 시각적인 매력을 비춰 보면, 그 선택은 GM 스타일링 부서에 손해였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애덤스와 나는 50여 년 전에 제너럴 모터스에서 일했던 것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우리는 모두 기대했던 것, 또는 허용됐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회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애덤스는 폰티액의 선행 엔진 설계 담당 선임 프로젝트 엔지니어 겸 그룹 리더였다. GM에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고성능 지향 디비전이었던 폰티액은 그때까지 엘리엇 ‘피트’ 에스테스와 존 Z. 드로리언 같은 적극적인 사람들이 이끌어왔다. 드로리언이 폰티액을 담당하며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미덕으로 삼고 있을 때 애덤스는 비방트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972년 GM이 주요 임원을 재편성하면서 그들을 포함한 엔지니어 출신 폰티액 임원들을 승진시키거나 내보냈다. 그리고 GM에 평생을 붙어 있던 마틴 카세리오를 브랜드 책임자로 앉혔다. 애덤스는 7.5ℓ 슈퍼 듀티 엔진을 개발해왔다. 폰티액 팀 전체는 공식 승인 없이 600대분 부품 세트를 만들 만큼 열성적이었다. 금요일에 새로 온 상사와의 기획회의에서 애덤스는 부품을 준비해 놨으니 일을 계속 진행해 600개의 엔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니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카세리오가 말했다. 애덤스는 “왜죠?”라고 물었다. 여전히 납득할 순 없지만 그 말은 실수가 됐다. 카세리오는 “내가 그렇게 얘기했잖습니까”라며 폰티액의 미래에 그런 고성능 제품이 설 자리는 없다고 선언했다. 카세리오는 그다음 주 월요일에 애덤스를 해고함으로써 그 말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애덤스는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후 자신이 디자인과 시제품 제작을 이끈 차가 75대가 넘는다고 추정했다. 79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그에게 삼륜전기차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특성상 직설적으로 답변했다. “자금은 당신에게 있잖소. 당신을 위해 만들어드립죠.”

 


 

 

GM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의 눈에 띄어 GM 디자인실에 입사했다. 하지만 1세대 콜벳 스타일링 등에 관여했던 그는 이내 GM을 떠났고 1960년대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그의 디자인 영역은 레이싱카와 투어링카, 다수의 소형 항공기, 보트, 심지어 생태건축까지 아울렀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그의 강직하고 수준 높은 비평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85년 <모터트렌드> 자매지인 <오토모빌>의 자동차 디자인 담당 편집자로 초빙됐고 지금까지도 매달 <오토모빌> 지면을 통해 날카로운 카 디자인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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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고정식PHOTO : Evan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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