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자유와 취향을 포기할 수 없는 30대의 방구석 라이프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기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내 안위와 기호뿐이다

2019.09.19

 

참 부지런히 바깥으로 돌아다녔다. 눈을 뜨면 나갈 생각부터 하고, 집에 돌아오면 곧장 침대로 향했다. 20대 때를 생각해보면 집에 머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땐 집에 있는 게 청춘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닭장 같은 주거 공간에 담기엔 나의 젊음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고나 할까? 옷 입는 것 하나에도 햄릿처럼 고민했다. 스타일이 나고 안 나는 게 죽느냐 사느냐였으니까. 낮엔 캠퍼스를 누비며 친구들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고, 밤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클럽을 전전했다. 여름이면 바닷가로, 겨울이면 강원도 스키장으로 향했다. 지금도 집 창고에 있는 앞코가 뾰족한 구두와 드레스 셔츠, 웨이크 슈트와 스노보드가 화려한 시절의 증거품으로 남아있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 그 시절은 영원하지 않았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나이가 점점 더 멀어져간다. 여전히 철들지 않은 애송이들이었지만 세상은 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직업을 갖고,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그 흔한 소주 한잔 함께하기도 쉽지 않다. 그중 몇몇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가정의 아빠로 지켜야 할 사람들도 생겼다.

 

여전히 나는 혼자다. 아직 누군가를 책임질 준비는커녕 자신도 없다.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하고 싶거나 사고 싶은 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사는 게 속 편하다. 덕분에 살아가는 데 있어 큰 고민거리나 주저함이 없다. 나 하나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나에게 ‘혼자’는 쓸쓸하고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행동주의자인 셈. 사실 옆에 누군가가 생기면 시도조차 못 해보고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그 단적인 예가 컨버터블이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가질 순 없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난관은 컨버터블이 효용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겐 쉽게 선택받기 어려운 장르다. 실내 거주성은 불편하고 짐 실을 공간도 다른 장르의 차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구매 전부터 숱한 반대에 부딪혀야 한다. 거란족에게서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의 유려한 말솜씨로 컨버터블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중고차 감가와 높은 보험료를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스스로 포기해버린다. 그래도 하나는 성공 아니냐고? 그들은 퍼스트가 아닌 세컨드로 컨버터블을 가진 돈 많은 부자다. 현실 성공률은 0에 가깝다.

 

하지만 혼자라면 다르다.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뚜껑을 열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어디로든 달릴 수 있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뺨을 스치듯 어루만지는 바람과 바람이 내는 속삭임이 더 좋을 때도 있으니까. 해변 도로나 숲길에서는 자연과 동화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컨버터블엔 낭만과 멋이 서려 있다. 그렇다고 뚜껑만 열리면 다 된다는 식의 컨버터블 맹신론자는 되기 싫다. 다른 매력도 겸비해야 한다. 단박에 떠오르는 컨버터블이 있다. 포르쉐 박스터. 미드십 엔진을 얹은 보기 드문 모델로, 엔진이 차의 가운데에 가깝다 보니 안정성이 뛰어나고 주행 감각이 독특하다. 더군다나 예쁘기까지 한다. 헤드램프는 귀엽고 뒤 펜더를 흐르는 보디라인은 어떤 각도에서나 풍만하고 섹시하다. 톱을 열고 달릴 때는 로드스터의 전형을 보여줄 만큼 아름답다. 컨버터블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타는 차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요즘은 집 밖보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혼한 친구들을 불러내자니 아내들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고 나같이 혼자인 남자 놈들과 마주하자니 생산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럴 바에야 집에 있는 게 낫다. 집세는 매달 나가니 집에 있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 보는 기분도 들고.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게임과 넷플릭스 시청이다. <모터트렌드>에서 게임 기사를 쓰고 있기에 매달 최신 게임 하나를 선정해 한 달 동안 열심히 파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덕업일치’다. 주 게임은 역시 축구다. 애정하는 팀의 유니폼이 방 한쪽 벽에 걸려 있는데 그걸 바라보면서 온라인 친구들과 게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축구화 끈 질끈 동여매고 직접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선호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활동성 저하 문제로 지금은 손가락으로 바쁘게 뛰고 있다. 넷플릭스는 일종의 긴장감 완화 도구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콘텐츠의 바다라 불릴 만큼 볼거리가 무궁무진해 죽기 전에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를 본다는 건 아마 불가능할 거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도 혼자의 미덕이다. 내가 번 돈을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다. 그 덕에 고상한 취미가 생기기도 했다. 수집이다. 요즘 모으는 품목이 몇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LP와 술, 신발이다. 그간 모은 것을 보면 확고한 나의 취향을 반영한다. 특히 LP가 그렇다. 내가 집중하는 건 1980~2000년에 나온 한국 대중가요 LP다. 장르도 댄스, 힙합, 발라드, R&B, 포크 등 다양해 그때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라 불릴 만하다. 그때 음악을 LP로 들으며 향 좋은 위스키 한 잔이면 혼자인 순간에 어느 커플보다 빛날 수 있다는 건 무리한 정신 승리일까? 이것과 별개로 LP와 위스키, 신발로 채워진 진열장을 보면 내 취향으로 가득 채웠다는 든든함과 인테리어로도 손색없는 모습에 언제나 만족스럽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혼영, 혼밥, 혼술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는 무슨 일이든 홀로 한다는 행위가 불안하고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나 역시도 달라졌다. 누군가는 혼족이나 1인 가구를 핵가족화, 탈가족화 등 변화해가는 가정 형태나 점점 심화되는 인간소외 현상과 결부하기도 하지만 그런 복잡한 생각 따위 잘 모르겠다. 혼자라서 가볍고 자유로우며, 넉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주변 일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줄어드니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한다.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기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내 안위와 기호뿐이다.글_김선관

 

 

 

 

모터트렌드, 자동차, 30대, 포르쉐, 박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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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하고고(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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