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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와 있는 미래

포뮬러 E 2018-2019시즌 마지막 뉴욕 경주를 보고 왔다. 자동차와 레이스의 미래가 바다 위에서 찬란했던 날, 아우디와 함께 한 오후의 기록이다

2019.09.30

 

시상대에서 ‘펑!’ 하고 색종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파란색과 보라색, 흰색 색종이가 시야에 가득했다. 새로운 시대의 레이스, 미래를 지향하는 포뮬러 E의 색이었다. 전기, 친환경, 미래를 상징하는 차가운 이미지가 뉴욕 하늘에서 모두의 승리를 축하했다. 뉴욕 소방국 로고가 보이는 거대한 배는 바다 위에서 사방으로 강력하고 굵은 물줄기를 뿜고 있었다. 몇 개의 거대한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부서지는 사이, 주변엔 거대한 무지개가 걸렸다.

 

 

지난 7월 13~14일, 뉴욕 브루클린 경주는 더블헤더였다. 시즌 마지막 두 경주가 뉴욕에서 열렸다. 트랙은 항구 바로 옆에 조성됐다. 주변은 공장지대 혹은 신흥 주거지역이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낮고 견고한 건물들이 늘어선 와중, 막 새로 지은 것 같은 주택들이 보였다. 요즘의 서울 성수동을 생각하면 비슷할까? 뜨겁고 또 뜨거웠던 날, 포뮬러 E 경주장 주변 공기는 아침부터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포뮬러 E 뉴욕은 시내가 아닌 항구 주변에서 열린다. 뉴욕 시내는 자동차 통행량과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 통제가 어렵고 빌딩들이 너무 높아 관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경주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린 딸을 목말 태우고 경주장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부담이 별로 없었다. 동네 산책이나 나들이를 위한 복장이었다. F1 경주장을 보는 것 같은 거대한 규모나 일말의 위화감도 없었다. 사람들은 준비된 부스에서 간식을 먹고, 다양한 브랜드에서 차려놓은 전시관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 오후 그대로의 분방함 사이사이에 미래가 성큼 전시돼 있었다.

 

 

이번 시즌 포뮬러 E 레이스는 전 세계 5개 대륙, 11개 국가, 12개 도시에서 열렸다. 트랙은 공도를 그대로 쓰고 경주를 위해 임시로 조성한다. 연습, 예선, 결승을 포함한 그날의 레이스는 그날 다 끝난다. 선수들은 예선 결과에 일희일비할 겨를이 없다. 결승 레이스는 예선 몇 시간 후에 열리니까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별로 없다. 딱 45분만 달린다. 최대한 빠르게, 무조건 추월해야 한다. 일정은 숨 가쁘고 레이스는 격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부터는 피트 스톱도 사라졌다. 45분 결승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베터리 성능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포뮬러 E는 모든 게 빠른 레이스였다. 경주 진행, 새로운 기술의 진화와 적용, 경주가 끝나면 곧 사라지는 트랙의 존재감과 치열한 승부까지.

 

 

전기모터가 레이스의 모든 요소를 바꿨다. F1 경주차 같은 굉음, 내연기관이 내뿜는 배기가스도 없으니까 경주의 모든 요소를 일상 깊숙이 초대할 수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달려야 하니, 전통적인 레이스에 비하면 규모도 축소됐다.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나 F1 같은 거대한 레이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는 이렇게 조성됐다. 완벽하게 미래적인 이벤트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 스며들 수 있게 됐다. 위화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대로 공원이나 놀이동산 같았다.

 

하지만 자동차 레이스에서 기대할 법한 고전적 흥분은 엄연히 살아 있었다. 포뮬러 E 경주차가 내는 소리도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지금 공도에서 접할 수 있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 고막을 찢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피유웅’ 하고 마는 정도로 김새는 소리도 아니었다. ‘둥둥둥’ 가슴을 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날카롭게 잘려 나가는 것 같은 소리였다. 베이스보단 기타에 가까운 소리. 첼로나 팀파니보단 유난히 현란한 주자가 빠르게 연주하는 바이올린 솔로의 흥분에 가까웠다.

 

 

그 소리 사이사이에 승부가, 재미가 다 있었다. 좁은 트랙에서 선수들은 자주 부딪치면서 추월했다. 이번 시즌부터는 액티베이션 존(Activation Zone)이 새로 도입됐다. 뉴욕 레이스에선 트랙 중간, 어떤 코너의 레코드 라인을 한참 벗어난 안쪽에 설치돼 있었다. 최적의 라인과 최고 속도로 코너를 탈출하는 대신 액티베이션 존의 시작 구간과 끝 구간을 앞바퀴와 뒷바퀴로 착실히 통과하면 정해진 시간 동안 출력을 225킬로와트(306마력)까지 올릴 수 있다. 게임을 현실로 옮겨놓은 것 같은 규칙이었다.

 

팬 부스트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경주 시작 6일 전부터 15분 전까지, 포뮬러 E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받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상위 5명의 드라이버는 몇 초간 최대 205킬로와트(340마력)의 추가 부스트를 쓸 수 있다. 중요한 순간의 추월을 위한 힘을 내 손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의 드라이버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연 소셜미디어 시대, 폭넓은 참여를 위한 레이스였다. 포뮬러 E는 객석과 트랙의 거리 또한 적극적으로 좁히는 중이었다.

 

 

아우디 스포트 압트 섀플러는 2017년 말 개막한 지난 시즌부터 포뮬러 E에 참가했다.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최초로 출전해 팀 챔피언십에서는 우승, 드라이버 부문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브라질 출신의 아우디 소속 드라이버 루카 디 그라시는 올해도 우승을 노렸다. 다니엘 압트는 그라시와 함께 모든 레이스에 출전했다. 아우디는 지난 시즌 35차례나 포디엄에 올랐던 팀이었다. 뉴욕 경주에선 그라시가 시즌 1위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몇 개 있었지만, 우승은 총 136점을 얻은 DS 테치타 소속 장 에릭 베르뉴가 했다. 루카스 디 그라시는 108점으로 종합 3위에 올랐다. 다음 시즌은 2019년 11월부터 4개의 대륙, 12개 도시에서 14번의 레이스가 예정돼 있다. 10번째 레이스는 서울 잠실에서 열린다.

 

파랗고 하얀 색종이는 하늘을 가득 메웠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트랙의 열기와 환호, 객석의 흥분과 주말의 여유도 서서히 가셨다. 레이스는 끝났고 트랙도 곧 사라질 예정이었지만 승부는 다음 시즌에도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미 와 있는 미래, 뉴욕은 여전히 뜨거운 오후의 복판이었다.글_정우성(자동차 칼럼니스트, 더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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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진우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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