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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박람회’에서 만난 F8 스파이더 & 812 GTS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열린 페라리 전시회를 찾았다. 페라리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현장에서 특별한 두 대의 차도 함께 만났다

2019.10.10

 

페라리란 무엇인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F1 레이싱 팀? 고풍스러운 클래식카? 아니면 심미적 가치가 높은 차? 페라리를 한 단어로 형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페라리가 가진 모습은 다양하고 그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페라리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페라리의 본영인 마라넬로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전시회 제목은 ‘Universo Ferrari’. 우리말로 ‘페라리의 세계’다. 안내장엔 ‘페라리의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최초의 전시회’라고 적혀 있었다. 페라리 역사 속에 있는 자동차들을 몇 개의 테마로 분류해 전시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들의 말대로 이런 류의 전시회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많은 페라리 고객과 팬들은 이례적인 이 전시회를 주목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비행기, 기차, 란치아 보이저를 골고루 타고 장장 15시간 만에 목적지인 모데나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페라리 담당자는 다음 날 일정표를 건네며 마라넬로로 떠나는 시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TV를 켰다. 하필 모데나에 도착한 그날 F1 이탈리아 몬자 그랑프리가 있었다. 몬자는 페라리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다. 하지만 페르난도 알론소가 2010년에 우승한 이후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F1 대회에서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대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팀이다. 그런 만큼 자존심이 매우 상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날 열린 퀄리파잉에서 샤를 르클레르가 폴 포지션을 차지하면서 이탈리아인들의 기대가 컸다.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호텔 로비가 시끌벅적했다. 전날 열린 F1 몬자 그랑프리 결승에서 르클레르가 메르세데스 AMG의 발테리 보타스와 치열한 접전 끝에 우승컵을 차지한 것이다. 이탈리아 기자들은 전날의 이야기를 자신의 무용담인 양 늘어놨다. 그들의 수다는 마라넬로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씩 사라지며 고요해질 때쯤 마라넬로 피오라노 서킷 옆에 자리한 특별 전시관에 도착했다. 다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사진 찍기 바빴다. 특별 전시관은 페라리를 상징하는 ‘로소 코르사’ 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주위에는 노란색 이탈리아 종마가 그려진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서킷에서는 굉음이 들려왔다. 멋스러웠다. 태양까지 쨍쨍하게 내리쬐며 물체의 색을 더 빛내주고 있었다. 전시관 문에는 빛 한 줄기 들어가지 못하게 암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대는 커져만 갔다. 그곳의 모든 걸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동영상으로 생중계를 하는 사람, 페라리 홍보담당자에게 행사 관련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 등 모두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 페라리를 향해 있었다.

 

 

암막 사이로 빨간색 조명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예상한 대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테마는 레이싱이다. 페라리와 레이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페라리의 창시자인 엔초 페라리는 레이싱 팀을 운영했고, 이후 레이싱 팀의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양산차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레이싱이 페라리 역사의 시발점인 셈이다. 전시관 한가운데에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립 90주년을 기념하며 F1 경주차(SF90)가 전시돼 있었다. 전시회를 안내해주는 페라리 담당자가 긴 설명을 늘어놨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라리의 F1 경주차를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시트 위에 제바스티안 페텔과 샤를 르클레르가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SF90 뒤에는 와이드 스크린이 있었는데 로일란 곤잘레스 아스카리, 마이크 호손, 니키 라우다, 존 서티스, 미하엘 슈마허, 키미 라이쾨넨 등 페라리 레이싱 영광의 주역들에 대한 헌정 영상이 나왔다. 영상 중간 니키 라우다와 미하엘 슈마허가 나올 땐 가슴이 먹먹해졌다. 전시관 한편에는 트로피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2019 F1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르클레르가 우승해 받은 것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주는 페라리 담당자는 “이제 이 옆에 이탈리아에서 따낸 트로피가 놓인다”며 우쭐댔다. 그 모습이 밉지 않고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9년 만에 몬자 그랑프리 우승인데, 그런 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두 번째는 클래식 전시관으로, 레이싱 못지않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산차 기반의 경주차 인증을 위해 태어난 250 GTO(1962년)와 세르조 피닌파리나가 사랑한 308 GTB(1975년)가 한자리에 모였다. 페라리만큼 클래식카에 관심을 쏟는 브랜드도 드물다. 2006년도에는 고객들의 차가 페라리 유산의 한 부분이기를 바라며 클래식 리페어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단순히 전시된 예술품으로서의 페라리가 아니라 직접 운전해보고 모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을 얻길 원하는 고객들의 진짜 욕구를 간파한 것이다. 그곳에 있는 클래식카 모두 클래식 리페어의 손을 거쳤다.

 

 

상상해보자. 페라리를 타고 무엇을 해야 할까? 멋진 도로를 달리며 여행을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최고의 성능을 체험하며 트랙을 달리는 게 좋을까? 정답은 없다. 운전자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세 번째 전시관 한가운데 원형 무대를 만들어 주행의 즐거움을 여행과 도로 주행에서 얻는 사람들과, 성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눠 그들을 위해 각각 라페라리 아페르타와 FXX-K 에보를 전시했다. 라페라리 아페르타는 페라리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한정판 하이퍼카로 라페라리의 오픈톱 버전이다. V12 자연흡기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조합으로 1000마력을 내며 최고속도도 시속 350km나 돼 페라리에서 가장 빠른 컨버터블이다. FXX-K 에보는 라페리라의 파워트레인에 F1, GT3, GTE, 챌린지 등에서 쓰이는 다양한 기술이 들어간 트랙 전용 슈퍼카다. 비슷해 보이는 두 차를 비교하며 양쪽에 있는 현재 페라리가 운영하는 해외 시승 프로그램과 페라리 챌린지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전시관은 모터쇼의 부스를 보는 것처럼 가장 널찍했다. F8 트리뷰토를 시작으로 812 슈퍼패스트, 포르토피노, GTC4 루쏘는 물론 지난 5월 공개된 SF90 스트라달레까지 현재 판매 중인 모든 양산차를 한자리에 모았다. 대단한 차들을 보고 오니 상대적으로 금세 차분해졌다. 하지만 이미 페라리가 예상이라도 하듯 옆에 있는 야외무대에 몬자 SP1과 SP2를 전시했다. ‘아이코나’라는 이름이 붙은 페라리의 새로운 스페셜 세그먼트 모델이다. 160 MM, 750 몬자, 860 몬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는데 당시 경주차들이 가지고 있던 디자인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복잡한 시각적인 디자인 요소를 없애고, 절제되고 격식 있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몬자 SP 모델은 페라리뿐 아니라 세상 어떤 차보다 심미적인 가치가 높다. 그렇다고 유려하고 멋진 생김새만이 이 차의 전부는 아니다. 최고출력 810마력을 발휘하는 12기통 엔진이 들어갔으며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2.9초, 0→시속 200km 가속시간은 7.9초다. 몬자 SP1과 2가 전시된 공간 옆으로 피오라노 서킷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시험 주행하는 각종 페라리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과 2시간 동안의 관람으로 페라리 브랜드의 가치와 세계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기엔 브랜드의 역사나 자동차, 활동 영역이 너무나 깊고 방대하다. 하지만 페라리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함께 걸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속도와 감성, 예술성을 살펴본 것만으로도 뭉클했다. 당시를 살진 않았지만, 레이싱을 하진 않지만, 페라리를 소유하진 않지만 페라리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오직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다. 참가한 기자들 대부분의 얼굴이 ‘로소 코르사’ 색마냥 붉게 달아올랐고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으니까. 흡사 티포시(페라리 열성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페라리 담당자는 기분을 곱씹을 여유는 주지 않았다. 우리를 재촉해 어두컴컴한 밀실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새빨간 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웠고 런웨이 양옆에 마련된 관람석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두둥둥 두둥둥’ 소리는 페라리의 신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장 박동 소리같았다.

 

 

퍼포먼스와 오픈에어링의 만남, F8 스파이더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조금은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페라리 8기통 모델은 쿠페 공개 후 1~2년 뒤에 스파이더를 공개하는 게 보통인데 이번은 예외였다. 지난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엄으로 F8 트리뷰토를 선보였으니 불과 6개월 만에 로드스터를 내놓은 것이다. 국내의 경우 F8 트리뷰토 출시 행사가 7월에 있었다. 그래서 그 기간이 더 짧게 느껴졌을 터. 하지만 페라리 8기통 모델의 인기나 스파이더를 향한 소비자들의 구애를 생각하면 시기를 앞당긴 게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도 아니다.

 

 

F8 스파이더는 1977년 308 GTS로 거슬러 올라가는 페라리 미드십 엔진을 얹은 스파이더의 최신 모델이다. 요즘 출시하는 페라리 스파이더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하드톱 루프와 엔진 위에 루프 수납함을 지닌다. 트리뷰토와 비교했을 때 루프 모양이 조금 다르게 생겼는데 벨트라인에서 뻗어 나와 루프를 잇는 라인을 B필러로 옮기면서 루프가 작고 평평해졌다. 하드톱 루프는 엔진 열을 낮추기 위해 두 조각으로 나뉘어 접힌다. 전동으로 움직이는 하드톱 루프는 시속 45km 아래에서 14초면 열거나 닫을 수 있다. 트리뷰토와 가장 큰 디자인의 차이는 운전석과 조수석 헤드레스트 뒤편에 덧댄 패널(플라잉 버트레스). 가오리를 닮은 커버 위쪽을 지나는 공기를 스포일러 아래로 흐르게 해 다운포스를 높여준다.

 

 

페라리의 최고 마케팅 경영자(CMO) 엔리코 갈리에라는 “이 차는 컨버터블의 우아함과 스포츠카의 퍼포먼스를 결합했다”고 연신 강조할 만큼 주행 성능에도 큰 공을 들였다. F8 스파이더에 얹어진 엔진은 페라리의 V8 중 강력한 엔진이다. 최고출력 720마력, 최대토크 78.5kg·m를 내는 V8 3.9ℓ 트윈터보 엔진에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맞물렸다. 자연흡기의 깔끔한 반응과 터보 엔진의 힘을 합쳤다고 한다. F8 트리뷰토와 차체 형상이 약간 다르고 컨버터블 모델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무게 증가(70kg)가 있었지만 무게 배분은 41.5:58.5로 동일하다. 덕분에 운동 성능 수치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0→시속 200km 가속시간(8.2초)은 0.4초 늘었을 뿐, 0→시속 100km 가속시간(2.9초)과 최고속도(시속 340km)는 같다.

 

 

이름에 담긴 헤리티지, 812 GTS812 슈퍼패스트의 스파이더 버전도 함께 공개됐다. 812 GTS라는 이름을 보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스파이더가 아닌 GTS일까? 812 GTS가 나오기 전까지 페라리 12기통 스파이더의 마지막 양산 모델은 365 GTS4(1969년)이다. 그 이후로도 550 바르케타 피닌파리나(2000년)나 F60 아메리카(2014) 등 4개의 모델이 있었지만 리미티드 모델로만 생산됐고 양산화되진 못했다. 페라리는 50년 만에 양산된 12기통 스파이더이자 모든 양산차를 통틀어 가장 힘이 센 로드스터의 이름에 헤리티지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365 GTS4에서 이름을 따와 812 GTS라 이름 붙였다. 처음엔 여느 브랜드가 쓰는 GTS와 의미가 달라 조금 낯설었지만 내용을 알게 되니 금세 이해가 갔다.

 

 

페라리 디자인 총괄 플라비오 만초니의 말에 따르면 812 GTS의 형태는 두 가지 스타일로 디자인됐다. 벨트라인 아래는 812 슈퍼패스트, 위는 데이토나로 유명한 365 GTB4다. 라인이 루프에서 테일램프 부근까지 길고 낮게 내려와 뒷부분이 짧게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루프를 여닫아도 전체적인 유선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하드톱은 F8 스파이더와 마찬가지로 시속 45km 아래서 열거나 닫을 때 14초가 걸린다.

 

 

파워트레인은 812 슈퍼패스트와 같다. V12 6.5ℓ 자연흡기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조합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도 800마력과 73.3kg·m로 같다. 슈퍼패스트보다 무게는 75kg 더 나가 0→시속 100km 가속시간(3초)이 0.1초 늘었다. 0→시속 200km 가속시간은 8.3초, 최고속도는 시속 340km다. 스포츠 성향이 강한 F8 스파이더와 트랙에서 맞붙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스펙이다.

 

 

실내도 812 슈퍼패스트와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트와 루프 여닫힘 버튼, 운전자와 동승자 공간을 좀 더 넉넉하게 디자인했다. 루프를 열었을 때 환경을 생각해 앞유리 위에는 L자형 소형 플랩을 달아 와류를 만들어 내부로 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는다. 공기역학적 측면에서 루프를 개발할 때에도 슈퍼패스트와 동일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장치를 만들었다. 헤드레스트 뒤편엔 공기 통로를 만들고 휠 아치 쪽에 있던 공기흡입구를 없애며 리어 디퓨저를 재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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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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