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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다운 전기차, 타이칸

꾹꾹 눌러 담은 종합선물세트다. 내연기관에서 갈고닦은 노하우가 전기모터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지 궁금하다면 타이칸을 보라

2019.10.11

 

참기 어려웠다.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 푸저우까지 이동 시간만 7시간이 넘게 걸려서가 아니다. 버스에서 컵라면을 먹던 중국인 때문도 아니다. 포르쉐의 첫 전기차 ‘타이칸’에 대한 궁금증이 참기 어려웠다.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전 세계 곳곳에서 위장막을 뒤집어쓴 타이칸의 모습이 포착됐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미 머릿속은 ‘달릴 때 어떤 소리가 날까? 주행거리는 충분할까? 최고출력은 얼마나 될까?’ 같은 질문들로 가득했다. 보안 규정이 엄격해 공개 행사 하루 전까지 타이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타이칸은 ‘활기 넘치는 젊은 말’이라는 뜻이다. 타이칸의 존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부터였다. 콘셉트카 단계였기 때문에 ‘미션 E’로 불렸다. 미션 E는 공개되자마자 이목을 끌었다. 동승석까지 이어진 기다란 디스플레이, 커브드 모니터 위에 자리 잡은 디지털 계기반, 코치도어 등 눈길을 잡아 끄는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가 전기차를 만든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미션 E는 제 몫을 다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포르쉐가 최소 2014년부터 순수 전기차에 대한 개발과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포르쉐 박사의 전기차는 논외). 일반적으로 콘셉트카를 만드는 데 반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타이칸은 예외다. 일단 행사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중국, 독일, 캐나다 3개 대륙에서 삼원 생중계로 동시에 차를 공개했다.

 

중국에선 저녁 9시, 독일에선 오후 3시, 캐나다에선 오전 9시에 말이다. 중국 푸저우 핑탄섬의 풍력발전소, 독일 베를린 근교 노이하르덴베르크의 태양광 발전소,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공개 장소였다. 각각 풍력 에너지, 태양광 에너지, 수력 에너지를 상징한다. 셋 다 전기를 만드는 신재생에너지라는 점에서 타이칸과 맥락이 닿는다. 행사는 포르쉐 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독일

캐나다

중국

 

베일을 벗은 타이칸은 미션 E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에 띄는 차이라고는 차체 크기와 휠 사이즈가 줄고 코치도어가 사라진 정도였다. 낮게 깎인 보닛 앞부분과 헤드라이트에 이어진 에어커튼은 미션 E의 얼굴과 흡사하다. 보닛 양옆을 한껏 부풀려 놓아서 차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 너비가 넓어 보인다. “타이칸의 전면부를 디자인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파나메라와 달리 보닛 아래에 엔진을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911처럼 낮고 날렵한 실루엣을 구현할 수 있었죠.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디자인 디렉터인 피터 바르가의 말이다.

 

타이칸은 옆에서 봤을 때 B 필러를 기준으로 앞은 911, 뒤는 파나메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지붕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이 파나메라를 닮았지만 패스트백은 아니다. 뒷모습은 익숙하다. 911의 디자인이다. 칼로 얇게 그어놓은 듯한 리어램프 아래에 브랜드명과 모델명이 적혀 있는데 ‘포르쉐’라는 글씨를 투명한 입체도형으로 처리했다. 피터 바르가에게 전기차 모델과 내연기관 모델을 구분하는 장치로 글자를 투명하게 한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그는 빙긋 웃으며 “아직 잘 모르겠다”라는 답만 내놓았다.

 

 

겉모습을 봤을 때 기자들의 반응이 ‘으흠(고개를 끄덕이며)’ 정도였다면 실내는 ‘오!(눈을 동그랗게 뜨며)’였다. 타이칸 인테리어의 8할은 디스플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조작이 화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포르쉐의 헤리티지와 같은 5개의 원형 계기반은 곡선형 디스플레이에 구현된다. 계기반 양옆에는 헤드라이트, 자세제어, 차고 조절 등 주행과 관련된 버튼이 위치한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옮기면 운전대 왼쪽에 시동 버튼이 보인다. 사실 타이칸은 시동 버튼 대신 전원 버튼이라 부르는 게 어울린다.

 

열쇠를 돌리듯 레버를 비틀면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뿜었던 기존 방식과 달리 타이칸은 가전제품에 달려 있을 것만 같은 작고 동그란 버튼을 꾹 누르기만 하면 된다. 시동 버튼 반대편엔 기어레버가 있다. 992에서 봤던 바로 그 네모난 기어레버다. 991의 우람했던 기어레버를 992로 넘어오면서 성냥갑같이 작게 바꾼 이유가 타이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크기와 디자인이 절묘하다. 운전대를 아무리 돌려봐도 손이 곰 발바닥만큼 두껍지 않다면 기어레버가 닿을 일은 없다. 오히려 손을 오른쪽 아래로 뻗을 필요 없이 약 10cm만 움직이면 기어를 바꿀 수 있어 동선이 간단하다. 센터페시아 중앙에는 10.9인치짜리 디스플레이가 들어가 있다. 원한다면 동승석에도 디스플레이를 추가할 수 있다.

 

 

놀라긴 아직 이르다. 타이칸은 1열과 2열을 아우르는 새로운 파노라마 선루프를 적용했다. 루프 중간에 기둥이 없이 하나의 통유리로 되어 있다. 물론 그냥 유리가 아니다. 안전성과 자외선 차단을 위해 강화유리와 필름을 총 일곱 겹으로 붙여 만들었다. 별도의 가림막이 없어도 열과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 개폐는 불가능하다.

 

뒷자리 거주성은 조금 아쉽다. 타이칸의 휠베이스는 2900mm다. 휠베이스만 놓고 보면 현대 팰리세이드와 똑같다. 적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막상 타이칸의 뒷자리에 앉아보면 휠베이스에 비해 레그룸이 넉넉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원인은 1열 시트포지션이 911처럼 낮고 길게 누운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의자에 앉듯 발을 아래로 늘어뜨리는 게 아니라 카트에 탈 때처럼 앞으로 쭉 뻗는 식이다. 시야와 무게중심을 낮춰 포르쉐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운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그걸 포르쉐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2열 하단에만 배터리를 넣지 않았다. 포르쉐는 이걸 ‘풋 개러지’라고 부르는데 앞뒤 레그룸을 넓힐 수 없으니 아래로 여유 공간을 만든 것이다. 불과 몇 cm 차이지만 쿠션과 다리가 닿는 면적이 늘어나 한결 편하게 느껴진다.

 

 

타이칸을 몰아볼 순 없었다. 하지만 운전해보지 않고도 차의 성격을 가늠할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론치 컨트롤이 그렇다. 포르쉐는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기 쉽기로 유명하다. 몇 번만 사용해도 시스템 제한이 걸리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연달아 론치 컨트롤을 즐길 수 있다. 지난 포르쉐 월드 로드쇼에서 수십 명의 기자들이 1대의 차로 줄지어 론치 컨트롤을 체험했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들이 ‘저러다 차 망가지는 거 아니야?’라며 걱정했다. 타이칸도 마찬가지다.

 

테스트 자료에 따르면 타이칸 터보 S는 761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으로 론치 컨트롤을 사용해 시속 200km까지 26번 반복해 달릴 수 있다. 재차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10초 이내다. 26번 달리는 동안 가장 빠를 때와 느릴 때의 기록 차이는 1초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이는 포르쉐가 전기차를 만들 때조차 ‘포르쉐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배터리 온도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다.

 

 

단순히 가속만 빠른 건 아니다. 타이칸은 ‘녹색지옥’ 뉘르부르크링에서 7분 42초의 랩타임을 기록했다. 4도어 양산 전기차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9월 18일 기준).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2단 변속기의 공이 크다. 보통 전기차는 1단 변속기를 사용하지만 타이칸은 리어 액슬에 2단 변속기를 적용했다. 1단 기어는 초반 가속을 담당하고 속도가 오르면 2단 기어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고속에서도 출력과 효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그 밖에도 타이칸에는 새로운 3 체임버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사용했다. 차의 하중이나 도로 상황에 맞춰 높이를 조절한다. 행사장에서 인테리어를 살펴보기 위해 차에 올라타자 에어 서스펜션이 작동해 차고를 유지했다. 새로운 에어 서스펜션은 경량화 소재를 사용했으며 속도에 따라 22mm까지 차고를 조절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됐는지는 직접 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충전과 주행거리다.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다. 포르쉐는 양산 전기차 최초로 800볼트 전압 시스템을 적용했다. 270kW의 고출력을 이용하면 5분만 충전해도 100km를 달릴 수 있으며, 23분 만에 5%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이론상 그렇다. 국내에는 아직 그만한 충전 시설이 없다. 이에 대해 포르쉐 코리아는 지난 4월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대영채비’와 파트너십을 맺고 충전기 인프라를 확장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충전 단자는 양쪽 사이드미러 하단에 각각 하나씩 총 2개다.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는 최대 450km다(WLTP 기준).

 

 

타이칸 터보는 15만2136유로(약 1억9900만원), 터보 S는 18만5456유로(약 2억4300만원)로 알려졌다. 옵션을 추가하지 않은 가격이다. 터보가 아닌 기본 모델도 올해 안에 공개된다. 파생 모델인 ‘크로스 투리스모’도 2020년 말 등장할 계획이다. 타이칸 터보의 국내 출시 일정은 미정이지만 글로벌 고객 인도 일정과 사전 예약 대수를 고려할 때 빨라도 내년 하반기는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0% 포르쉐, 100% 전기차.” 마이클 슈타이너 포르쉐 AG R&D 총괄 사장이 타이칸을 공개하기 직전 한 말이다. 포르쉐는 2022년까지 60억 유로를 전동화에 투자하고 2025년에는 라인업의 65%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로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르쉐는 타이칸 터보를 통해 비록 동력원은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뀔지라도 지난 71년간 포르쉐가 지켜온 스포츠카 헤리티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타이칸을 보아하니 포르쉐는 ‘외계인을 고문해 만든 차’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내년 하반기가 기다려진다.

 


 

 

포르쉐 R&D 이사회 멤버
마이클 슈타이너와 타이칸 Q&A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다. 동승석에도 디스플레이를 넣은 이유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법규상 운전석에 모든 기능을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동승자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다. 운전자가 운전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중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SUV 대신 고성능 세단을 첫 전기차로 출시한 까닭이 궁금하다.
간단하다. 우리가 포르쉐이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스포츠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기차 라인업이 확장되면 언젠가 SUV로도 나올 것이다. 물론 그 SUV도 포르쉐답게 스포티할 것이다.

 

타이칸은 전기차이므로 터보가 없다. 그런데 이름엔 터보가 들어간다.
맞는 말이다(웃음).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S-GTS-터보-터보S로 이어지는 기존 라인업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터보라는 표현을 썼다. 포르쉐에게 터보란 터보차저 말고도 고성능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LG 배터리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뛰어난 주행성능을 발휘하는 데 LG의 배터리가 가장 적합했다. 무게당 주행거리보다 무게당 출력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전기차지만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단, 다른 회사에서 더 나은 조건의 배터리를 개발한다면 공급업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타이칸을 만들며 어려웠던 점을 꼽자면?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선 배터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레이아웃부터 시작해 모든 걸 새롭게 설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고출력을 쏟아내는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일정한 성능을 유지하도록 조율하는 부분이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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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호준PHOTO :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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