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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녹아든 헤리티지

자동차에 녹아든 브랜드 헤리티지를 살폈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2019.12.05

 

롤스로이스 코치 도어

1998년 BMW에 인수된 롤스로이스는 1991년 단종된 팬텀을 2003년 되살렸다. 롤스로이스의 후손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초창기 팬텀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곳곳에 적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어도 그중 하나다. 클래식 팬텀은 앞뒤 도어 손잡이가 나란히 있어 양문형 냉장고처럼 양쪽으로 열렸다. 바로 이 도어를 7세대 팬텀에 물려주기로 한 거다. 하지만 이 도어를 받은 건 팬텀뿐이 아니다. 롤스로이스는 새로운 도어를 모든 모델에 전통처럼 내려주기로 했다. 이후 출시된 롤스로이스 모델은 마차의 문처럼 양쪽으로 열린다고 해서 코치 도어라고 이름 붙은 이 도어를 받게 됐다. 지난해 출시된 8세대 팬텀은 물론 롤스로이스의 첫 SUV 컬리넌도 코치 도어를 달았다. 그런데 도어가 네 개인 모델은 상관없지만 두 개인 모델은 어떨까? 고민이 없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롤스로이스는 전통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2도어 컨버터블 모델인 던의 도어 손잡이는 뒤쪽이 아니라 앞쪽에 있다. 그리고 앞에서 열린다.

 

2세대 디스커버리

 

3세대 디스커버리

 

5세대 디스커버리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비대칭 테일게이트 디자인

랜드로버의 1세대와 2세대 디스커버리는 테일게이트 오른쪽에 커다란 스페어타이어를 달고 있었다. 3세대 모델로 진화하면서 테일게이트에 달린 스페어타이어가 트렁크 바닥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디 온 프레임과 모노코크 구조를 결합한 새로운 통합 차체 프레임(IBF) 덕에 트렁크 바닥 아래에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돼서다. 테일게이트 오른쪽에 스페어타이어가 달려 있을 땐 번호판을 왼쪽에 달 수밖에 없었다. 3세대 모델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이 전통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테일게이트를 비대칭으로 디자인하고 왼쪽에 번호판을 달았다. 4세대 디스커버리는 3세대 디스커버리와 앞뒤 모습은 물론 실루엣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왼쪽에 달린 번호판도 그대로 적용됐다. 문제는 2017년 출시된 5세대 모델에서다. 실루엣부터 앞뒤 모습까지 완전히 달라진 디스커버리에 억지로 비대칭 테일게이트를 적용하면서 뒷모습이 이상해졌다. 뒤창이 이전 모델보다 좁은 데다 차고가 높아져 껑충해 보이는데 비대칭 디자인까지 섞여 있으니 뭔가 ‘구안와사’에 걸린 환자 같다.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의 전통을 지켰지만 디자인은 잃었다.

 

BMW 303

 

BMW 7시리즈

 

BMW 키드니 그릴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꼽으라면 단연 BMW의 키드니 그릴이다. 콩팥 두 개가 나란히 놓인 것 같다고 해 키드니 그릴이란 이름이 붙은 이 그릴은 역사가 꽤 오래됐다.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BMW가 공개한 303에 이 그릴이 달려 있었다. 키드니 그릴은 모양이 조금씩 달라졌다. 초창기 키드니 그릴은 지금처럼 가로로 넓적하지 않고 세로로 길쭉했다. 그러다 점점 작아져 콧구멍 두 개가 붙은 것처럼 조그만 키드니 그릴이 붙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키드니 그릴이 점점 커지고 있다. 7시리즈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얼굴의 반 이상을 키드니 그릴이 덮었다. BMW가 지난해 공개한 콘셉트카 비전 i넥스트는 역대급(으로 괴상한) 키드니 그릴을 달았다. BMW의 키드니 그릴은 얼마나 더 커질까?

 

 

메르세데스 벤츠 칼럼식 시프트 레버

SL과 SLC, AMG 모델처럼 신나게 내달리는 데 초점을 맞춘 모델을 제외하고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어레버가 운전대 뒤에 달려 있다는 거다. 기다란 레버를 위아래로 움직이거나 끝에 달린 버튼을 눌러 기어를 변속하고 ‘파킹’에 둘 수 있다. 벤츠의 칼럼식 시프트 레버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승용차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건 2005년 출시한 5세대 S 클래스부터다. S 클래스는 당시로는 첨단 장비라고 일컬어지는 각종 장비를 그득 담고 출시됐다. 벤츠가 야심차게 개발한 커맨드 컨트롤러도 챙겼다. 오디오나 내비게이션 등 차의 각종 기능을 마우스처럼 생긴 컨트롤러로 조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컨트롤러를 센터콘솔 앞쪽에 달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기어레버를 둘 곳이 애매해진 거다. 기어레버와 컨트롤러를 함께 놓기엔 그림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벤츠는 기어레버를 운전대로 옮기고는 이렇게 말했다. “R 클래스의 전통을 잇기 위해 칼럼식 시프트 레버를 적용했습니다. 기어를 쉽게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사실 승용차에 칼럼식 시프트 레버를 처음 적용한 건 BMW다. 이들은 2001년 선보인 4세대 7시리즈 운전대 뒤에 기어레버를 달았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불만이 커 5세대부터 다시 센터터널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벤츠는 아직까지 운전대 뒤에 달린 기어레버를 고수하고 있다. 6세대 S 클래스는 물론 지난 9월 국내에 출시된 신형 GLE도 칼럼식 시프트 레버를 달고 있다. 이쯤 되면 벤츠의 헤리티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8세대(신형) 911

7세대 911

 

포르쉐 둥근 헤드램프

1993년 세상에 등장한 포르쉐 911은 봉긋하게 솟은 양쪽 보닛 라인 앞에 둥근 헤드램프를 달았다.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날렵하게 떨어지는 옆 라인과 앞부분을 뾰족하게 다듬은 보닛 라인이 둥근 헤드램프와 썩 잘 어울렸다. 1988년 파리모터쇼에서 모습을 공개한 2세대 911은 1세대와 디자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굴은 물론 옆 라인도 1세대와 거의 비슷했다. 둥근 헤드램프도 바뀌지 않았다. 이후 둥근 헤드램프는 911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93년 출시된 3세대 993 시리즈 역시 살짝 위아래로 늘어나긴 했지만 둥근 헤드램프는 변함없었다. 그런데 1997년 데뷔한 996 시리즈에서 911 골수팬들을 광분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둥근 헤드램프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거다. 위아래로 길게 늘어진 데다 아래가 넓적하기까지 한 헤드램프를 보고 팬들의 야유가 빗발쳤다. 결국 포르쉐는 다시 둥근 헤드램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선보인 997 시리즈는 초창기 911처럼 완전히 둥글진 않지만 그래도 둥근 모양을 찾았다. 그리고 2018년 LA 모터쇼에서 공개된 신형 911은 헤드램프가 좀 더 둥글어졌다.

 

 

애스턴마틴
반대로 열리는 보닛

애스턴마틴 DB2는 보닛이 앞유리 아래쪽에서 열렸다. 앞쪽 그릴과 앞 펜더 위쪽까지 한 덩어리로 돼 있어서 차의 앞부분이 거의 통째로 열렸다. 이렇게 하면 머리를 엔진룸 가운데까지 쏙 집어넣지 않고도 엔진과 부품을 잘 살필 수 있고 정비도 수월하다. 이후 애스턴마틴은 DB 시리즈에 이렇게 열리는 보닛을 하사했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한 덩어리였던 앞부분이 범퍼와 보닛 등으로 조각이 나뉘었고, 결국 보닛 위만 열리게 됐다. 그런데 뒤에서 앞으로 열리니 엔진과 부품을 살피거나 정비하기에 오히려 불편해졌다. 애스턴마틴은 DB9에 일반 자동차처럼 그릴 위쪽에서 열리는 정상적인(?) 보닛을 달았다. 애스턴마틴 팬들은 분노했다. DB 시리즈에서 정상적인 보닛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반대로 열리는 보닛은 DB 시리즈의 전통이었다. 결국 애스턴마틴은 DB11에서 보닛 여는 방법을 원래대로 돌려놨다. 지금 DB11은 윈드실드 아래쪽에서 보닛이 열린다. 참, DB 시리즈의 고성능 버전인 DBS 슈퍼레제라도 보닛이 반대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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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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