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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색 자동차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 색깔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차들은 무채색이다. 무채색 차를 탄다고 해서 품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2019.12.13

 

거리를 달리는 렉스턴 스포츠가 멋졌다.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은 그 차가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빨간색의 렉스턴 스포츠는 달라 보인다. 평범한 차가 색 하나로 특별한 차가 됐다.

 

과거 영국 여행길에 빨간색 미쓰비시 파제로(현대 갤로퍼)가 많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미쓰비시가 파제로를 디스커버리의 경제적인 대안으로 만들면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영국 시장의 기호를 파고든 것이 빨간색이었다. 영국에 우리 눈에도 익숙한 파제로가 빨간색 기본형 차로 많았다.

 

영국의 오래된 성을 배경으로 빨간색 자동차는 잘 어울린다. 전혀 다른 시간을 달리는 고성 앞에서 원색의 자동차가 반짝일 때 보기 좋았다. 칙칙한 색깔의 고성은 유구한데, 반짝이는 원색의 자동차는 한순간 왔다가 사라져간다. 한순간의 화려함이 좋았다.

 

 

포르쉐 911은 일상적으로 타는 차와 슈퍼카의 경계 선상에 있다. 슈퍼카 부럽지 않은 주행성능을 뽐내지만, 또 일상에서 탈 수 있는 범용성이 매력이다. 그 경계에서 성격을 가르는 것이 컬러이다. 독일차 맛이 뚜렷한 검은색을 고르면 출퇴근길에 무난한 차가 되고, 911에 빨간색을 칠하면 페라리와 겨루는 슈퍼카가 된다.

 

우리의 고정관념에 차마다 고유의 색깔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주로 데뷔할 때 내세우는 색이 머리에 남기도 한다. 최근 랭글러는 연두색 차를 많이 내보였고, 포르쉐 카이엔 쿠페는 주홍색 도는 빨간색을 리딩 컬러로 앞세운다. 미드십 엔진의 쉐보레 콜벳 C8은 빨간색, 쏘나타는 샴페인 골드 등이 그렇다.

 

유럽은 자동차에 나라마다 정해진 색깔이 있어 괜히 그 색깔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 자동차 경주에서 나라마다 색을 달리한 데서 유래한 것인데 예를 들어 영국은 초록색, 이탈리아는 빨간색, 프랑스는 파란색, 독일은 은색 등이다.

 

 

아내의 차는 노란색 지프 랭글러다. 과거 미술 선생이었던 아내는 색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다. 차종을 랭글러로 정하자 색깔은 노란색이어야만 했다. 랭글러는 노란색이 가장 어울린다는 감성적인 판단에서다. 나는 어릴 적 갖고 싶었던 미제 장난감 통카 토이의 지프가 노란색이었던 것을 떠올린다. 노란색은 언제나 튄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든 차가 무채색이다. 흰색, 검은색, 은색 등 사람들은 자동차가 점잖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차를 피한다. 중고차 시장에서 원색의 자동차가 인기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운전의 재미를 찾는 나에게 차를 팔 때 손해 볼 수 있다는 말은 중요치 않다. 좋아하는 차를 고르면서 차 팔 때를 생각할 수는 없다. 거리에서 유난히 튀는 노란색 차는 같은 색의 유치원이나 학원 차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드문 색인 만큼 노란 랭글러는 길거리에서 인기가 좋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하고, 그 부모들이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내 차가 밝은색이라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겸연쩍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곧 사라진다. 노란 차는 복잡한 주차장에서 내차를 찾기도 쉬웠다. 나이가 들수록 주차해놓은 자리가 가물가물한데 유별난 색깔이 도움 된다.

 

눈에 띄는 자동차는 착하다.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할 때는 교통법규 지키는 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끼어들기를 삼가고, 칼치기 운전을 삼가며, 뺑소니 같은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원색의 자동차는 안전에 유리하다. 안개 속에서 노란색은 흰색보다 잘 보인다. 자동차 안전을 얘기할 때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헤드라이트를 켜는 것이다. 원색의 자동차는 나를 상대방에게 내보임으로써 나의 안전을 도모한다.

 

 

잿빛 도시를 배경으로  빨간색, 노란색 차를 타는 것은 내 차가 거리의 풍경을 밝게 하는 데 도움 될 것 같아서다. 다양한 컬러의 택시는 도시를 밝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 포니 택시가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 등 여러 가지로 나온 적이 있었다. 서울 거리가 무척 밝았던 기억이다. 요즘 택시는 주황색 한 가지로 통일해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색깔의 차들이 거리에 많아지기를 꿈꾼다.

 

내게 자동차는 품위를 세우는 도구가 아니다. 내 삶에는 특별히 점잖은 차를 탈 이유가 없었다. 노란색 차를 타고 간혹 장례식장에 가지만, 차는 주차장에 세우지 현관 앞으로 댈 일은 없었다. 내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검찰청에 갈 일도 없을 거다. 내게 자동차는 오로지 재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탄 차 중에 유채색이 적지 않았다. 황동색의 피아트 스트라다, 밝은 달걀색의 포니1, 스포티지 1세대가 초록색이었고, 지금 내가 타는 기아 레이가 하늘색이다. 지금도 새 차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인데 이번에는 빨간색이다. 아내가 주장하는 ‘그 차에 그 색’이 빨강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아내의 결정은 중요했지만 내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이 한 몸 바쳐 서울 거리가 밝아진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글_박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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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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