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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탐험대 by 포드 익스플로러

포드 익스플로러를 끌고 캐나다 로키산맥을 거쳐 북극권 옐로나이프까지 다녀왔다. 극한의 자연을 네 바퀴로 당당히 누비며 신이 빚은 창조물과 마주했다

2020.01.13

 

가을이 숨을 죽이던 어느 날 밤,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작은 술집. 나와 양우람은 포항에서 막 올라온 과메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트북 화면엔 캐나다 북서부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나는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아.” 캐나다 국적의 양우람이 마치 이 지역은 내 구역이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린 밴쿠버에서 시작해 로키산맥에 걸쳐 있는 밴프와 재스퍼를 거쳐 북극권에 있는 옐로나이프까지 차를 타고 여행하는 루트를 짜고 있었다. 편도만 2700km가 넘는 거리로 캐나다 내에서도 보통 비행기로 오가는 지역이다.

 

 

게다가 밴프와 재스퍼까지 로키산맥의 험난한 산길이 기다리고 있고, 북위 62°에 있는 옐로나이프의 기온은 영하 40℃까지 떨어진다.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는 양우람이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루트는 합격이다.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길을 가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까. 루트를 결정한 우리는 단박에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표까지 끊었다. 나는 남은 과메기를 조용히 초장에 찍으며 말했다. “이젠 ‘빼박’이다.”

 

 

탐험에 가장 적합한 차

이 혹독한 탐험에 함께할 차로 우리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선택했다. 이 차는 이름부터 이미 준비를 마쳤다. ‘익스플로러(Explorer)’는 영어로 ‘탐험가’, 프랑스어로도 ‘탐험하다’라는 뜻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에서 탐험심으로 가득한 이 차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고 관심이 많은 준대형 SUV다(북미에선 중형 SUV다).

 

5세대 익스플로러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수입 SUV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최근 6세대 익스플로러가 국내에 출시됐다. 험로 주파도 거뜬한 다양한 주행 모드, 장거리 운행에 편안한 승차감과 주행감 그리고 열흘 동안 두 남자가 생존에 필요한 짐을 마구 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익스플로러는 부족함 없는 파트너다.

 

오지 탐험에 연료는 생명과도 같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연료까지 바닥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우리는 열흘 동안 약 120만원어치의 휘발유를 사용했다.

 

우리는 밴쿠버에 있는 렌터카 업체에 연락해 6세대 익스플로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운 좋게도 렌터카 업체는 우리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고, 우리는 갓 출고된 따끈따끈한 신차와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가 빌린 차의 트림은 XLT로 국내에서 판매하는 리미티드보다 한 단계 아래 트림이지만, 얼핏 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리미티드와 다른 점을 꼽자면 3열 시트를 펴고 접을 수 있는 버튼이 없고, 오디오가 뱅앤올룹슨이 아니며, 2열 센터콘솔에 230V 대신 12V 소켓이 있다는 정도다. 이런 차이는 우리의 탐험에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익스플로러와 함께 밴쿠버에서 설레는 첫날 밤을 맞이했다.

 

 

로키산맥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양우람이 서두르며 말했다. “밴프까지 가려면 지금 나가야 해.” 그렇다. 밴쿠버에서 다음 목적지인 밴프 국립공원까지 거리는 약 830km, 차로 쉬지 않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8~9시간을 가야 한다. 서울-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를 떠나기 위해 우리는 기름통을 가득 채우고 밴쿠버 시내를 벗어나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밴프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난 뒤였다. 캐나다의 태양은 겨울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일한다. 밴프 시내의 상점은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저녁 식사로 엘크 고기를 토핑으로 얹은 피자와 타코를 먹었다. 처음 맛보는 엘크 고기의 육질은 제주도에서 먹었던 말고기와 비슷하다. 특유의 향이 있지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호텔에서 잠시 여독을 풀고 자정이 지난 뒤 우리는 별 구경에 나섰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미네완카 호수로 향했다. 인디언들은 이곳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더욱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컴컴한 나머지 이곳이 호수인지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의 불빛을 모두 끄고 위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우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별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 말로만 듣던 은하수와 북극성, 북두칠성 등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였다. 저 멀리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엘크를 찾아서

아직 꿈속에서 별을 헤고 있는데 어디선가 양우람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서 일어나, 엘크 산책 시간이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엘크를 보기 위해 우린 서둘러 다시 호텔을 빠져나왔다. 해발 1383m에 위치한 밴프는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다. 로키산맥에 걸쳐 있는 밴프 국립공원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침엽수림에서 곰, 사슴, 엘크, 퓨마, 코요테 등의 야생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면 진짜로 엘크의 산책 시간까지 알게 되는 걸까?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한 채 익스플로러를 타고 숲으로 들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엘크를 찾아나섰다. 차를 타고 가다 야생동물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이 날것의 사파리 투어야말로 캐나다 로드 트립의 백미다.

 

 

얼마 안 가 길가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물사슴 한 마리가 눈 사이로 솟아난 풀을 뜯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보이는 고라니와 흡사했다. 물사슴은 가까이 가도 놀라거나 경계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풀을 찾아 뜯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는 야생 엘크 두 마리와 마주했다. 엘크는 북미에서 무스(말코손바닥사슴) 다음으로 덩치가 큰 사슴이다. 특히 수컷은 화려하고 커다란 뿔을 지닌다. 우리가 만난 엘크는 정신없이 아침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발굽으로 눈을 치우며 땅 위의 마른 풀들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었다. 캐나다 정부는 엘크를 만났을 때 항상 3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라고 당부한다. 저 머리 위의 뿔이 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언제 잔인한 흉기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엘크 출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집 밖의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이 엘크의 뿔에 걸려 엉키지 않도록 높이 달아놓는다고 한다. 그렇게 적당한 긴장과 배려 속에서 이들은 공존 중이다.

 

 

소금이 필요해

존스턴 협곡을 거닐고 나니 해가 숙지근하게 기운을 빼기 시작했다. 우리는 밴프에서 약 300km 떨어진 재스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재스퍼로 뻗어 있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1년 내내 얼어 있다. 땅거미 속에서 저 멀리 컬럼비아 대빙원이 푸르스름하게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의 해발고도는 2000m를 넘겼다. 밴프를 나오면서부터 통신이 끊어져 차가 고장이라도 나거나 사고가 나면 영락없는 조난이었다. “GPS가 없던 시절엔 길을 잃어서 헤매다 얼어 죽은 사람도 있었어.” 양우람이 과거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자연 앞에 문명의 도움 없는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런 와중에 양우람은 꽝꽝 얼어 있는 빙판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고 빠르게 내려갔다. “이 차, 생각보다 슬리퍼리 모드가 제대로 작동하는걸?” 익스플로러는 미쉐린 사계절 타이어를 신고도 능숙한 드라이버의 조종과 부지런한 주행모드 덕에 한라산보다 높은 빙판 고갯길을 무사히 내려왔다.

 

 

재스퍼에서도 우리는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나섰다. 피라미드 호수에서 일출을 감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야속하게도 구름이 잔뜩 끼어 기대했던 장관은 드러나지 않았다. 캐나다는 호수 부자다. 전 세계 호수의 약 60%가 캐나다에 몰려 있다. 호수들은 저마다의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그림 같은 청정미를 마음껏 드러낸다. 우리는 길게 뻗은 말린 호수로 가는 길에 꽝꽝 얼어 있는 메디신 호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기온은 영하 10℃ 아래였지만, 고요함이 추위를 삼킨 듯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큰뿔야생양 한 무리를 만났다. 발굽과 언 땅이 부딪히며 내는 “또각또각” 소리가 귓가를 선명하게 때렸다. 뿔의 크기로 보아 암컷과 새끼들이다.

 

 

수컷의 뿔은 굵은 스프링 모양으로 한 바퀴 구부러져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큰뿔야생양은 겨울엔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이동한다. 차가 서자 양들은 일제히 차에 묻은 눈과 흙을 핥아먹었다. 염분 때문이다. 우제류는 염분이 부족하면 발톱과 치아에 이상이 생기는데, 활동량이 많은 산양은 염분에 더욱 목말라 있다. 양들은 차에 묻은 소금기를 실컷 핥아먹고 유유히 제 갈 길을 떠났다.

 

 

빛의 광시곡

우리는 대단원의 마지막만을 남겨놓았다. 바로 오로라 성지로 유명한 옐로나이프다. 이 척박한 땅 밑에는 금과 은, 다이아몬드 등이 풍부하게 묻혀 있다. 개발 초창기 다이너마이트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도화선을 자를 때 안전을 이유로 노란빛의 구리 칼을 사용했다고 해서 옐로나이프라고 한다. 재스퍼에서 옐로나이프까지는 북쪽으로 약 1600km에 이른다. 거리는 둘째치고 길이 꽁꽁 얼어 있고, 북방 오지 중의 오지라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통신은 물론이고 주유소조차 없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이런 루트로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것도 사계절 타이어를 낀 SUV를 타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우리의 탐험 DNA를 자극하며 가슴을 더욱 뛰게 했다.

 

우리는 북쪽으로 하염없이 달렸다. 하이레벨을 지나 어느덧 북위 60° 경계선을 지났다. 이곳부터는 주가 아닌 영토로 분류된다. 위도가 높아질수록 주변 풍경도 툰드라 지형으로 평평하게 변해갔다. 두꺼운 콧김을 내뿜으며 풀을 뜯고 있는 버펄로 무리도 만났다. TV에서 보던 얼어붙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자 설렘은 더해갔다. 옐로나이프까지 도로는 나 있지만,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큰 의미는 없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온도는 1℃씩 계속 내려갔다. 급기야 영하 30℃ 밑으로 떨어질 때 즈음 우리는 옐로나이프에 도착했다. 재스퍼에서 출발한 지 이틀 만이었다.

 

 

도착 첫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로라 예보를 보니 꽝이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어 이틀 동안 운전에 지친 노곤한 몸을 침대에 푹 담갔다. 다음 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져 빌리지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는 개 썰매를 타고 놀며 밤을 기다렸다. 옐로나이프엔 눈이 많이 쌓여 딥 스노 모드로 돌아다녀야 했다. 오로라 빌리지는 시내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더 가야 나온다. 오로라도 별처럼 도시의 빛 공해가 없어야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따라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조용히 달렸다. 오로라 빌리지에 거의 다 왔을 때, 저 멀리서 녹색 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오로라였다.

 

영하 30℃의 추위 속에서 오로라를 보려면 옷을 든든히 입어야 한다. 방한용 부츠와 핫팩, 마스크도 필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신의 영혼’과 마주했다가 동상에 걸릴 수도 있다.

 

빌리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쇼타임이 바로 시작됐다. 까만 하늘에 누가 녹색 케첩을 꾹 짠 듯 진하고 거대한 오로라 빛이 천천히 하늘을 뒤덮었다. 지평선 근처에선 전기에너지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그라졌다. 오로라 파도는 10분 정도 하늘에서 너울거렸다. 모두가 오로라에 영혼을 빼앗긴 채 고개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몇 번이나 환호를 질렀는지 모른다. 어느덧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영하 35℃였다. 준비된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며 방금 본 오로라를 회상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객들은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서로의 언어로 오로라를 실제로 본 후기를 뜨겁게 나누었다.

 

 

우린 차를 끌고 빌리지 근처를 배회했다. 오전 2시를 넘긴 시각이었지만, 오로라의 향연은 계속 이어졌다. 마치 이번 생의 마지막인 듯 밤의 끝을 잡고 오로라를 잡으러 다녔다. 하늘이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글_조두현(프리랜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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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 PHOTO : 조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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