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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의 대탈출!

르노 닛산 미쓰비시 얼라이언스를 이끌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일본 경찰에 구속된 지 1년 하고 40일 만에 일본을 탈출했다. 곤 회장의 시선으로 이번 사건을 정리했다

2020.03.06

 

D-405 (2018년 11월 19일)

언젠가부터 일본으로 가는 길이 좀 개운치 않다. 판매량이든 매출이든 르노의 더블로 가버린 닛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내가 닛산을 르노의 자회사로 만들 거라 생각하는 눈치다. 들어보니 이미 닛산 내부에서는 2019년을 넘기기 전에 닛산이 르노의 자회사로 흡수 합병될 거란 소문이 퍼졌단다. 어쩐지. 날 대하는 게 예전 같지 않더라니. 뭐, 닛산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 있다. 처음엔 서로 15%씩 지분을 나누고 맺은 얼라이언스 관계였는데, 이제 규모는 닛산이 커지고 영향력은 르노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으니. 이해관계도 서로 너무 달라졌지. 닛산 입장에서는 르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게 한 프랑스 국내법이 야속할 거고, 그 법안 제정에 깊이 연루된 마크롱 당시 경제장관이 현재 대통령에 있으니 르노에 대해 의심스러운 게 많긴 할 거다. 생각해보니 일본에 가는 게 반가울 수가 없네. 이번에도 주일 프랑스 상공회의소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라니까 왔지, 닛산에 갈 계획은 없어. 벌써 하네다 공항이군. 어? 이 사람들 뭐지? 왜 난데없이 비행기에 들어온 거야? “당신들 누구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전 사장

 

D-394 (2018년 11월 30일)

전격적인 작전? 날 잡으려고?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이 내가 탄 닛산 전용기가 하네다 공항에 내리기 몇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착륙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체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다. 내가 일본에 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아도 정확히 그 시간에 전용기로 온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으니까. 심지어 날짜까지 맞춰 도쿄에 있는 내 집과 요코하마의 닛산 본사까지 압수수색을 한 걸 보면 그림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렸던 게 뻔하지. 하긴. 닛산에서는 나도 모르게 몇 달 전부터 켈리 대표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했다며? 그럼 좀 뻔하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이 깊이 관련됐을 거야. 르노가 닛산에 대한 의결권을 확대했을 때 제일 크게 반발하던 사람 중 하나였잖아. 내가 발탁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심지어 내가 체포되고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그 밤에 굳이 기자회견을 열어 날 비난해? 그리고 체포 3일 만에 이사회를 열고 날 해임해? 프랑스에서는 재무장관이 나서서 내 탈세 정황이 없다고 말하고 있고, 내 의혹에 대한 증거도 없어서 공식적인 해임안을 제출하지 않겠다는데 말야. 그리고 뭐? 내가 8년 동안 연봉을 80억 엔(약 861억원)이나 축소해 신고했다고? 오늘 구금 기한을 12월 10일까지 연장 신청했다는데 이건 날 풀어줄 생각이 없단 거잖아. 그럼 12월 10일에 기소해서 다시 체포하겠네. 하아….

 

D-298 (2019년 3월 6일)

결국 어제 보석이 결정됐다. 두 번이나 거절하더니. 이번에도 검찰들이 준항고했지만 결국 법원은 관계자와 말 맞추기 같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적다고 보석을 허락했다. 그런데 주거에 제한을 걸고, 집 출입구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해외 방문을 금지하고, 인터넷 사용도 제한하고, 사건 관계자 접촉도 금지시켰어. 아니,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서 뭐 이렇게 까다롭게 조건을 붙여. 보석금도 10억 엔(약 107억원)이나 내게 하고. 그런데 지금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나가는 게 중요하지. 벌써 오늘로 구속 108일째인데. 아마 내가 나가면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겠지. 솔직히 그건 피하고 싶어. 포토라인에 세워두고 엄청나게 사진을 찍을 텐데. 망신스럽게 기사 낼 거 아냐. 그런데 변호인들이 먼저 재치 있는 제안을 줬지. 바로 변장! 우리 변호인들 위트 있어. 사이타마에 있는 건축 도장회사에서 실제 사용 중인 경승합차를 빌려왔지 뭐야. 그리고 같은 지역에 있는 열차 설계업체에서 모자랑 작업복을 가져왔어. 안경에 마스크까지 쓰니 진짜 내가 봐도 알아채기 쉽지 않겠던걸? 어라? 약간 슈퍼마리오 비슷한가? 어쨌든 취재진의 눈을 피하기 위해 펼친 변장 퍼포먼스는 대성공이었어. 짜릿했지. 아무도 모르던걸? 어쨌든 싸움도 2막으로 접어들겠군.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어. 일본 정부가 날 붙잡고 르노의 닛산 합병을 막아보려는 게 뻔하거든. 느낌이 싸해.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전 회장

 

D-111 (2019년 9월 9일)

내 그럴 줄 알았지.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천하가 오래갈 리가 없지. 결국 사퇴 발표 했구먼. 뭐? 부당하게 추가 보수를 챙겨? 완전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거였잖아. 사이카와 사장은 닛산에 대한 르노의 의결권 확대를 논하던 이사회에 닛산 대표로 참석했을 때부터 쿠데타를 준비했을지 몰라. 닛산 내부에서 일본인들을 모아 비밀 팀을 꾸려 내 비위를 조사하도록 시킨 게 사이카와일 거야. 닛산 내부에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에 협력하는 대가로 형사처분을 감면받는 사법 거래에 합의한 사람이 몇 있다던데 그중 하나도 사이카와 사장 같고. 이번에 걸린 게 2013년에 성과보수 권리행사일을 조정해서 4억7000만 엔(약 5억원)의 주가 연동 인센티브를 더 받고도 신고를 안 했다는 거잖아. 내가 받는 혐의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도쿄지검은 사이카와를 구속하지 않을까? 변명도 좀 그래. 검찰 간부가 나서서 “부하가 눈치껏 비위 행위를 한 측면이 있어서 형사사건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변호해주는 게 말이 돼? 형평성이 있기는 한 거야? 그러면서 나는 4월 4일에 재구속하고 같은 달 25일에 다시 보석으로 풀어주면서 보석금을 5억 엔(약 51억원)이나 또 내라 했지? 그리고 내겐 주거 제한에 출국금지, 감시카메라 설치, 인터넷 접속 금지에 통화 내역도 법원에 제출하라고 명령했잖아. 그것도 부족한지 도와주려 굳이 일본으로 온 아내와 접촉금지 명령까지 내렸고.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뭔가 뾰족한 방법을 찾지 않으면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겠어….

 

악기 상자

 

D-Day (2019년 12월 29일)

아마 짐작조차 못했을 거야. 내가 탈출을 감행할 거라고는. 난 이미 잘 짜인 판에 끌려들어간 느낌이었어. 심지어 하루에 8시간이나 조사를 받는데 변호사조차 동석할 수 없고, 아내와의 연락도 금지한다면 너무 잔인한 거 아냐? 난 이따 담담하게 집을 나설 거야. 그러곤 다시 이리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미 작전은 다 세웠지. 집 근처 호텔에서 일단 조력자 둘을 만날 거야. 자연스럽게 시나가와 역으로 가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로 향할 예정이지. 내가 변신할 곳은 간사이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이야. 거기 커다란 악기 상자가 마련돼 있는데 잠깐 악기 행세 좀 하려고. 그 상자에 들어가서 이 땅을 벗어날 수 있다면 잠깐의 짐짝 취급이야 뭐 어때. 비행기에 실리고 간사이 공항을 이륙하면 일본과는 영영 안녕이니까. 목적지는 레바논. 어차피 난 레바논 출신이나 마찬가지야. 레바논은 일본과 범죄인 인도 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으니 내 신병이 일본으로 넘겨지는 일도 없겠지. 내가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서는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서 생각해주면 좋겠어. 재판이 벌어진다면 어찌 진행될진 모르지만,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잖아. 난 변호권이 확실히 보장된 국가의 법원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나갈 준비가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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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고정식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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