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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강타한 비누상자 경주가 한국에 온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자동차 경주가 온다. 진지해서 더 귀여운 건 우리 몫이다

2020.03.12

 

1933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데이턴 데일리 뉴스의 사진기자 마이언 스콧은 출근 중 재미있는 광경을 봤다. 세 명의 소년이 나무 박스로 대충 만든 자동차를 타고 동네 언덕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화들짝 놀란 스콧은 그 자리에서 소년들을 불러 그들이 만든 자동차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로 돌아온 스콧은 곧바로 편집장에게 달려가 그가 출근 중 본 무동력 경주차에 대해 말했다. “편집장님, 이걸 공식적으로 해보는 건 어때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할 겁니다.” 편집장은 마뜩잖았지만, 스콧은 완고했다. 하는 수 없이 신문 한쪽에 작은 광고를 싣게 하고 200달러를 주며 경주를 개최해보라고 했다.

 

1933년 8월 19일, 작은 마을 데이턴에서 경주가 펼쳐졌다. 총 362명의 아이가 모였다. 스케이트보드에서 훔친 바퀴를 비누 박스에 단 경주차도 있었고 과일 상자에 롤러스케이트 바퀴를 끼운 차도 있었다. 운전대도, 제동장치도 없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형태의 자동차들이었다. 하지만 소년들이 만든 경주차엔 꿈이 담겨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려 넣은 차도 있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을 그린 차도 있었다. 생김새가 전혀 다른 수백 대의 경주차가 동네 언덕 어귀에 모여든 것이다.

 

 

일찍이 지구에 없던 생경한 경주를 보기 위해 많은 이가 모여들었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4만 명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모였다고 한다. 각종 신문과 월간지가 이 내용을 싣기 시작했고 이 뉴스는 오하이오를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여러 기업들이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여러 학교에선 자동차 공작을 위한 교육과정 프로그램을 주문하기도 했다.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신문사 데이턴 데일리 뉴스는 소년들의 자동차 경주로 미국 전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경주를 기획한 사진기자 마이언 스콧은 더는 사진을 찍지 않고 비누상자 경주(Soap Box Derby)를 조직해 공식적으로 경주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애크런(Akron)에 3개 레인을 갖춘 350m 길이의 소프 박스 더비 경주장이 만들어졌다. 이 경주장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뉴딜 정책의 일환 중 하나였다. 즉, 작은 소년들의 볼품없던 자동차 경주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부흥 정책이 된 것이다.

 

성인이 타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후 소프 박스 더비는 급성장한다. 그 성장의 배경엔 정부 지원과 여러 기업의 후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소프 박스 더비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아이와 함께 뒷마당에서 나무를 깎아 몸체를 만들고 자전거 바퀴 등을 개조해 바퀴를 끼웠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무게를 가볍게 하거나 저항을 줄이려는 방법도 연구했다. 그러면서 부자간의 유대가 돈독해졌고, 아이는 자기가 직접 만든 경주차를 타고 경주에 나섰다.

 

현재 소프 박스 더비는 더욱 조직화했다. 경주차를 세 가지로(스톡카, 슈퍼 스톡카, 마스터) 규격화해서 나이별로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마스터 클래스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출전할 수 있는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차체를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섬유로 만들고 공력성능을 위해 차체도 더 가늘고 길다.

 

이전에 없던 운전대도 생겼고 제동장치도 있다. 그렇다고 코너가 있는 경주장을 달리는 건 아니다. 직선주로를 무동력으로 달리는 건 1933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코너가 없는 것은 안전이 가장 큰 이유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에 코너도 없고 경사가 완만한 곳을 달린다. 경주차도 안전을 위해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 몸체를 사용하고 바닥도 철제가 아닌 나무판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어

현재 소프 박스 더비가 미국 전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교육적인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자동차 경주는 위험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존재해 어린이 교육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프 박스는 스스로 학습하고 공작하면서 무한한 창의력이 발휘되고, 그 과정에서 협동심을 배우고 완성하면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경주에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경주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심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여러 초등학교는 소프 박스 더비 공작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학교 이름으로 지역 경주에 출전하기도 한다.

 

경주가 열리는 날이면 온 동네가 축제가 된다. 야트막한 언덕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지만 그 어떤 자동차 경주보다 뜨겁고 치열한 레이스가 펼쳐진다. 우승자에게는 여러 기업이 후원한 상금이 수여되고, 그 지역의 디펜딩 챔피언이 된다. 더불어 지역 우승자들은 애크런에서 펼쳐지는 월드 챔피언십에 초대된다.

 

 

비영리단체가 주최하는 경주도 있다. 어린이들이 한곳에 모여 경주차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경주차로 직접 경주에 출전한다. 기업들이 이 경주에 후원하고 그 후원금과 출전비는 소아암재단 등 사회단체에 기부된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쉐보레는 오래전부터 소프 박스 더비 후원사다. 여러 지역 경주에 후원해 경주차에 로고를 붙이고,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해 미래의 소비자인 어린이들이 자동차에 더 많은 흥미를 갖게 하고 쉐보레 브랜드에 더 친숙해지도록 한다.

 

자동차 경주장에서도 종종 소프 박스 더비를 만날 수 있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직선주로에서 오프닝 세리머니로 아이들의 진지한 경주가 펼쳐진다. 경주가 단 30초 만에 끝나기 때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30초 만에 환호와 실망,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광경이 연출된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소프 박스 더비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야미디어가 소프 박스 더비 국내 론칭을 준비 중이다. 경주차 판매 및 렌털을 비롯해 경주 유치와 관련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미 여러 대의 경주차가 국내에 들어온 상태로 국내 환경에 맞는 점검을 받고 있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챔피언이 미국 애크런에서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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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PHOTO :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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