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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범죄 영화와 자동차들

경제 성장과 불황이 반복된 20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인기 있던 범죄 영화는 시대를 비췄고, 영화 속 자동차는 주인공의 처절한 욕망과 자본주의의 낭만을 담았다. 한 번만 보기엔 아쉬운 20세기 범죄 영화와 자동차들

2020.03.23

이탈리안 잡  ⓒ1969 by Paramount Pictures UK

 

이탈리안 잡, 1969

범죄 영화와 자동차 하면 으레 그려지는 모습이 있다. 그런데 <이탈리안 잡>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냉엄한 암흑세계를 상징하는 검은색 차도, SWAT 기동대나 청소 대행업체로 위장한 방탄차도 아니다. 바로 앙증맞은 미니 쿠퍼다. 400만 달러의 금괴를 탈취하는데 미니가 웬 말이냐고? 이탈리아 토리노의 좁디좁은 골목 사이로 도주하기 위해서다. (공범들은 일부러 교통 체증도 유발했다.) 영화가 당대 상징적인 모델이었던 미니를 내세운 데에는 지능적이고 과시적인, 보다 입체적인 범행을 완성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영화는 백화점 내부, 지하철 계단 등 당시로서 파격적인 배경의 자동차 추격신으로 훗날 하이스트 영화와 카체이싱 영화의 바이블로 여겨진다. 2003년 작품에는 우리가 아는 BMW의 미니 쿠퍼 S 1세대 모델이 등장하지만 1969년 개봉된 <이탈리안 잡>에는 영국 BMC사에서 생산하던 ‘1967 오스틴 미니 쿠퍼 S’가 등장한다.

 

 

미니 쿠퍼의 전신인 오스틴 7은 1950년대 말 유럽 내 석유 수입의 제한으로, 영국 자동차 회사들이 소형차 개발에 착수하며 탄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니는 그저 작고 실용적인 차에 불과했지만 몬테 카를로 랠리(1965)에서 1964년형 미니 쿠퍼 S가 우승을 차지하는 역대급 사건이 일어나고는 사정이 달라졌다.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클래식 미니가 등장하는 1969년 작품을 보길 바란다. 젊은 날의 마이클 케인과 미니의 매력에 속절없이 빠질 것이다.

 

펄프 픽션 ⓒMIRAMAX

 

펄프 픽션, 1994

<펄프 픽션>은 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이 매우 감각적인 영화다. 연출을 맡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트렁크에서 밖을 올려다보는 ‘트렁크 신 페티시’로도 유명하다. 영화에는 주인공들이 즐기는 술과 마약, 총만큼이나 많은 자동차 신이 등장한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한 빈센트와 새뮤얼 L. 잭슨이 연기한 줄스가 자동차에서 대화하는 신이 특히 많다. 그들의 차는 각각 ‘1965 쉐보레 말리부’와 ‘1974 쉐보레 노바’다. 빈센트와 보스의 아내인 미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동차와 트위스트 음악이 있는 테마 레스토랑을 찾는데, 그곳에서 그들이 앉은 좌석이 크라이슬러이기도 하다.

 

 

식사를 마친 뒤, 빈센트가 빨간색 말리부를 타고 미아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신은 끌림과 금기 사이를 줄타기하는 매혹적인 남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게 생긴 미아를 차에 태우고 내달리는 긴급한 상황, 응급 조치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미아를 집으로 다시 데려가는 장면에서 비슷한 자동차 신이 짓궂게도 반복된다. 불장난을 즐기다 지옥 문턱에 다녀온 인물들의 표정이 핏기 없이 싸늘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머슬카들은 대량생산으로 인해 넘쳐나는 자원 속 공허함(또는 욕구불만)을 향락적인 소비로 해결하려는, 무기력한 삶의 전형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영화적 시선은 시간 때우기용 싸구려 소설을 의미하는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란 제목에도 나타난다.

 

스카페이스 ⓒ1983 Univesal Pictures

 

스카페이스, 1983

1932년 개봉한 <스카페이스>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의해 1983년 한 차례 더 리메이크됐다. 우리에겐 1983년 작품 속 알 파치노가 연기한 토니 몬태나가 더 익숙하다. 미국 금주법 시대의 실제 인물 알 카포네를 모태로 한 토니 몬태나는 미국 갱스터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일개 심부름꾼에서 배짱 하나로 거물이 된 이민자 갱스터의 전기를 그렸다. 영화 초반, 보스에게 큰 이윤을 남겨준 토니는 보스의 집에 초대받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을 하찮게 대하는 보스의 연인 엘비라(미셸 파이퍼 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출세를 바랐던 토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토니가 금발의 엘비라와 노란색 ‘캐딜락 시리즈 62 컨버터블’을 소유하려는 것은 이 시기다. (노란색은 황금의 색깔이기도 하다.) 성공한 미국인의 전유물인 캐딜락은 이민자로서 소외와 결핍이 극에 달한 토니에게, 말하자면 자신을 무시하는 사회의 원 안에 들기 위해 필요한 배지나 다름없었다. 늘씬한 백인인 엘비라를 애인으로 두는 것도 마찬가지. 호피 무늬 시트를 두른 노란색 캐딜락은 토니의 처절한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토니는 돈으로 엘비라와 캐딜락을 얻고,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78 David Sutton / Courtesy of mptvimages.com / 2020 Warner Bros.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

원제 ‘보니 앤 클라이드’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30년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대에 강도와 살인을 일삼던 듀오 갱 클라이드 배로와 보니 파커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1930년대가 배경이긴 하지만 영화가 상영된 196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 반대운동, 동성애 해방운동 등 다양한 인권운동과 반체제적 풍조가 만연한 사회였다.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행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윤리가 결여된 범죄지만, 영화 속에서는 장기적인 경제 불안 속 방황하는 젊은이로 미화됐다. 일견 자유를 호소하는 낭만적인 청춘으로 범죄자를 대상화하게 된 것에는 ‘1934 포드 V8 포더 딜럭스’가 상당 부분 일조했다 봐도 좋을 것이다. V8은 이름과 동일하게 8기통 엔진을 장착한 85마력의 저비용 고성능 모델이다. 좁은 방패 모양의 그릴과 동그란 헤드라이트, 풍만한 오버 펜더를 장착한 이 모델은 클래식카의 정수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V8은 주인공들을 현실에서 도피시켜주는 도구인 동시에 유일한 안식처다.

 

 

영화와 실제 사건 모두 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텍사스 레인저(텍사스 공안국에 속한 법 집행관)에게 쫓긴 끝에 발각된다. 130발 이상의 총알 세례를 받은 최후의 순간에도 그들은 크림색 V8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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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IM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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