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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보한 PHEV, 볼보 XC90 T8

XC90 T8은 볼보에게는 물론 전동화 시대를 맞이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선택의 방향을 알려주고 마음의 평안을 더하는 등대 역할을 하는 모델이다

2020.04.10

XC90 T8은 최상위 모델로가장 높은 출력을 내면서효율성도 가장 좋다.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뱃사람들에게 등대만큼 반가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항구에 닿는 그 순간까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뱃길을 안내하고, 거친 바람과 파도에 출렁이는 배를 떠나 든든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등대는 뱃길을 안내하는 근본적 기능보다는 뱃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심리적 역할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볼보의 이미지는 늘 등대와 비슷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볼보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늘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차를 만들어왔다. 그런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은근하고 꾸준히 달라지고 발전해왔다는 사실이 종종 잊히기도 했지만, 이전까지 쌓아온 기본기와 이미지는 21세기 들어 볼보가 혁신적으로 변신에 성공하는 데 든든한 밑바탕이 됐다.

 

 

물론 볼보의 변화도 단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 2016년 3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신형 XC90이 변화의 시작을 단호하게 알린 차라는 점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드라이브-이(Drive-E) 파워트레인,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플랫폼, 인텔리세이프(IntelliSafe)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신세대 볼보의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XC90이 볼보 역사에 세운 또 하나의 이정표는 트윈엔진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트윈엔진은 일반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활용하는 볼보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기술을 말한다. 이전까지 볼보는 이 기술을 제한적으로 적용했지만, 2세대 XC90을 시작으로 모든 라인업에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이는 2025년까지 매년 순수 전기차를 선보이고, 글로벌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실천하는 첫 단계였다.

 

직렬 4기통 2.0ℓ 엔진에 전기모터가 더해진 트윈엔진은 최고출력(합산) 405마력을 낸다.

 

지난해 말 국내 판매를 시작한 XC90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트윈엔진 기술이 쓰인 T8 트림을 선택할 수 있다. T8 트림은 이미 2016년 3월에 2세대 XC90이 우리 땅을 밟았을 때부터 고를 수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 관점에서는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국내에서 소비자가 경험할 수 있는 볼보 PHEV가 XC90 T8뿐이라는 사실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XC90 T8이 갖는 의미는 크다. 앞으로 나올 전동화된 볼보 차들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XC90은 페이스리프트라고 하기엔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 밖에서 보면 입체적으로 바뀐 그릴 내부와 앞 범퍼 아랫부분 장식, 휠 디자인처럼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전부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는 볼보의 전통이기도 하고, 지난번 세대교체 때 이루어진 변화가 워낙 컸던 영향이기도 하다. 지금 보아도 세월의 흔적을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다. 여전히 안팎으로 디자인은 현대적이고 개성은 뚜렷하다. 특히 일상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서 XC90의 실내는 아주 훌륭하다. 간결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실내 구성요소들은 신선함을 잃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훌륭한 내장재 가운데에서도 시트와 도어트림에 쓰인 가죽은 특히 돋보인다. 촉감 좋고 부드러운 나파 가죽은 세련된 원목 장식과 함께 실내 분위기의 격을 높인다.

 

 

쿠션을 세심하게 구분해 배치한 시트는 다양한 체형에 알맞게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몸이 닿는 부분이 정말 편안하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주변에 있는 대형 LCD 계기반과 세로형 센서스 커넥트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간결한 조절장치가 자아내는 분위기도 볼보 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분을 더한다. 최상위 트림에 해당하는 인스크립션과 엑설런스에만 쓰이는 오레포스 크리스털 기어노브는 차분한 실내에서 화룡점정이라 할 만큼 멋지고 손에 쥐기에도 좋다.

 

2세대 XC90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 3열 구성에 7명이 탈 수 있는 대형 SUV의 경쟁이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대거 경쟁에 뛰어들면서 XC90의 입지를 위협하기 시작했지만, 7인승 XC90은 여전히 나름의 가치가 있다. 전반적으로 약간 높은 좌석 덕분에 모든 좌석에 앉은 사람이 발 놓을 공간은 물론 머리 공간도 충분하다. 3분할 2열 시트는 어른 세 명이 나란히 앉기에는 조금 답답하겠지만, 가운데 자리에 마련된 일체형 어린이 보호 쿠션은 무척 편리하고 유용하다.

 

볼보 XC90 T8을 제외하면 7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PHEV 대형 SUV는 거의 없다.

 

3열도 크기와 형태만큼은 간이 좌석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안전벨트도 제대로 된 3점식이고, 전용 컵홀더와 수납공간도 있다. 수동식이기는 하지만 2열 시트는 레버 조작 한 번으로 밀 수 있어, 3열에 오르내릴 공간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식 풀 사이즈 SUV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실내에 7명이 다 탄 상태에서도 대형 여행용 캐리어 두 개 정도는 충분히 실을 수 있다.

 

실내는 아주 조용해서, 상위 트림인 인스크립션과 엑설런스에 설치된 바워스 & 윌킨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으로 음악을 듣기에 좋은 환경을 만든다. 사실 운전석 주변에 물리 버튼이 많지 않은데,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아래에 있는 다이얼과 버튼의 주 기능이 오디오 조절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승하면서 오디오를 예테보리 콘서트홀을 재현한 음장 모드로 설정해 놓으니 좀처럼 음악을 끄고 싶지 않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생생한 음악 소리에 흠뻑 빠진 이유는 뛰어난 방음 덕분이기도 하지만, 도심 도로 위에서는 자주 작동하지 않는 엔진 덕분이기도 하다. XC90 T8의 보닛 아래에 들어 있는 2.0ℓ 가솔린 엔진은 볼보 모든 라인업에 들어가고, 각기 다른 설정으로 출력을 조절해 효율 또는 성능의 균형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XC90 T8에 올라간 것은 같은 드라이브-E 계열 엔진 가운데서도 강력한 쪽에 속하는 318마력(합산 출력 405마력)의 최고출력과 40.8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엔진 성능을 높이기 위해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모두 써서, 폭넓은 회전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내도록 조율한 것이다. 2.4톤에 가까운 XC90 T8의 공차중량을 고려하면 대단한 수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엔진이 자주 작동하지 않는다고?

 

사실 엔진이 쉬는데도 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XC90 T8과 같은 PHEV뿐 아니라 전기차(EV) 모드가 있는 모든 하이브리드 차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유난히 실내가 조용한 것은 전기모터가 뒤 차축에 있어 뒷바퀴만 굴리기 때문이다. 운전석과 전기모터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하이브리드 차가 EV 모드로 달릴 때 흔히 느낄 수 있는 묘한 전기적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XC90 T8에 쓰인 전기모터의 최고출력은 87마력(67kw)으로, 역시 숫자만으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대토크는 24.5kg·m로, 요즘 인기 있는 콤팩트 SU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운사이징 가솔린 터보 엔진들에 육박한다. 그리고 실제로 몰아보면, 차는 회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모터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며 예상과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다른 하이브리드 차를 몰아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엔진과 전기모터 이야기를 따로 한 것은 두 동력계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엔진이 앞바퀴를, 전기모터가 뒷바퀴를 담당하는 구성의 독특한 네바퀴굴림 방식은 볼보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영리하면서도 상당히 효율적인 구성임은 틀림없다. 기계적인 네바퀴굴림은 센터터널 아래로 엔진이 만든 구동력을 뒷바퀴로 보내는 프로펠러 샤프트가 지나가겠지만, XC90 T8은 프로펠러 샤프트가 없는 대신 그 자리에 구동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었다. 실내 공간을 희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차의 핸들링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다. 아울러 물리적 동력전달 구조 때문에 생기는 동력 손실이나 지연 같은 것도 거의 없다.

 

어느 한쪽만 작동한다면 효율 때문에 조금 아쉬울 수 있는 성능은 엔진과 모터가 함께 움직이면 금세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높아진다. 복잡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엔진과 모터의 것을 합친 것보다 낮은 출력을 내는 일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달리, XC90 T8은 트윈엔진이라는 이름처럼 두 개의 동력원에서 나오는 힘을 고스란히 차의 성능으로 바꿔 놓는다.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XC90 T8의 배터리 용량은 10.4kWh에서 11.6kWh로 커졌고, 국내 공인 1회 충전주행거리도 24km에서 30km로 길어졌다. 그 덕분에 전비는 2.7km/kWh에서 2.8kWh로, 연비(표시연비 기준)는 13.3km/ℓ에서 14.0km/ℓ로 개선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59g/km로 9g/km 줄어들었다.

 

운전자의 취향이나 주행 조건에 알맞게 선택할 수 있는 주행 모드는 다섯 가지로, 기본 모드는 퓨어, 하이브리드, 파워다. 퓨어는 전기모터, 파워는 엔진을 주로 활용하고 하이브리드는 모터와 엔진 사용을 지능적으로 제어한다. 여기에 엔진과 전기모터가 항상 함께 작동하는 상시 AWD와 저속에서만 쓸 수 있는 오프로드 모드가 추가된다. 섀시와 동력계뿐 아니라, PHEV 특성에 맞춰 트윈엔진 시스템의 작동 상태를 지능적으로 조절하는 기능도 각 모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전에 잠시 몰아본 XC90 T8은 승차감과 제동 특성이 조금 아쉬웠는데,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개선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보다 차체 움직임이 진득해졌고 충격에 따라 거칠게 느껴지던 부분이 너그러워졌다. 최저지상고를 살짝 낮추는 등 서스펜션을 조율한 덕분이다. 제동 에너지 회생기능 때문에 이질적이던 브레이크 페달 반응도 자연스러워졌다. 높은 차체 때문에 커브에서 차체가 어느 정도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속하며 커브를 빠져나갈 때는 액셀러레이터 조작에 따라 뒷바퀴 구동력이 빠르게 변화하며 안정성을 높여준다.

 

 

통합 안전 시스템인 인텔리세이프는 그동안 여러 업체가 발 빠르게 ADAS 기술 수준을 높여왔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함께 파일럿 어시스트를 작동시키면 시속 130km까지 별다른 조작 없이 차로 중앙을 유지하며 전방 상황에 맞춰 속도가 자동 조절되고, 자동 제동 및 충돌 방지 기능이 포함된 시티 세이프티는 전방 자동차나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는 물론 동물도 감지해 사고 위험을 줄인다. 2020년까지 볼보에 탄 사람이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볼보의 공언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많은 자동차 업체가 EV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 EV가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는데, 과연 XC90 T8 같은 PHEV가 의미가 있을까? 답은 ‘예스’다. 주행거리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PHEV는 아직 불완전한 전기차의 충전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덩치 큰 3열 좌석 SUV로는 아직 PHEV가 시장에 많지 않을뿐더러 그런 종류의 EV가 나오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XC90 T8은 앞으로 펼쳐질 전기차 시대를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차이기도 하다. PHEV의 장점은 집이나 사무실처럼 오랜 시간 차를 세워두는 곳에 가정용 충전기나 월박스가 있어야 더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데, 그런 장비들은 나중에 전기차로 바꾸더라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XC90 T8은 볼보에게는 물론 전동화 시대를 맞이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선택의 방향을 알려주고 마음의 평안을 더하는 등대 역할을 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볼보는 지난해 첫 순수 전기차인 XC40 리차지를 공개한 데 이어, 차츰 EV를 전체 라인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XC90 T8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볼보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편안함과 든든함은 앞으로 펼쳐질 전동화 과정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글_류청희(자동차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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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PHOTO : 민성필(팀로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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