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낯선 곳에서 남자의 향기가 느껴진다

봄의 향기 저리 가라 할, 남자의 체취 가득한 공간들

2020.06.01

 

 

명성관

한 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영웅본색>은 남자들의 영화로 회자된다. ‘당년정’의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와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윤발, 이제는 클리셰가 돼버린 장면들로 넘쳐나는 영화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여전히 욱신거리게 만든다. 몇몇의 홍콩 누아르 덕에 홍콩은 남자들의 동물적 본능을 자극하는 공간이 되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공감이 어렵다면 <영웅본색>까지 거슬러갈 것도 없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하정우가 탕수육을 먹은 뒤 고량주로 입을 가글하는 중국집이라든가, <범죄도시> 속 흉악한 빌런으로 분한 윤계상이 비닐장갑 낀 손으로 마라룽샤를 먹는 장면만 봐도 된다. 야살스러운 조명이 새어나오는 중국집은 누아르 영화에서 언제나 먹히는 장치. 게다가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에서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장면은 매번 왜 그리 식욕을 자극하는지.

 

 

상수동 작은 골목에 위치한 명성관은 홍콩 영화에 나올 법한 중국식 선술집이다. ‘명성이발관’이란 옛 간판과 이발소 표시등을 단 이곳은 금방이라도 하정우가 이를 쑤시며 나올 것 같은 외관. 문을 열자마자 나른한 재즈와 매캐한 산초 향이 흐르는 내부에는 작은 바와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차이니스 바’인 만큼 음식과 술 모두에 무게를 뒀다. 블랙빈 소스를 베이스로 베트남 고추 향을 입힌 ‘바지락볶음과 버미첼리’가 요즘 잘나가는 메뉴. 마찬가지로 인기 있는 마라샹궈는 입 안에 매섭게 채찍질을 하고, 시뻘건 마파두부에서 건져 올린 야들야들한 순두부는 속죄의 맛인 듯 정결하다. 이곳에선 연태고량주나 양하대곡 같은 중국 전통주와 중국 술을 이용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고릿한 향이 있는 소홍주를 위스키 하이볼에 접목한 ‘차이니스 하이볼’, 연태고량주에 리치를 으깨 넣은 뒤 스프라이트로 채운 ‘화이트 피즈’가 그것. 꽃의 잔향이 있는 바이주(백주) 칵테일은 음식을 먹은 뒤 입을 개운하게 정리해주고 매콤함과 감칠맛이 풍부한 음식은 향긋한 술을 끊임없이 당기게 한다. 공간이 좁아 그동안 웨이팅은 필수였지만, 곧 맞은편 세탁소로 가게를 확장한다니 도전해볼 만해졌다.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길 32
문의 02-337-7456

 


 

 

레드스트라이프 바버숍

‘진정한 남자라면 바버숍에서 머리를 깎아야 한다’ 식의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건 몇 년 전 평양냉면을 놓고 대규모로 벌어진 ‘면스플레인’의 무지와 피로함을 반복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남자라면 누구나 바버숍에 대한 로망이 있다.

 

 

바버숍과 남녀노소 이용하는 일반 미용실은 머리를 자르는 목적부터 조금 다르다. 일반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구(球)로 봤을 때 면과 양감 중심으로 스타일링을 하는 반면, 바버숍에서는 선을 살리는 위주로 머리를 자른다. 말하자면 실용적으로 머리를 다듬는 ‘이발, 이용’이다. 과거엔 이발소가 아저씨들만의 공간이었지만, ‘바버숍’이란 이름을 붙인 오늘날의 이발소들은 클래식한 슈트를 차려입은 ‘젊은 신사’들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격상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고 친목한다. 자칫 차려입은 남자만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탓에 종종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레드스트라이프는 클래식함을 줄기차게 과시하는 여느 바버숍과 달리, 빈티지 원목과 갈색 가죽으로 휘감은 가구들이 없다.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기 좋은 타일 바닥을 비롯해 모든 가구와 기물은 실용적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특별함과 힙함은 있다.

 

 

이곳은 자메이카 맥주인 레드스트라이프 바 내에 있는 ‘숍인숍’ 이발소. 바를 운영하는 저녁 시간대에는 바와 바버숍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낮에 이발소만 이용하더라도 웰컴 드링크로 레드스트라이프 맥주 1병이 제공된다. 이렇듯 흥미로운 공간이 탄생한 배경에는 박병호 원장이 있다. 레드스트라이프 맥주를 국내에 들여오며 바 오픈을 기획하던 수입사의 대표가 박 원장의 단골손님이었다. 평소 머리를 맡기며 신뢰를 쌓은 박 원장에게 동업을 제안한 것. 레드스트라이프에서는 두상에 맞는 스타일링은 물론 섬세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발소란 본분에 충실하게 앞으로 머리를 감기는 ‘앞 샴푸’를 지원하고 원하는 손님에겐 귀 청소도 해준다.

 

 

헤어컷은 3만5000원, 펌은 3만원으로 가격도 합리적. 바버숍은 예약제지만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워킹 손님도 받는다. 바버숍 경험이 없다면 먼저 바를 이용하며 분위기를 살펴봐도 좋겠다.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7가길 15
문의 010-9982-0921

 


 

 

비전스트롤

프랑스 영화 <디어스킨>은 자신의 전 재산을 탕진해 꿈에 그리던 순도 100% 사슴가죽 재킷을 갖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재킷을 입은 스스로에게 도취된 나머지 비슷한 재킷을 입은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사슴가죽 재킷을 입은 유일무이한 인간이 되려 한다. 남자의 동기는 비웃음을 사기 충분하지만, 사슴가죽 재킷을 향한 광기만은 순진무구해서 더욱 서늘하다.

 

 

카페 비전스트롤은 영화 <디어스킨>을 떠올린다. 카우보이의 고향인 미국 서부와 편안하고 실용적인 북유럽 감성을 절묘하게 섞은 이곳에 들어서면 바리스타 부부가 직접 제작한 고딕 스타일의 거실장과 헌팅 트로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기다 대책 없이 귀여운 말 그림이 군데군데를 장식하고 스피커로는 낙천적인 로큰롤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악의 무리가 들이닥치기 직전 주인공이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 같은, 폭풍 전야의 평화로움이 이곳에 있달까.

 

 

처음부터 미국 서부 콘셉트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부부는 예술가가 많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풍경이 흔한 망원동의 ‘바이브’가 좋아 이곳에 카페를 열었고 집에 있는 소품을 가져와 채웠다.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동네 주민과 SNS 피드에서 반길 만한 공간이 된 것은 분명하다.

 

 

10여 년간 바리스타로 일한 부부의 노하우로 내린 커피 맛도 좋다. 비전스트롤에서는 때마다 직접 원두를 고르고 단일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시그니처 커피인 콜드브루는 맥주병 같은 보틀에 제공되는데 말 일러스트와 ‘Horse Power(마력)’라 새겨진 라벨을 붙였다. 부부가 말을 좋아하기도 하고 마시면 힘이 솟는다는 뜻을 담았다.

 

 

오븐 트레이에 빵을 넣고 초코 크림을 듬뿍 부은 뒤 오븐에 굽는 버터푸딩은 단 하나뿐인 디저트 메뉴. 곧 오픈할 2층은 베이킹 메뉴를 강화할 예정이다. 체중 관리 따위는 안중에 없단 식의 버터푸딩과 보틀 커피가 있는 이곳이라면, 술 한 잔 못하는 사람도 카우보이에 빙의 가능하다.
주소 서울 마포구 망원로 61 1층
문의 02-326-1002

 


 

 

더바코라운지 & 라누베

얼마 전부터 SNS에 시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쩍 많이 걸린다. 굴뚝 같은 입에서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허세라며 누군가의 비아냥을 사기 십상이지만, 정작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런 반응이 촌스럽다는 듯 거리낌이 없다. 시가는 화학 처리가 된 담배와 달리 첨가물 없이 자연의 원료를 그대로 사용한다. 와인이나 커피처럼 원산지, 품종, 말리는 방법 등에 따라 독특하고 다양한 향과 맛이 있는 것이 특징. 시가가 애연가만의 전유물이라는 것은 시가를 둘러싼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대부분의 사람이 연기를 삼키지 않고 입과 코로만 머금어 향을 취하기 때문에 비흡연자도 즐길 수 있다.

 

 

오랜 시간 소수에게만 향유되던 시가는 오늘날, 젊은 남녀 사이에서 새롭게 조명되며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시가와 음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가 바’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 그런데 그중에는 트렌드를 좇느라, 시가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취급하는 바도 더러 있다.

 

 

이태원에 위치한 더바코(THEBACCO)는 담배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합법적인 ‘담배 문화공간’이다. 편의점에서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담배가 아닌 시가, 파이프, 롤링 타바코 등 다양한 담배를 취급한다. 더바코는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로드 숍으로 잘 알려졌지만, 시가를 비롯한 담배를 보다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더바코라운지와 라누베다. 제임스 본드의 비밀 무기고처럼 세련된 더바코라운지에선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브랜드의 시가를 판매한다. 쿠바 시가와 논쿠반 시가, 미국의 프리미엄 시가 로키 파텔(Rocky Patel) 등 국내 독점으로 수입하는 브랜드의 제품도 있다. 한 층 아래에 자리한 바 라누베에는 위스키를 비롯해 럼, 브랜디, 다양한 칵테일 메뉴가 마련돼 더바코라운지에서 구매한 시가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와인과 음식에 궁합이 있듯 시가와 술도 함께 어울리기 좋은 한 쌍이다. 더바코의 이제원 대표는 강하고 풍미가 진한 시가에는 아일라 싱글몰트 위스키를, 순하고 크리미한 시가에는 부드러운 럼이나 브랜디를 함께할 것을 권한다. 고정된 공식은 없다고 하니 자신에게 맞는 궁합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더바코라운지와 라누베는 성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0가길 13 B1, 1F
문의 02-797-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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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조혜진, 더바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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