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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드라이브] 테이데 국립공원 도로, 스페인

여러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이브 길은 어디인가? 코로나19 사태로 마음 편히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요즘, 우린 더더욱 이곳을 다시 한번 달려보고 싶다

2020.07.22

 

2011년, 메르세데스 벤츠 SLK가 공항에 도열해 있었다. 캐리어는 스태프에게 맡겼다. 공항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마치고 바로 운전석에 앉았다. 숨 가쁘게 짧은 일정이었다. 시승 코스는 여러 포인트를 거쳐 숙소까지 세팅돼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면 다시 공항까지 시승했다. 그대로 비행기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한국이었다. 그 빡빡한 일정 사이, 아직도 못 잊는 순간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공항에서 시작한 시승은 곧 바다로 이어졌다. 비행기에서 웅크렸던 몸, 서울에서 지쳤던 마음이 가까스로 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예쁜 색깔의 집들이 저 아래 모여 있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햇빛이 그 위에서 다채롭게 부서져 흩어졌다. “여기 햇볕이 굉장히 뜨거워 보이네요.” 무심코 말했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스태프가 대답했다. “그렇겠죠. 여긴 북아프리카 근처거든요.” “스페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카나리아제도에 있는 섬인데 스페인령이에요.”

 

 

아름다움, 낯섦, 놀라움은 뒤로하고 가속페달에 힘을 줬다. 해안도로를 벗어난 길이 좁은 국도로 이어지더니 마을 몇 개를 순식간에 지났다. 점심 식사 후에는 좀 더 본격적인 산길이었다. 운전대를 쥔 손과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속도를 올리고 몇 개의 코너를 가파르게 주파했다. 시야가 좁아질 만큼 집중하면서 산길을 올랐는데, 어느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우유에 뛰어든 것 같았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눈이 멀었다. “거의 앞이 보이질 않네요.” 스태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짙어도 너무 짙은, 중앙선도 보이지 않는 안개였다. 앞차는 비상등을 켜고 서행 중이었다. 몇 분이나 올라갔지? 보이는 게 없으니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느끼면서 기압차를 짐작할 뿐이었다.

 

 

“아…!” 그러다 갑자기 빛이었다. 이렇게 깨끗한 시야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느닷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안개를 뚫고 화성에 도착한 걸까? 보이는 건 바위와 모래, 약간의 식물 군락뿐이었다. 멀리, 웅장하고 가파른 검은색 산이 우리를 두르고 있었다. 가까운 곳은 구름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름을 타고 노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단숨에 뛰어들었을 법한, 완벽에 가깝게 탐스러운 흰색 구름. 우린 저 예쁜 구름 띠를 뚫고 정상에 올라온 참이었다. 짙은 안개의 정체였다. 우린 구름에 고립돼 있었다.

 

거기 머물렀던 시간은 딱 20분 정도였다. 산 이름은 기억도 안 난다. 풍경에 취해서, 그렇게 추웠는데도 무슨 알파카처럼 신이 나서 뛰었다. 그날의 시승은 오후 9시 반쯤 끝났다. 늦은 식사를 마쳤더니 여독과 피로가 뭉근했다. 잠들기 전엔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고요하고 풍족한 해변이었다. 가끔 거리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SLC가 눈에 들어오면 그날의 풍경이 구름처럼 생각난다. 7년 후, 테네리페섬은 한 TV 프로그램 <윤식당>의 시즌 2 촬영지로 알려졌다.

글_정우성(더파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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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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