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당시보다 지금이 더 특별한 여행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답답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저 푸른 초원을 훨훨 난다. 자유롭게 해외를 드나들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중엔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 여행도 있었다

2020.08.14

라다 2101

 

1995년에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당시 소련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다. 여행 코스를 개발하려는 여행사 사장님과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아련함이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고려인들의 집은 어린 시절 동네 풍경을 닮아, 마치 영화 속 40년 전 세상을 걷는 것 같았다.

 

후진국으로 떠나는 여행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거리에는 낡은 차들이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달렸다. 밤에는 도시의 불빛도 가물가물한데 대부분 차가 불을 끄고 달리기 때문이었다. 놀랐던 것은 소련차가 많다는 점이다. 라다, 볼가, 모스코비치, 질, 우아즈, 카마즈 등 평소 보기 어려운 소련차들이 시대별, 종류별로 모두 있어 소련차의 역사박물관 같았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동차 세상이 펼쳐진 거다. 어릴 적 좋아한 피아트 124가 소련의 국민차로 흔하고, 대우 티코가 현지 조립되어 인기가 좋았다. 우리가 빌린 차의 운전기사는 나이가 서른인데 가까운 옆 도시를 생전 처음 가본다고 했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공산국가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엔 통행량이 많지 않으니 휴게소가 없었다. 아이들이 깡통에 휘발유를 담아 도로변에서 팔았다. 교통경찰은 우리 일행을 세우고 왜 자기네 동네 와서 귀한 휘발유를 축내느냐고 툴툴거렸다.

 

30년 전 중국은 내가 모르는 차가 가득했다. 그때 중국에는 홍기 리무진, 상하이 세단, 베이징 지프, 해방 트럭 등 지금은 사라진 중국 고유의 모델을 볼 수 있었다. 200여 개나 되는 자동차 메이커가 저마다 짝퉁을 만들었다. 지프 체로키의 경우, 미국에서 직수입한 차,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해 만든 차, 그 차를 흉내 낸 짝퉁차 등이 마구 섞여 정말 복잡했다. 독일제 산타나가 택시로 많았는데, 신형이 나와도 구형을 그대로 생산했다. 중국에서 한번 만든 차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오래되면 폐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 지금과 달리 자동차는 대부분 관용차와 택시였고, 거리에는 자전거가 넘쳐났다. 군인 아닌 일반인이 군복을 입고, 트럭의 적재함에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다녔다.

 

타타 나노

 

2006년에 방문한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경차로 가득했다. 평소 ‘우리나라도 모든 국민이 경차를 타면 어떨까’ 하는 작은 차 세상을 꿈꾸던 나에게 현실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수입차에 고액 관세를 매기는 탓에 인도의 자동차는 대부분 국내 생산이고 경차였다. 마루티가 스즈키 경차를 조립하고 타타, 마힌드라 등에서 작은 깡통차를 만들었다. 복잡한 거리가 경차로 가득한데 인력거부터 오토바이, 오토릭쇼라는 삼발이 오토바이, 경형 밴과 대형 버스가 뒤섞여 달렸다. 3인승 오토릭쇼에 10명쯤 달라붙고, 사람들로 꽉 찬 버스는 앞뒤 문에 차장이 매달렸다. 도로를 달리는 차종마다 성능이 달라 추월해야만 한다. 꽉 막힌 도로에서 모든 차가 빵빵거리며 달린다. 아반떼 같은 소형차는 우리나라로 치면 그랜저급이었다. 그런가 하면 고급 호텔에서 1950년대의 재규어 세단 같은 클래식카도 보았다. 인도 상류층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 시절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듯했다.

 

그들의 교통문화가 낯설었다. 보통 2개 차로에 3대가 나란히 달리면서 서로 차체를 밀어 모든 차의 옆면이 상처투성이다. 차를 비벼도 서로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사이드미러가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떨어져 나갔다. 애초 공장에서 1개만 달려 나오는데 그마저 접어두는 차가 많았다. 인도는 경차도 운전기사를 두는데 인건비가 싼 이유도 있지만, 교통사고의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1

 

25년 전 영국을 혼자 다니며 취재한 적이 있었다. 시작은 디스커버리로 스코틀랜드 습지를 돌아다니는 2박3일 여정이었다. 멀리 가는데 너무 짧은 일정이라 날짜를 늘려 영국의 자동차 회사를 둘러보고 싶었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텔렉스로 케이터햄, 모건, TVR 같은 회사의 방문 약속을 받고 출발했다.

 

영국은 볼거리 넘치는 자동차 박물관이 수십 군데 있었다. 또 찾아간 5월에는 주말마다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자동차 쇼가 열렸다. 그렇게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동차 회사를 방문하고 박물관을 둘러봤다. 그리고 시골 공터에서 열리는 자동차 쇼도 관람했다.

 

영국은 나라 전체가 멋진 공원이었다. 사람들은 고색창연한 저택에 살면서 반짝이는 차를 타는 동화 같은 나라였다. 왼쪽으로 달리는 운전에 아찔한 순간도 경험하고, 교차로에서 로터리 시스템의 합리성도 체험할 수 있었다. 박물관마다 정겨운 차가 넘쳐나고, 방문한 메이커마다 따뜻한 환대 속에 시승 기회를 얻었다. 시골 동네 공터에서 열리는 수제 자동차 쇼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과 농부들이었다.

 

랜드로버로 스코틀랜드 초원을 누빈 후, 런던에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출장을 마무리했다. 2주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했다. 그만큼 영국은 자동차로 놀 거리가 많았다. 4000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와 수십 개의 기사를 작성한 순간 뿌듯함이 몰려왔다.

글_박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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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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