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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로 펼치는 ‘대항해 시대’

일렁이는 파도를 가르는 바다 위 경주. 그곳에는 도전자들의 모험과 야망이 서려 있다

2020.08.24

 

클리퍼 세계일주 요트대회

누구나 한 번쯤 호화로운 크루즈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꿈을 꾼다. 그럼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다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웃음만 나오진 않을 거다. 전 세계 14개 항구를 거치며 약 7만5000km, 지구 두 바퀴에 가까운 거리를 무동력으로 항해해야 하니까.

 

 

클리퍼 세계일주 요트대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요트를 타고 11개월 동안 전 세계를 항해하는 대회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펼쳐지는 레이스다. 2년마다 열리는 이 요트대회는 엘리트 프로 세일러들이 참가하는 아메리카컵이나 볼보 오션 레이스와는 달리 아마추어들이 참여한다. 긴 시간을 항해하는 만큼 그들은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 4주 교육을 이수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2013년부터 대회에 쓰이고 있는 클리퍼 70은 최고시속 160km로 달릴 수 있는데, 빠른 속도를 위해 45° 옆으로 누워 달리기도 한다. 볼보 오션 레이스와 다르게 인 포트 레이스가 따로 있지 않아 각 기항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모두 합쳐 순위를 매긴다. 보통 한 항구에서 7일 정도 머무르며 요트를 재정비하고 다음 목적지로 출항할 준비를 한다. 2019~2020 시즌에는 11개 팀이 참가했다. 한국의 ‘이매진 유어 코리아(Imagine your Korea)’호도 첫 출전 해 종합 6위에 올랐다.

 

 

아메리카컵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국제 스포츠 대회는 무엇일까? 피파 월드컵? 근대 올림픽? 답은 아메리카컵, 국제 요트 경주대회다. 1851년에 처음 열렸는데, 이는 피파 월드컵보다 79년, 근대 올림픽보다는 45년, 브리티시 오픈보다 9년이나 이른 것이다. 대회 이름이 아메리카컵이라 미국이 주최하거나 아메리카에서만 열리는 대회로 오해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첫 대회가 열렸던 1851년, 영국에서 개최한 섬 일주 경기에서 한 척의 미국 요트가 14척의 영국 요트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때 우승한 요트인 아메리카호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2등은 없었다고 한다). 아메리카컵은 3~4년마다 개최되며 이전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국가의 방어전 형식으로 치러진다. 특이하게 우승팀이 다음 대회의 일정과 운영 방식을 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아메리카컵이 열리기 전, 지난 우승자에 도전할 팀을 가리기 위해 아메리카컵 챌린저 대회를 열어 도전자를 정하는데, 9개 팀이 아메리카컵 진출권을 걸고 2개 팀씩 맞붙는 매치 레이스 형식이다. 경주에 참가하는 요트는 출전 국가를 대표하는 요트 클럽에서 직접 건조해야 한다. 그들의 요트는 참가국의 조선 제작 기술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요트 제작에 100억 이상이 들고 클럽 운영 비용까지 생각하면 거대한 자본력은 필수다. 그래서 각국 재계를 대표하는 슈퍼리치들이 스폰서로 참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선수로 참가하기도 한다. 21세기 들어서는 기술의 발달로 속도가 향상돼 요트의 순항 속도는 2003년도에 시속 30km대에서 2013년엔 시속 70km대로 껑충 뛰었다. 2021년 대회에서는 시속 100km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는 미국에서 가장 경주 기간이 길고 역사가 오래된 해양 경주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출발해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4121km를 횡단하는 경주로 격년제로 개최된다.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의 시작은 조금 독특하다. 1906년 호놀룰루의 선원인 클래런스 맥팔레인이 하와이 왕국과 미국 본토 사이의 사회적, 경제적 유대감을 높일 목적으로 시작됐다. 다른 대회와 다른 건 출발 방식이다.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는 캘리포니아에서 2~3일 간격으로 출발하는데, 가장 빠른 요트가 가장 늦게 출발한다. 그래서 모든 요트가 거의 동시에 호놀룰루에 도착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한다.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는 여느 대양 레이스와 다르게 적도 이북 동태평양에서 열리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풍하 레이스에 속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풍상 레이스보다 격하진 않지만 평균속도는 시속 37~46km로 마라톤 경주처럼 페이스 유지와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스 중간엔 ‘윈드 홀’이라고 불리는 강풍주의 구간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승패가 결정된다.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영화 <모닝 라이트>를 추천한다. 요트 팀을 꾸려 대회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꼭 트랜스퍼시픽 요트대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트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보면 좋다.

 

 

키웨스트 월드 챔피언십

미국 플로리다주 서쪽, 섬에서 섬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다리를 지나 맨 마지막 섬으로 가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휴양지 키웨스트가 있다. 매년 가을 키웨스트 해변에선 수십 대의 파워보트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가르며 속도를 겨루는 키웨스트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다. 대회에 참가하는 드라이버들에게 키웨스트 해변은 아름다운 휴양지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자리인 셈이다. 올해로 40번째를 맞은 키웨스트 월드 챔피언십의 코스는 매년 바뀐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해상 환경 때문인데, 이를 고려해 약 10.45km의 코스를 설정한다. 관중들은 시작점이자 결승점에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파워보트를 구경할 수 있고, 개인 보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바다 위에서 관람할 수 있다. 대회에서 쓰는 파워보트의 길이는 15m로 모터 두 개를 단 쌍동선이다. 시속 230km까지 달릴 수 있어 앞부분이 하늘을 향하는 건 기본이고, 파도를 잘못 읽어 질주하다 공중으로 점프하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대회 기간은 7일이지만 경기가 열리는 날은 3일뿐이다. 나머지 4일은 무엇을 하느냐고? 이 대회는 드라이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 모터쇼처럼 파워보트를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볼 수 있고, 그들을 위한 파티와 퍼레이드가 준비된다. 올해는 11월 8~15일로 예정됐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개최가 불투명하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파워보트가 시원하게 키웨스트 앞 바다를 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F1 H₂O 월드 챔피언십

F1이 자동차 경주의 최정상이라면 F1 H₂O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파워보트 경주다. 이름만큼 F1 경주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9개팀 18명의 드라이버가 퀄리파잉으로 그리드를 정하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서대로 선수들의 순위를 매겨 포인트를 지급한다. 경주는 약 350m 구간을 수십 바퀴 도는 게임이다. 경주 시간은 약 45분으로 다른 파워보트 경주보다 길지만 자동차 경주보단 짧다. F1 이름에 걸맞게 참가하는 파워보트들은 시속 200km 이상으로 질주하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대회에 참가하는 파워보트는 두 개의 선체에 두 개의 모터를 연결해 기동성이 뛰어나고 고속 주행에도 안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길이 6m, 너비 2m의 크기로 무게는 390kg 수준이다. 엔진이 약 270kg으로 선체 무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선체에는 탄소섬유와 케블라를 사용해 무게를 낮췄다. 파워보트는 400마력을 내는 V6 엔진 한 쌍을 얹어 최고 시속 250km를 낸다. 경주는 박진감이 넘친다. 바다 위를 내달리는 모습이 발사된 미사일처럼 속도가 빠르다. 급작스러운 회전 구간이 있어, 파워보트가 뒤집히거나 보트끼리 충돌해 부서지는 아찔한 장면도 자주 연출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981년부터 시작한 F1 H₂O 월드 챔피언십은 그랑프리 이벤트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경기를 치른다. 올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중국, 아랍에미리트 등 총 7개국 8개 도시에서 개최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되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마지막 경주 개최 여부도 아직 논의 중이다.

 

 

볼보 오션 레이스

세계 3대 요트 레이스로 손꼽히는 볼보 오션 레이스는 무동력 요트로 전 세계를 항해하는 해양 스포츠다. 경기는 각 거점 항구로 항해하는 ‘레그(Leg)’와 각 항에 도착했을 때 근해와 항구 안에서 펼쳐지는 ‘인 포트 레이스(In port race)’로 진행된다. 레그와 인 포트 레이스에서 얻은 점수를 합산해 최종 우승팀이 결정된다. 볼보 오션 레이스를 ‘위대한 항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동력 장치 없이 바다를 항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트에 올라탄 9명의 크루들은 무려 9개월 동안 4대양 5대주 11개 국가를 거치며 8만3340km를 항해하기 때문이다.

 

 

크루들은 한 달씩 요트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기본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날씨와 기온,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닷물과 키를 훌쩍 넘는 파도, 불어오는 태풍까지 마주해야 한다. 레그와 레그 사이 육지에 있는 기간에도 온전히 쉴 수 없다. 다음 항해 준비와 인 포트 레이스를 진행해야 하니까. 이런 험난한 스포츠임에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으로 볼보 오션 레이스에 도전한다. 모든 요트는 볼보 오션 레이스만을 위해 한 곳에서 제작되는데 대당 가격은 1000억원이다.

 

 

요트의 총 길이는 약 22m, 돛의 높이는 30m를 넘고 무게만 1만2500kg에 이른다. 똑같은 요트로 똑같은 루트를 달리니 주어진 조건은 같은 셈이다. 그래서 크루의 역량과 팀워크가 순위를 가른다. 아쉬운 소식이지만 볼보는 2020년을 마지막으로 20년간 몸담았던 레이스에서 철수한다. 2021년부터 오션 레이스는 애틀랜틱 오션 레이싱 스페인이 경기를 주최할 예정이다.

 

 

 

 

 

모터트렌드, 요트, 보트 레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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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선관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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