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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한국 미래차 컨소시엄’을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한국 미래차 컨소시엄’을 구성하자는 내 아이디어가 실제로 진행되는 듯하다. 이건 자동차산업 전환기에 우리나라가 가진 역량을 집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2020.08.24

 

‘정몽구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퇴임한 것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2세 경영 시대 종료를 뜻한다. 3세들이 경영 일선에 전면적으로 나선 지금은 대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것은 자동차산업 전환기에 우리나라가 가진 역량을 집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올해 초 내가 쓴 글의 일부다. 난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 3세들의 한 가지 특징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들은 서로를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나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을 일으킨 1세들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킨 오너 2세들은 아무래도 서로의 관계가 편하기 어렵다. 경쟁 관계라는 면이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오너 3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안정적인 기반의 기업과 가정 배경 속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모두 혹은 어렸을 때라도 경험한 1~2세대와는 가치관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차이가 역설적으로 그들 사이에 동질감을 만드는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의 토양이 된다.

 

실제로 3세들끼리는 서로 도움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7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LG 구광모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3세들 사이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와는 분명 다른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정의선 부회장이 삼성 SDI를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해 논의했고, 이어 구광모 LG 회장과도 회동을 했다. 비록 3세는 아니지만 SK 최태원 회장과의 만남도 이어지면서 이른바 전기차 배터리 동맹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정의선 부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만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지난 5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삼성 SDI 충남 천안사업장을 찾은 것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7 월 21일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또 한번 만남을 갖는 건 이전과는 달리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한국판 그린 뉴딜 정책에서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기차 100만대 판매와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협력 관계가 필요해졌다. 배터리 수급 문제는 물론이고, 미래차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인 자율주행과 커넥티비티 기술을 위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합작 관계인 앱티브(Aptiv)와 개발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삼성과 하만이 갖고 있는 하드웨어와 접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내가 여러 차례 제안했던 내용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현대차의 자동차, LG·삼성·SK의 2차전지, LG의 전기 구동계, SKT·KT의 통신 그리고 네이버·다음의 빅 데이터 등으로 망라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군단이 이른바 ‘한국 미래차 컨소시엄’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그 뼈대가 되는 일은 이미 윤곽이 그려지고 있다.

 

당시 그 제안을 했던 계기는 한국 GM의 군산 공장 매각이었다. 그곳을 미래차를 개발하는 연구센터와 파일럿 공장으로 활용하는 국가 주도 미래차 산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하면 최적이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MS 오토텍이 중국 바이톤과 조립생산 계획을 맺으면서 이 바람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바이톤이 위태로운 지금 MS 오토텍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어차피 30만대 규모의 공장에 여력은 많다. 정부가 어렵다면 현대차 유관 기업인 MS 오토텍이 이 프로젝트의 매개 기업이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바로 쌍용차다. 모기업인 마힌드라와의 관계 청산이 기정사실화되는 지금 쌍용차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기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지리자동차와 의사 타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쌍용차는 다른 생존 방법, 즉 용도가 있어 보인다. 바로 전기 상용차다. 과거 쌍용차는 대형 특장차까지 생산했던 기업이다. 지금도 보디 온 프레임 구조를 갖춘 정통 SUV와 픽업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이 모델들을 바탕으로 미래형 전기 상용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사업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승용차에게 자율주행이나 전기 구동계가 있으면 좋은 정도라면 상용차에게는 수익성을 높이고 세금을 아끼는 등 사업성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이건 우리나라와 우리 자동차 산업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한국지엠의 위기와 군산 공장 매각, 쌍용차의 재정 위기 그리고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모빌리티의 근본적 변화 등 최근 몇 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우리나라와 우리 자동차 산업에 기회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3세 경영에 돌입한 우리 대기업들이 역량을 하나로 모은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겠다는 생각이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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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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