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공룡 기업의 골목시장 진출

현대차의 캠핑카 포레스트를 보고 입맛이 쓰다. 자동차 제조사와 애프터마켓이 할 일은 다른데 굳이 거기까지 해야 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건강한 자동차 산업과 제품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2020.08.26

 

7월 초, 일산 킨텍스에서는 ‘2020 캠핑&피크닉 페어’가 열렸다. 캠핑관련 용품 박람회인데 그 넓은 공간의 절반 이상이 다양한 캠핑카와 캠핑 트레일러로 가득 채워졌다. 전국에서 올라온 다양한 모양과 기능, 가격의 캠핑카들이 있었고 커다란 오프로드 타이어를 단 캠핑 트레일러나 픽업트럭에 실을 수 있는 트럭 캠퍼도 꽤 많았다. 사실 캠핑을 자주 다니면 커다란 돔 텐트나 타프, 셸터 등을 펴고 접는 일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음 단계의 캠핑으로 이런 캠핑카나 캠퍼로 눈을 돌린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로 원하는 곳에 도착해 간단하게 어닝을 펼치고 의자를 꺼내는 것만으로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년 9월 개정된 자동차 관리법에 따라 올해 2월 28일부터 캠핑용 자동차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조치가 시행돼 캠핑카 접근이 쉬워졌다. 과거에 캠핑카는 승합차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화물차로 인증받고 출고한 차를 캠핑카로 만들려면 별도 자동차 제작사 인증을 받아 이동식 업무용 차가 돼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승용차나 화물차를 출고하고 캠핑카로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캠핑카로 인정받는 기준도 완화됐다. 과거에는 침대 등의 취침 시설은 물론 취사 시설, 세면 시설, 개수대, 화장실 등이 모두 있어야 했지만, 앞으로는 취침 시설 외 캠핑에 필요한 1개 이상의 시설만 갖추면 캠핑용 자동차로 인정받는다. 이를 반영해 승용차의 지붕을 높이고 취사 시설을 달아 캠핑카로 만든 기아 레이처럼 낮은 가격으로 접근 가능한 것은 물론 일상용으로 쓰기에도 괜찮은 차도 있었다.

 

이렇게 규제가 줄고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자동차를 통해 캠핑을 즐기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발표로는 국내 등록된 캠핑카는 2019년 말 기준 2만4869대로 2014년 말 4131대에서 무려 6배나 늘었다. 이 중에서 튜닝을 통해 만들어진 캠핑카는 7921대로 약 32%를 차지한다. 물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캠핑카 제작사가 만들어서 ‘캠핑카’로 분류해 판매하는 차들과, 밖에서 개조한 차들이 공존하며 커져가고 있다. 물론 이런 캠핑카 제작과 개조는 모두 중소기업의 영역이다. 국내 법규가 미비하던 시절부터 규제를 뚫고 완성차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형식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캠핑 붐에는 이들의 노력이 녹아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렇게 시장이 커지고 돈이 돌자 현대자동차가 포레스트라는 이름의 캠핑카를 내놓았다. 물론 실제 제작은 외부 업체에서 한다. 오랫동안 앰뷸런스 등 특장차와 현대자동차 브랜드를 달고 판매한 캠핑카를 만들어온 업체이니 품질에 대한 걱정은 접어도 될 것이다. 또 현대자동차가 이름을 걸고 판매하므로 아무래도 안전성과 AS 등에 관한 책임 소재도 분명하다. 애프터마켓에서 팔리는 비슷한 사양의 포터 캠핑카와 비교하면 500만~1000만원 비싼데, 앞서 말한 보증수리와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 등 장점을 위한 비용으로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대기업 자동차 제작사와 애프터마켓의 중소기업이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규모와 기술력을 갖춘 제작사는 기본적인 주행 성능과 충돌 안전성을 갖춘 기본 모델을 개발하고 공급해야 한다. 또 외부 업체들이 차를 개조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하고 변형 가능한 한계를 확인해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자동차 제조사의 몫이다. 외부 업체에서는 이런 기술적 제원과 자료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아이디어를 더해 차를 완성해 판매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만들어진 캠핑카를 외부 업체가 해외에 수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협력만 잘된다면 현대·기아자동차 그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 이번 포레스트의 출시는 그런 가능성을 줄인 것이 분명하다.

 

사실 현대·기아자동차가 이런 애프터마켓 특장차의 영역에 들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포터나 봉고를 보면 택배용으로 많이 쓰이는 내장 탑차와 냉동 탑차, 짐을 싣고 올리기 편한 파워게이트까지 모두 이들의 이름을 달고 팔린다. 이게 정상인가? 과거 이런 개조를 통해 자기 사업을 영위하던 회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없어졌을지도 모르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대자동차 그룹의 하청업체가 된 정도일 것이다.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누구도 바라지 않았을 변화다.

 

우리가 이름을 걸고 직접 판매까지 다 해주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꽤 넉넉한 중간 마진을 챙기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물론 이건 갑질이나 독점의 문제로 보기 힘들다. 하지만 상생과 공존이라는 면에서는 분명 바뀌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자동차 회사도 이렇게 하는 곳은 없다. 기반이 되는 좋은 차를 만들어 공급하고 애프터마켓의 다양성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개성 강한 제품을 소량으로 만들 수 있는 애프터마켓 회사들이 우뚝 서야 한다. 그래야 도구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상품이 나온다. 통 큰 변화를 기대해본다.

글_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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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PHOTO : 현대자동차,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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