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가짜는 가짜다

시뮬레이션 레이싱은 결코 진짜 자동차 경주만큼 힘들 수 없다

2020.09.03

 

“모든 코너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 같아.” “F1 경주차를 모는 느낌은 어떠냐?”는 질문에 F1 그랑프리에서 아홉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마크 웨버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온몸이 난타당하는 느낌을 받은 건 물리학 때문이다. 캐나다 몬트리올 질빌뇌브 서킷에서 그는 매 바퀴마다 122m 구간에서 시속 338km로 달리다가 시속 128km로 감속하기 위해 2초 남짓의 짧은 순간 동안 왼발로 125kg에 달하는 힘을 가해 브레이크 페달을 으스러뜨릴 듯이 밟아야 했다. 이때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횡가속도는 얼마나 될까? 중력의 약 다섯 배다. 당신의 몸을 예로 들면, 시속 16km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벽에 그대로 들이받는 것과 같다. 문제는 서킷을 70바퀴 도는 내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다.

 

코로나19로 굵직한 자동차 경주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르망 24시간 레이스도 9월로 미뤄졌다. 대신 지난 6월 온라인에서 버추얼 경주대회가 열렸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터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이 가상 경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실에서의 F1 챔피언과 르망 우승자를 포함해 37개 국가의 드라이버 200명이 실제와 똑같이 만든 13.7km 길이의 라 사르트 가상 서킷에서 50대의 경주차를 타고 달렸다. 그들은 가상의 밤을 질주하며 가상의 연료를 소모하고, 가상의 타이어를 관리했다.

 

코로나19로 자동차 경주가 보류된 가운데 등장한 가상 경주는 무궁한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대체할 순 없다.

 

GTE 클래스에는 가상의 쉐보레 콜벳 C7.R과 페라리 488 GTE, 애스턴마틴 밴티지 GTE, 포르쉐 911 RSR이 출전했다. LMP 클래스의 가상 경주차로는 최고출력 600마력 이상을 내는 V8 4.2ℓ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프랑스산 오레카 07 LMP2가 투입됐다. 그동안 LMP1 프로토타입의 그늘에 가려 있던 LMP2 경주차들은 통상 르망에서 조연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LMP2 경주차들이 주인공이었고, 매우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비슷해 보이기는 했지만 가상의 오레카 경주차들은 현실과 똑같지 않았다. 경주차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현실에서 하는 것처럼 서스펜션을 설정하고 다운포스 수치나 기어비를 바꿀 수 있었다. 실제로 경주차 세팅을 다루던 엔지니어들에게 이건 독특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현실 세계의 주변 온도와 바람의 방향, 습도의 미묘하고 변덕스러운 조합이 아니라 교묘하게 프로그램된 소프트웨어에 맞서 최적화를 진행했다. 그렇다고 해도 르망에 출전한 30대의 가상 LMP 경주차들은 기계적인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큰 변수는 드라이버들이었다. 이건 최고의 시뮬레이션 레이서들의 실력을 현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들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빠른 시뮬레이션 레이서들은 현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버들보다 빨랐다. 핀란드 출신 시뮬레이션 레이서 알레스키 유시-야콜라가 3분23초672를 기록해 현직 F1 드라이버 페르난도 알론소보다 1.9초 빨리 도착했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경주는 정밀한 기하학이다. 따라서 고도의 집중력과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 빛처럼 빠른 반응 속도와 침착한 통제력, 집중력과 자신감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경주차가 트랙을 정확히 달리는 동안 드라이버에게 일관되게 작용하거나 거의 한계치에 도달한다.

 

자, 이제 길고 빠른 경주차에 횡가속도 6g가 가해지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것을 상상해보자. 레이서는 전투기 조종사처럼 숨이 죽고 몸의 중심부가 긴장된다. 머리에는 사실상 25kg의 무게가 더해지고 장기들이 한쪽으로 쏠린다.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는 동안 눈물샘이 분비돼 헬멧 바이저에 ‘후두둑’ 떨어진다. 그동안 운전석 온도는 54℃를 넘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아, 뇌 기능도 40% 가까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력을 잠시라도 잃으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잘못될 수도 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가상의 르망 24시간 경주는 최고 수준의 시뮬레이션 경주가 흥미롭고 매력적이라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현실만큼 힘든 건 어디에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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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Angus MacKenziePHOTO : MOTORSPORT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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