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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설득력 있는 전기차, 르노 조에

유럽 전기차 시장의 오랜 강자인 르노 조에가 우리나라 땅을 밟았다. 소형차 만들기 달인인 르노가 해치백 고유의 장점과 전기 구동계 특유의 매력을 접목해 만든 조에는 우리나라 전기차 환경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2020.09.08

 

지난 몇 년 사이에 전기차로 대표되는 저공해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꾸준히 커져왔다. 춥지 않은 겨울과 유난히 더운 여름을 겪으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고, 올해에는 지난 몇 년간 경험했던 마른장마가 무색할 만큼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이처럼 환경 변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전기차 구매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읽은 여러 자동차 업체도 앞다투며 전기차를 내놓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자동차 업계 관점에서는 소비자의 요구 이상으로 평균에너지 소비효율제도의 압박도 작용하고 있어, 일정 수준 이상 전기차를 반드시 팔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환경 관점에서 아무리 바람직하다 해도, 당위성만으로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내연기관차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어야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전기차 판매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전기차가 이전보다 소비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의 현실적 대안이 되고 있다는 증거는 판매되는 모델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전기차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서, 용도와 목적에 따라 모델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국내 브랜드에서 꾸준히 전기차를 내놓으며 다진 기반을 바탕으로 한동안 프리미엄 브랜드 중심으로 값비싼 대형 모델 출시가 줄을 이었다면, 최근에는 도시형 소형차 영역에 새롭게 선보이는 모델들이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르노가 국내 시장에 내놓은 조에(ZOE)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조에가 흥미로운 점 가운데 첫 번째는 전기차 시장의 숨은 강자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전기차에 관해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는 테슬라였다. 그러나 이는 테슬라에 관한 정보가 테슬라의 본거지인 미국 중심으로 치우친 영향이 크다.  미국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핵심 자동차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럽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유럽에서 누적 판매량이 가장 많은 전기차는 바로 조에다. 조에는 유럽에서 올해 6월까지 21만6000여 대가 팔렸다. 누적 판매량 2위인 닛산 리프(16만9000여 대), 3위인 테슬라 모델 3(12만8000여 대)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한편으로 그동안 조에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끈 것은 마땅한 경쟁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유럽 특유의 시장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유럽은 도로교통 환경이나 사람들이 차를 쓰는 용도와 패턴 때문에 오랫동안 소형차, 특히 소형 해치백의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차 크기가 작으면 에너지 밀도 때문에 차에 넣을 수 있는 배터리 크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성능과 주행가능거리, 충전 편의성 등을 고려하면 소형차 크기의 실용적 전기차를 만들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모델이 바로 조에다. 즉 유럽 정통 해치백 고유의 장점을 바탕으로 전기 구동계 특유의 매력을 더해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이 조에의 성공 비결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조에의 설득력에는 절묘한 디자인과 패키징의 조화도 한몫한다. 외모는 전형적인 유럽 소형 해치백이지만, 실내 구성은 요즘 인기 있는 소형 크로스오버 SUV에 가깝다. 차체 크기는 길이 4090mm, 너비 1730mm, 높이 1560mm로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더라도 도심의 복잡한 거리나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차를 다루기에 좋은 크기라는 소형차의 특성은 조에의 타고난 장점이다. 지금은 단종된 기아 프라이드 해치백보다 길이와 너비는 조금 더 크고, 높이는 현대 코나 EV보다 10mm 낮을 뿐이다. 오히려 차체 길이에 비하면 휠베이스(2590mm)가 긴 편이어서, 실내 공간은 물론 주행 안정성도 충분히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끊임없는 개선과 보완을 거쳐 충분히 숙성된 모델이라는 사실이다. 기본 차체와 섀시 구성은 2012년 처음 선보인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 팔리는 모델은 2019년 하반기에 개선된 최신 버전으로, 지금까지 나온 모델들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동력계와 더불어 르노의 최신 디자인 요소를 반영한 것은 물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외모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겉모습은 오래 보아도 식상하지 않을 간결한 차체 형태 덕분에, 앞뒤 램프와 범퍼를 최신 르노 패밀리 디자인에 맞춰 손질한 것만으로도 새 차 느낌이 뚜렷하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LED 퓨어비전 헤드램프와 차체 너비를 강조한 공기흡입구 디자인의 안개등 주변부, 나뭇잎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LED 테일램프와 양감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무게중심이 낮아 보이는 뒤 범퍼 등은 프랑스 차 특유의 재치를 담고 있다.

 

동급에서 가장 큰 10.25인치 클러스터와 중앙의 대화면 모니터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내도 프랑스 소형차의 간결한 구성과 디자인의 틀을 바탕으로 차에 탄 사람이 가장 자주 접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최신 장비와 기능을 넣었다. 비교적 높은 헤드레스트 일체형 앞좌석은 시야 확보에 좋고, 시트와 대시보드, 콘솔 커버, 도어 암레스트 등 실내 곳곳에 넓게 자리를 잡은 친환경 소재들은 전기차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물론 장비와 꾸밈새는 트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국내 판매 모델의 트림은 젠, 인텐스 에코, 인텐스 세 가지로, 르노가 소형차에 주로 쓰는 트림 이름 그대로다. 젠은 말 그대로 필수적인 장비들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꾸몄고, 그 위에 편의성을 높이는 장비를 추가하면서도 조금은 검소한 분위기의 인텐스 에코와 탄탄한 구성의 인텐스가 자리한다.

 

부담 없는 실내 분위기 덕분에 돋보이는 것은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들이다. 모든 모델에 10.25인치 풀 LCD 디스플레이 계기반이 기본으로 달리고, 인포테인먼트 터치스크린은 7인치를 기본으로 윗급 트림에는 9.3인치 크기의 것이 들어간다. 또한 사용 편의성을 고려해 일부 기능을 물리적 버튼으로 빼놓은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와 함께 이지 커넥트 서비스가 기본 제공되기 때문에 원격 제어와 관리 기능, 내비게이션 실시간 정보 등이 지원되고 충전 예약이나 사전 공조 설정 같은 기능을 스마트폰 앱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

 

 

조에에서 가장 잘 숙성되고 발전한 부분은 역시 동력계다. 국내 시장의 문을 처음 두드리는 모델이기는 하지만,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이루어진 동력계만큼은 이미 두 번의 대대적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모델은 모두 보닛 아래에 최고출력 136마력(100kW), 최대토크 25kg·m의 성능을 내는 전기모터가 들어 있다.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나라에서는 109마력(80kW) 버전도 팔린다. 차체 바닥과 뒷좌석 아래 공간을 차지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유효 충전 용량은 52kWh다. 데뷔 당시 88마력 모터에 22kWh 배터리를 달았던 것과 비교하면 크나큰 발전을 한 것이다.

 

동력계가 발휘하는 힘으로 0→시속 100km 가속을 9.5초 만에 달린다. 숫자가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상적 용도로 차를 쓴다면 부족한 수준은 아니다. 대신 전기모터 특유의 강력한 저회전 토크 덕분에, 0→시속 50km는 3.6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속도로 제한속도까지 단숨에 끌어올릴 일은 많지 않은 만큼, 오히려 상대적으로 빠른 초반 가속은 도심의 거리에서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를 가속할 때 더 반가울 것이다.

 

 

르노 캡처와 닮은꼴인 전자식 기어레버를 조작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 B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평상시에 일반 주행(D) 모드로 달릴 때보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 회생제동 기능이 더 강력하게 작동해, 시속 7km에 이를 때까지 속도가 가파르게 줄어 흔히 말하는 ‘원 페달 드라이빙’에 가까운 주행이 가능하다. 정지할 때는 완전히 정지할 때에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되고, 모든 트림에 적용되는 오토 홀드 기능과 함께 활용하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환경에서 운전이 더 편리해진다.

 

 

한편 국내 인증 기준 1회 충전 최대 주행가능거리는 309km다. 일상에서 평범한 내연기관차처럼 타더라도 평균적으로 국내 인증 수치만큼은 충분히 달릴 수 있겠지만, 까다로운 기준 탓에 상당수 수입 전기차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행가능거리 축소 현상은 조에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유럽 공인 WLTP 기준으로는 395km 주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한 상태로 달릴 수 있는 최대 거리가 300km를 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기차의 현실성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내놓은 ‘2018 자동차주행거리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자동차 1대당 1일 평균 주행거리는 39.2km이고, 비사업용 승용차는 33.6km로 나타났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승용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를 40km 안팎이라고 계산하면 일주일 동안 280km 정도 거리를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기차의 1회 충전 최대 주행가능거리가 300km 전후라면, 주말에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면 주중에 추가로 충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배터리 용량에 따른 충전 속도와 시간, 월박스(가정용 고속 충전기) 설치가 여의치 않은 국내 충전 환경을 고루 고려하면 1회 완전 충전 주행가능거리 300km가 실용적 전기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나누는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

 

아울러 충전용 커넥터 규격도 국내 표준인 직류(DC) 콤보 1(교류 완속용 5핀+직류 급속용 2핀) 형태다. 국내 충전 유효 배터리 용량이 52kWh여서 7kW급 홈/고속 충전기에서는 100% 충전까지 9시간 25분, 50kW급 급속 충전기를 연결하면 70분 정도면 최대 충전량의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충전 시간이나 주기가 아주 길지도 아주 짧지도 않은 수준이면서 완속과 급속 충전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충전 편의성은 여느 전기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조에에서 한 번 충전으로 400km 넘는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대형 전기차들과 같은 경험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연기관을 쓰는 차들도 소형차와 대형차의 용도와 편의성은 다르기 마련이다. 소형차는 소형차에 알맞은 환경에서 쓸 때 제 가치를 한다. 예를 들자면 가까운 거리를 자주 이동해야 하는 환경에서 주로 쓰는 업무용 차나 통근 및 통학차라면 소형차로도 충분하다. 내연기관을 쓰는 차라면 대개 경차가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조에 같은 소형 전기차는 경차만큼 다루기 쉬우면서도 공간과 승차감은 더 여유 있고 저렴한 충전비용과 저공해차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이처럼 크기와 성능, 효율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전기차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자동차 업체의 끊임없는 전기차 기술 개발과 더불어 전기차가 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환경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으면서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은 계속 누릴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는 조에도 한몫을 할 것이 틀림없다.

글_류청희(자동차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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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진우PHOTO : 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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