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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과 운전의 상관관계

9월 17일은 ‘고백 데이’다. 그날부터 연애를 시작하면 100일째 되는 날이 크리스마스기 때문. <모터트렌드> 여기자 3인이 ‘심쿵’했던 조수석 에피소드를 풀었다. 우리는 남자의 이런 모습에 깼고, 이런 모습에 설레었다

2020.09.11

 

비교 시승, 쌈과 썸

소개팅으로 그를 만났다. 나는 첫 만남의 어색함이 싫어 술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술집에서 만났다. 나는 두 번 모두 거나하게 취한 뒤 부리나케 귀가했다(마음에 들었다면 그렇게 마시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세 번째 만남을 제안했고, 그제야 우리는 밥과 카페 코스를 밟기로 했다. 그동안 그의 차에 탈 일은 없었지만 그가 미니를 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고야드 지갑과 미니 엠블럼이 새겨진 자동차 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으니까. 그가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빨간색 미니 쿠퍼, 그리고 그 옆으로 붉은색 피케 셔츠를 입은 그가 서 있었다(세상에나). 사실 잘 모르는 남자(?)의 차에 처음 탄다는 건 꽤 긴장되는 일이다. 이제껏 비무장지대에서만 만나다 비로소 그의 체취 가득한 서식지에 얼마간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일이니까. 내 말수가 적어지자 그의 말이 많아졌다. 그는 자기 자랑에 심취한 나머지 끼어드는 차를 보지 못해 급정거하고, 두텁고 짧은 클랙슨을 경쾌하게 울려댔다. 플레이 리스트는 가요 톱 100을 그대로 재생한 것 같은데, 남다른 드라이브 취향이나 커피 취향을 과시하려는 언행은 도무지 아이러니였다. 돼먹은 운전 습관을 보여주고 싶어 환장한 걸까? 시내 도로에서 칼치기도 서슴지 않았다. ‘객’ 입장에서 그의 과격한 운전은 더욱 경솔하고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미니의 좁은 실내는 문제를 틀릴 때마다 조여드는 방 같았고, 그는 번번이 틀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신 만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알게 된 또 다른 남자는 국산 중형 세단을 몰았다. 별다른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무채색의 차였지만 조수석 문을 열자마자 포근한 목화 향이 났다. 내가 그의 옆자리에 앉자 그가 스포츠 모드에 맞춰져 있던 주행 모드를 컴포트 모드로 맞췄다. 딸깍 소리가 났던 그때, 내 마음의 스위치도 켜진 걸까. 그와 몇 번의 동행, 우리의 목적지는 별다른 주차 공간이 없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어디를 갈 때마다 어떤 빌딩의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는지 훤하게 꿰고 있었다. 처세에 밝은 사람이란 사실은 그의 주차 실력만큼 믿음이 갔다. 카메라 화면이 아닌 사이드미러를 보고 단번에 후진하는 것엔 심장이 자주 내려앉았다. 홀딱 넘어간 결정적인 사건은 비 오는 날 일어났다. 창에 습기가 차서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던 날, 그는 준비한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고 와이퍼가 메트로놈처럼 움직일 때, 스피커에서 오프온오프의 ‘Bath’가 흘러나왔다. 인트로의 샤워기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쏟아지고 곧 느린 피아노 소리와 습기 가득한 음색이 안개처럼 공간을 메웠다. 비 오는 날, 폐쇄된 공간, 비슷한 음악 취향, 거기다 하얀 와이셔츠의 팔을 반쯤 걷은 남자….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글__장은지

 

 

남자의 매너와 후진은 바이블이다!

“너 내일 MT 가지?” “응” “늦게 갈 거면 내 차 타고 갈래?” 마침 과제 때문에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했던 난 그러자며 그와 학교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오후,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데 멀리 새빨간 티뷰론이 시야에 들어왔다. “야! 타!” 그렇게 그는 두 마디를 외치며 운전석에서 바람처럼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누가 문 열어주는 차에 처음 탄 난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좀 설레었다고 할까? 차에 타는데 주변 시선이 차와 우리 둘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순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조금 우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전까진 한 번도 그에게서 남자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냥 동기고 친구였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만큼은 그가 잠깐 남자로 느껴졌다. 그게 새빨간 티뷰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문을 열어주는 자상한 매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 후로 어떻게 됐느냐고? 연인으로 발전하기엔 우린 너무 못 볼 꼴을 많이 봤다. 그래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그놈한테 ‘심쿵’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그는 운전을 잘했다(아, 이건 다른 놈이다). 그리고 매너가 좋았다. 급하게 차선을 바꾸면 꼭 뒷사람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오른팔을 살짝 들었다. 요즘은 비상등을 켜는 게 매너지만 예전에는 비상등보다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게 예의였다. 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마음이 설레었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울컥 하고 내 몸이 앞으로 쏠릴 땐 오른팔을 내 쪽으로 뻗어 “괜찮아?”라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안 괜찮을 수가 없었다. 그와 자동차로 여러 곳을 여행했다. 그때마다 운전대는 꼭 그가 잡았다. 자동차 잡지 기자로 일하지만 운전하는 걸 피곤해하는 난 그것도 너무 좋았다. 그는 꼭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몸을 자연스럽게 시트에 기대고 바른 자세로 운전하는 모습에 또 마음이 ‘심쿵’했다.

 

남편은 운전을 못한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연애 초반만 해도 운전대를 잡은 남편 때문에 심장이 ‘쿵’ 내려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충남 태안으로 여행 갔을 땐 마주 오는 트럭을 피하느라 옆으로 비키다가 고랑에 빠져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고, 부모님과 갈빗집에 갔다가 주차하다 기둥에 꽁무니를 박아 내가 운전대를 뺏기도 했다(그 상처가 아직 내 차에 남아 있다). 요즘도 1년에 몇 번은 차 안에서 ‘심쿵(?)’한다. 그래도 후진 주차할 때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건 좀 멋지다. 손바닥으로 운전대 가운데를 밀면서 휙휙 돌리는 게 볼 때마다 신기하다. 나도 몇 번 시도해봤는데 잘 안되더라. 운전도, 주차도 못하는 남편이 그런 기술은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운전학원에서 남자들에게만 따로 특별 강습이라도 해주는 건가?

글_서인수

 

 

그 겨울, 히터보다 따뜻했던 남자

바야흐로 2년 전, 입김이 몽글하게 피어오르는 12월이었다. 외로운 마음 붙잡고 자기계발이나 하자며 카페로 향했던 주말 아침. 몇 시간이 지났을까, 한창 영어를 주절거리던 내게 옆자리에 있던 그가 슬며시 냅킨을 건네곤 사라졌다.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남자친구 없으면 010-XXXX-XXXX으로 연락주세요”란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챙 모자 사이로 스쳤던 그의 눈웃음이 겹쳐 비실비실 입 밖으로 웃음이 흘렀다.

 

성수동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한 날. ‘딸랑’ 출입문에 달려 있던 요란한 풍경종 소리에 눈길을 옮겼다. 아, 이 남자구나. 올 블랙 슈트에 정갈한 포마드 머리를 한 그가 퍽 마음에 들었다. 붉은 조명 탓인지, 물처럼 마셔버린 와인 탓인지 발그레해진 두 볼을 가리느라 애썼더랬다.

 

그러나 그에게 퐁당 빠져버린 연유는 따로 있었다. 애마는 주인을 닮는다 했던가. 그의 옷차림만큼이나 깔끔한 BMW 4시리즈 쿠페가 눈에 띄었다(쿠페를 타는 그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다). 눈웃음을 지은 그가 내게로 와 문을 열어줬다. 세상에…. 새하얀 외장 컬러와 베이지 시트라니. 자동차를 잘 관리하는 남자임이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쓰레기가 남아 있을 법한 공간(이를테면 문 아래 수납공간, 컵 홀더, 중앙 수납공간)을 곁눈질로 살펴봤지만 티끌 하나 없었다. 내친김에 슬쩍 조수석 글러브박스도 열어봤는데, 웬걸 초콜릿이 잔뜩 들어 있었다. 지난번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종류별로 초콜릿을 채워 넣은 그였다. “이동할 때 먹으라고 넣어놨어”라며 빙그레 웃는다. 이런 남자에게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시간이 지나면 변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매너는 습관이었다. 운전 중에도 “춥지 않아?” “더우면 환기할까?” “졸리면 시트 눕혀서 자”라며 온 관심을 내게 쏟았다. 운전을 보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이 보인다. 끼어드는 차에 양보하는 건 물론이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로 속도제한을 걸어 천천히 달리는 것은 그의 일상이었다.

 

자동차는 작은 공간이지만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그러니 남성 독자들이여 주목하라. 제아무리 슈퍼카를 가지고 있다 한들, 부드러운 운전 매너와 섬세한 배려가 없다면 그녀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 이번 주 자동차 데이트를 계획했다면,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를 미리 컵 홀더에 꽂아놓는 센스 정도는 발휘해보자!

글_윤수정

 

 

 

 

모터트렌드, 자동차, 이야기, 조수석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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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마이자(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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