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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특집 1: 소설×차 = #긴 꿈

2020년, 인류가 미래를 낙관하는 시대는 끝났다. 근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한국 영화의 미장센을 추출해 펼쳤다. 거기에 영화 속 키워드를 모티브로 쓴 짧은 소설을 덧붙였다

2020.09.16

 

#긴 꿈
MOVIE <반도>  KEYWORD 좀비

긴 꿈을 꾸었다. 어떤 꿈인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몸 마디마디에 온갖 질펀한 감각이 뒤엉켜 있다. 추깃물이 들러붙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짓누른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캄캄한 어둠, 일단 짚이는 대로 손을 뻗으니 머리 위로 낮은 천장이 있다. 천천히 천장을 밀자 경첩식으로 된 뚜껑이 끼익 하고 위로 열린다. 내가 있던 곳은 2000년대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용으로 사용하던 큰 쓰레기통이었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갑자기 극심한 두통이 몰려오며 그간의 기억이 필름처럼 스쳐간다.

 

 

2034년 서울, 갑자기 출몰한 좀비 떼에 정부가 코드 레드를 발령하며 대규모 피난이 이뤄졌다.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서울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정부 고위급 인사들도 죽거나 흩어졌고, 정부 기관은 공중분해됐다. 무정부 사태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곳곳에서 민간 부대가 창설됐다. 나는 민간 부대에서도 특수 임무를 위해 파견되는 게릴라 부대에 속해 있었다. 거기서 나는 G로 불렸다. 나와 나의 동료인 E, 그 외 10명 남짓의 부대원들은 남쪽 지역의 식량과 약품이 떨어져가는 문제를 해결하려, 이곳 서울의 폐쇄된 병동으로 숨어들었다. 약을 찾던 중 좀비의 기습을 받은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쓰레기통에 숨은 채 정신을 잃었다.

 

 

밖에 나오니 쓰레기통 속과 다르지 않은 새카만 어둠뿐이다. ‘생존자는 나뿐인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저 앞에 우리가 타고 온 2020년식 지프 글래디에이터가 반쯤 창문이 열린 채 서 있다. V6 3.6ℓ 가솔린 엔진을 달고 286마력을 내는 글래디에이터는 캠핑과 아웃도어를 즐기던 당시 사람들을 위한 여가용 픽업트럭이었다. 그러나 도로가 유명무실해진 지금, 식량과 필수재를 실어 나르고 언제든 좀비 떼를 피해 도주하는 데 오프로드의 최강자인 글래디에이터만 한 것이 없다. 각 민간 부대에서는 글래디에이터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각진 테일램프 주변으로 검붉은 손바닥 자국이 덕지덕지 찍혀 있다. 좀비들과 대원들이 벌인 격렬한 사투의 흔적일까. 시동을 걸려는 찰나,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트럭 뒤 적재함에 올라타 베드 커버 밑으로 몸을 숨겼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숨을 쉬는 것도 멈추고 몸을 낮췄다.

 

 

“여기 있네. 이 선생님, 선생님 차 여기 있어요!”
“아 뭐야! 이 양반 손바닥 자국 또 찍었네. 이번 주말 가족이랑 캠핑 가야 하는데. 김 간호사, 지현욱 환자는 찾았어?”
“아니, 아직이요. 아마 근처에 있을 거예요.”
“큰맘 먹고 뽑은 차인데 말이야. 하여튼 키만 없어졌다 하면 이렇게 아무 데나 세워져 있다니까? 문도 열어놓고!”
“그런데 이 선생님. 키 말고 사라진 게 또 있어요. 메스요…. 방금 응급 병동에서 메스가 사라졌다네요. 어쩌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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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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