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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특집 3: 소설×차 = #미끼

2020년, 인류가 미래를 낙관하는 시대는 끝났다. 근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한국 영화의 미장센을 추출해 펼쳤다. 거기에 영화 속 키워드를 모티브로 쓴 짧은 소설을 덧붙였다

2020.09.18

 

#미끼
MOVIE <인랑>  KEYWORD 스파이

2053년의 대한민국, 거듭된 이상기후와 전염병으로 1차 생산자나 소상공인 같은 서민 계층의 일부는 몰락했고, 사회 시스템도 붕괴됐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적인 시민 사회가 아니었다. 빈부 격차가 극에 달해 계급이 생겨났고 그중 가장 아래 계급은 ‘귀신’이라 불렸다. 귀신은 가장 높은 계급인 ‘노블’의 산업폐기물을 운반하고 처리해주는 대신 그들에게서 얻은 기계 부품과 고철 따위를 되팔아 연명했다. 귀신 계급에서도 두 부류가 있었다. 신분에 순응하는 자와 부정하는 자들이다. 후자의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내려온 계급제를 파괴하기 위해 비밀조직 ‘꿈꾸는 자’를 결성했다. ‘민’은 그 일원이었다. 그들은 노블과 귀신이 사는 지역을 잇는 유일한 길목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을 가로채고, 체제에 맞설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 대상은 고철 따위가 아니었다. 보다 돈이 되는 내연기관차였다. AI와 로봇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노블 계급의 CEO 중에는 신변을 위협받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경쟁사가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율주행차의 시스템을 조작해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내연기관차가 이들 사이에 거래됐고, 대부분이 온갖 희귀 부품과 부정행위의 거점인 귀신 지역에서 나왔다. 민과 동료는 오늘 내연기관차를 탈취하려 잠복 중이다. 잠깐, 저기 차가 들어오고 있다.

 

 

그 시각, ‘병’은 마세라티 기블리 그란스포트 리벨레 에디션을 타고 있었다. 먹물을 쏟은 듯 맑고 까만 차체가 완연히 까무룩한 밤에 잠겨 도로를 달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색상이라곤 붉은 시트와 새빨간 브레이크 캘리퍼가 전부였다.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단 기블리 리벨레 에디션은 2020년, 서울에 단 15대만 판매된 모델로 배기량 2979cc에 최고출력 354마력을 내며 달렸다. 병은 자신이 타고 있는 이 고혹적인 차가 훌륭한 미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병은 원래 귀신 지역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귀신 지역에서 유명한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거래하던 서 회장의 도움으로 중간 계급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병은 민과 어린 시절 친구였지만, 과거의 추억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병은 멸시받던 과거의 삶이 달갑지 않았다.

 

 

노블 중에서도 내연기관차를 소유할 만큼 고위 계층에게 ‘꿈꾸는 자’는 꽤나 골치 아픈 존재였다. 환경 법규가 까다로워지며 내연기관차는 점점 구하기 어려워졌고, 이를 강탈하는 범죄자들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오늘 밤 병은 옛 친구를 가장해 ‘꿈꾸는 자’들의 본진에 침투할 예정이다. 기블리의 트렁크에는 그들을 싹 다 날려버릴 위력의 폭탄이 실려 있었다. 성공만 한다면 병은 유명 인사들에게 인정받고 계급의 문턱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병은 ‘꿈꾸는 자’들을 빨리 만나길 기대했다. 귀신 지역이 끝나는 마지막 구간에 다다랐다. 그리고 저기, 민이 보인다.

 

 

 

 

모터트렌드, 자동차, 마세라티, 기블리 그란스포트 리벨레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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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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