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페이스리프트와 각자의 동상이몽

페이스리프트는 원래 차의 안팎 디자인을 바꾸고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를 살짝 더해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요즘 페이스리프트는 자동차 회사마다 그 범위가 큰 차이를 보인다. 격변기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2020.09.25

혼다 CR-V

 

올해는 유난히 새 모델이 많다. 덕분에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견고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잘 버티고 있다. 새 모델의 출시 계획이 줄줄이 뒤로 밀리며 당장 살아남는 데만 집중하는 다른 나라 자동차 제작사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이기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동료 컨설턴트들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상황을 물어올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다들 다시 출발할 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신모델이라는 총알이 가득한 탄창을 갖고 있을 거야. 기대해.”

 

한편, 세계의 많은 자동차 제작사들은 미래차에 갖고 있는 역량을 모두 쏟아붓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지켜온 자기 브랜드의 위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추격자 입장이던 후발주자들이 단숨에 최정상으로 발돋움하는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미래차 시장이 다른 업종의 강자들이 뛰어드는 전혀 새로운 판일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내연기관 모델을 등한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미래차에 투자하는 돈은 지금 모델의 판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지금의 모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인터넷, 특히 유튜브로 얻는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환경이나 안전 법규도 날이 갈수록 빡빡해져 어쨌든 기존 모델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큰 투자를 할 순 없다. 목돈이 미래차로 다 흘러가고 있어서다. 그래서 자동차 제작사들은 이렇게 하기로 했다. 첫째, 가능한 한 기존 플랫폼을 업그레이드해 오래 쓴다. 둘째, 기존 플랫폼이 너무 낡아 새로운 법규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신기술을 담아낼 수 없다면 새 플랫폼을 적용하되 최대한 많은 모델에 얹어 비용을 분산시킨다. 그 결과를 우리는 최근 공개된 모델들에서 보았다. 바로 ‘페이스리프트’다. 그런데 그 말이 포괄하는 변화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원래 페이스리프트는 글자 그대로 처진 얼굴만 당겨 젊음을 되찾는 성형수술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차의 얼굴을 살짝 바꿔 신선도를 유지하면 됐다. 최근 공개된 혼다 CR-V가 그 예다. 얼굴과 뒷모습이 살짝 바뀌었고 실내는 센터콘솔 보관함이 업데이트됐다. 기술적으로는 LED 헤드라이트와 애플 카플레이를 적용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이전에는 충분한 페이스리프트였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효과가 의심되는 아쉬운 수준이라는 평가가 짙다.

 

르노삼성 SM6

 

변화의 폭이 큰 페이스리프트는 르노삼성 SM6다. 엔진 라인업이 완전히 바뀌었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세대가 달라졌다. 그리고 하나가 더 바뀌었다. 뒤쪽 서스펜션이 업데이트된 것이다. 토션 빔 액슬 방식의 서스펜션 대응 방식이 달라졌다. 독립식 서스펜션을 흉내 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AM 링크를 걷어내고 서스펜션 부싱과 쇼크 업소버를 새롭게 설계하는 최적화의 정공법으로 회귀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SM6 페이스리프트는 숙성도와 함께 내실을 극대화한 성공적인 변화다.

 

다음 두 사례는 페이스리프트라고 부르기에는 변화의 폭이 큰 모델들이다. 첫 번째는 현대 그랜저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안팎 디자인이 완전히 새로워졌고 휠베이스까지 길어져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모델에 버금가는 편의와 주행 보조 장비들도 빠짐이 없다. 2.5 스마트스트림 엔진도 새것이다. 그러니까 소비자들이 보기엔 ‘풀 체인지’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플랫폼과 엔진이 그대로다. 집으로 치면 풀 리모델링과 증축을 동시에 한 케이스에 가깝다. 그랜저의 강력한 브랜드와 기존 플랫폼의 확장 가능성을 최대로 활용한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고 시장에서도 대성공이다. 자동차 제작사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모델 수명 연장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싼타페

 

싼타페 TM 페이스리프트는 전례가 없는 독특한 사례다. 외부 패널 모두와 센터콘솔을 제외한 인테리어 대부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신선도를 더해 일반적인 페이스리프트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실제로는 풀 체인지에 가깝게 진화했다. 신형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파워트레인과 인포테인먼트, 주행 보조 장비 등 모든 기술적 모듈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싼타페는 왜 애써 풀 체인지라는 사실을 숨겼을까? ‘아껴서 쓰자’는 것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특히 파워트레인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했지만 굳이 쏘렌토와 집안싸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고, 지금을 페이스리프트로 제한하면 앞으로 2~3년 뒤에 풀 체인지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 지금 사용한 3세대 플랫폼이 앞으로도 5~10년은 업그레이드를 통해 충분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마음은 급한데 집안 사정은 제각각이다.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그냥 하던 대로만 하는 이가 있고, 조금 더 하면서 실속을 차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새롭게 바꿨으면서도 일부러 감추는 이도 있다. 페이스리프트라는 말 하나가 이처럼 ‘동상이몽’이었던 적은 없었다. 격변기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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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모터트렌드>편집부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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