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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과 밴의 대결,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 vs. 기아 카니발

커다란 밴은 속을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럭셔리 리무진도, 구급차도 될 수 있다. 미니밴은 두루 편하게 쓸 수 있는 패밀리카라는 데 가치가 있다. 밴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 목적에 맞게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점이다

2020.12.11

 

오늘 시승할 미니밴과 LCV(경상용차)는 각각 미국과 유럽 시장에 특화된 모델이 아닌가 싶다. 미니밴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진화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LCV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상용차로, 점차 북미를 비롯한 세계로 시장을 넓히는 중이다. 미니밴의 시작은 1983년 데뷔한 닷지 캐러밴과 플리머스 보이저다. 머스탱 신화로 유명한 리 아이어코카의 두 번째 히트작이었다. 보디 온 프레임 구조였던 포드 이코노라인이나 쉐보레 익스프레스 등의 풀 사이즈 밴과 달리 미니밴은 승용차인 K-카 플랫폼을 썼다. 모노코크 보디를 얹어 주행감각이 승용차 같았고, 앞바퀴굴림으로 직진 안정성이 좋아 단숨에 인기를 모았다. 차체가 풀 사이즈 밴보다 작아 다루기 쉬운 데다 승용차보다 공간이 넉넉해 밴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키가 낮아 집 차고에 넣을 수 있고, 바닥이 낮아 여성이 타고 내리기도 수월했다.

 

 

미니밴은 크라이슬러가 시작했지만 지금은 토요타, 혼다, 그리고 기아차까지 뛰어들어 연간 50만대의 크지 않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중이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메이커들은 누가 한쪽에 달렸던 슬라이딩 도어를 양쪽에 달면 모든 차들이 따라 하고, 다른 업체가 바닥으로 들어가는 3열 시트를 내놓으면 모두가 따라 하는 식으로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있다. 브랜드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차를 만드는 기분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가 속한 유럽의 경상용차 시장은 피아트 두카토, 르노 마스터, 이베코 데일리, 포드 트랜짓, 폭스바겐 크래프터, 현대 쏠라티 등이 저들만의 세상을 이루었다. 엔진이 앞에 있어 안전하다는 세미보닛 타입의 장점과 적재함을 노출시키지 않는 유럽의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스프린터는 벤츠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리드하는 모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

유럽에서 ‘라지 밴’이라고도 불리는 스프린터는 여러 가지로 나온다. 무게가 3톤과 5톤으로 나뉘고 네 가지 형태, 네 가지 길이, 세 가지 높이, 네 가지 엔진, 그리고 네바퀴굴림 모델 등 다양하다. 심지어 앞뒤 바퀴 구동방식도 고를 수 있다.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미니버스 개념의 투어러와 창문이 없는 패널밴, 2열에 창문이 달린 크루밴, 카고 트럭 등이 있고, 캡 섀시만 사서 특장차를 만들 수도 있다.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 고객이 필요에 따라 보디를 고른다. 스프린터는 천장 높이가 1650~2740mm, 차 길이도 5261~7367mm까지 다양해 캠핑카, 앰뷸런스 등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벤츠뿐 아니라 이 시장의 업체는 모두 그렇다. 스프린터 같은 유럽형 경상용차의 판매 방식이다.

 

어느덧 25년의 역사를 지닌 스프린터의 현재 모델은 2018년 나온 3세대다. 독일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조립된다. 폭스바겐이 한때 자신의 이름으로 스프린터를 팔았고, 벤츠가 크라이슬러를 소유했던 시절엔 미국에서 스프린터를 닷지 램 밴으로 팔기도 했다. 오늘 시승차는 스프린터 중 가장 큰 ‘엑스트라 롱’ 모델로 길이가 7367mm에 이르는 519 CDI다. 519에서 5는 5톤급, 19는 190마력을 뜻한다. 국내에 수입되는 스프린터는 모두 V6 3.0ℓ OM642 디젤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를 얹었다. 다양한 무게의 차체를 이끄는데 하나의 엔진으로 모든 경우에 대응한다는 게 신기하다.

 

 

차의 성격상 벤츠에서 제공하는 장비는 대부분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손으로 잡아당기는 파킹 브레이크에 단순한 크루즈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 등이 달렸다.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은 5.5톤의 상용차에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고 한다. 간단한 차지만 마무리가 깔끔하다. 시승차는 판스프링으로 된 뒤 서스펜션에 바퀴가 양쪽으로 달렸지만 벤츠가 제공하는 MBUX 멀티미디어 시스템과 에어서스펜션, 운전자 보조장비(ADAS) 등 첨단 옵션을 담은 모델도 있다. 스프린터는 기본 틀만 벤츠가 국내로 들여오는데 7군데 정도의 특장업체가 각자의 개성과 기술력으로 차체를 완성한 후 판매한다.

 

 

오늘 시승차는 다인자동차에서 만든 9인승 럭셔리 투어러다. 다인자동차는 오랜 기간 리무진, 구급차 등 특장차를 만들어온 세화자동차의 파트너다. 미니버스 콘셉트의 519 CDI는 유럽풍의 세련된 분위기로 다듬었다. 나파 가죽과 알칸타라로 마감한 실내는 스타크래프트 스타일의 투박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섀시 위 바닥 구조물에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등 가벼운 차를 만드는 데 신경 썼다.

 

 

운전석 뒤로 놓인 일곱 개의 의자는 단순히 2열뿐만 아니라 앉는 자리마다 고급스럽다. 모든 승객이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함께 시승한 카니발도 같은 9인승이지만 비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47인치 TV가 운전석과 격벽을 만들었는데, 그 아래 불투명과 투명을 오가는 변신 유리로 운전석과 소통할 수 있다(버튼으로 이 유리창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장인의 손길로 다듬은 끝마무리에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한다. 시승차의 값은 2억 원 정도다. 다인자동차 스프린터의 특징은 AMG 스타일의 앞모습에 있다. AMG 고유의 수직 그릴과 범퍼 디자인이 벤츠 엠블럼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높이 앉은 만큼 운전석은 시야가 탁 트였다. 이렇게 커다란 차에 작은 칼럼식 시프트레버가 앙증맞다. 시승차는 앞시트 사이에 커다란 냉장고를 뒀다. 고객의 옵션 품목이라는데 쓸모가 커 보인다.

 

 

한참 미끄러진 후에 출발하는 전형적인 토크컨버터 변속기 감각의 차는 한없이 부드럽다. 느긋한 움직임을 보이는 차에서 속도 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냥 부드럽고 포근한 차가 좋기만 하다. 사람이 많이 탈수록 승차감은 더 부드러워진다. 시속 80~100km로 달리는 순간이 가장 편하다. 커다란 차를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로 붙여 달린다. 연비는 리터당 7km 안팎이다. 길이가 7m가 넘는 차라 처음엔 코너에서 크게 돌아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 크기에 부담이 없어져 큰 차를 작은 차 몰 듯했다. 주차 문제 때문에라도 이런 차는 운전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 차로 한다면 스프린터를 캠핑카로 몰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스프린터에서 가장 큰 가치는 메르세데스 벤츠 엠블럼이 아닌가 한다. 고객에게 대접받는 인상을 주는 데는 세 꼭지 별의 위력을 당할 자가 없다. 스프린터의 경쟁력은 벤츠라는 이름에 있다. 그래서인가, 스프린터에 벤츠 문양이 넘쳐난다.

 

 


 

 

기아 카니발

스프린터에서 옮겨 타니 카니발이 너무도 파워풀하다. 2.2ℓ 디젤 엔진을 얹은 미니밴인데 앞바퀴가 휠 스핀을 하면서 출발하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스프린터를 탄 탓인가, 유난히 운전석이 낮게 느껴진다. 다른 미니밴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스포티한 느낌 속에 승용차 감각이 진하다. 세련된 디자인도 SUV 감각을 더했다. 운전석에서 대시보드 디자인을 비롯해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든다. 고급 세단과 다름없이 화려하고, 다양한 수납공간 등 미니밴의 풍부한 면모가 돋보인다. 첨단 모빌리티 기술을 가득 담아 ADAS 등 안전장비도 넘쳐난다. 스프린터에 비교하니 카니발의 가치가 커 보인다. 다만 시트가 조금 작은 듯 넓적다리 받침이 모자라다. 하지만 큰 불만은 아니다.

 

 

카니발을 살펴보다 문득 토요타 시에나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콘솔을 크게 하고 변속 다이얼을 그 위로 놓았다. 미니밴이 아닌 승용차처럼 만들어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오가는 워크스루가 불가능하다(상당한 재미였지만 안전상 권할 일은 아니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에 만족하며, 카림 하비브가 이끄는 요즘 기아 디자인에 신뢰를 보낸다. 미니밴 시장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우리에겐 무척 고마운 일이다.

 

 

반면 6년 만의 모델 체인지인데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 조금 아쉽다. 앞서 말했지만 남들이 하지 못한 기능을 담아야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 그런데 카니발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이번에 네바퀴굴림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내놓아야 했다. 토요타 시에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해 연비가 리터당 15~17km에 이르고 혼다는 ‘차박’이 유행인 요즘, 2열 의자를 떼어낼 수 있다. 앞서지는 못해도 경쟁차에 부족한 장비로는 제대로 대응이 어렵다.

 

 

미니밴은 3열, 7~8인승이 정석인데 카니발은 4열의 9인승과 11인승까지 내놓는다. 국내에서 버스전용차로를 타기 위한 편법이다. 시승차인 9인승은 도저히 쓸 수 없는 4열 시트를 바닥에 집어넣고 나면 6인승이 된다. 3열은 공간 확보를 위해 쿠션 뒤쪽을 주저앉혔다. 인체공학에 근거한 디자인이 아니라 오로지 버스전용차로를 달린다는 목적뿐이다. 그 결과 9인승 미니밴은 넘볼 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수입 미니밴은 비정상적인 차가 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국산 미니밴만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현실은 너무 창피한 일이다. 지난 10월 카니발은 1만2000대를 팔아 국내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베스트셀러 그랜저보다 많이 팔았다. 더 이상 억지스러운 법으로 국산차를 보호할 명분은 사라졌다. 익을 대로 익은 카니발 디자인에 만족하면서도 고쳐야할 것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_박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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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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