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미술관을 산책하다

미술관은 혼자 가는 게 제일이다. 누구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 오롯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까

2020.09.22

 

둘 혹은 여럿보다 혼자가 좋을 때가 있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사람 북적이는 한여름 휴가철에서 살짝 비켜난 9월은 나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은 달이다. 이달 우리는 혼자 떠나는 자동차 여행을 제안한다. 그곳에는 호젓하고 짜릿하며 맛있는 풍경이 녹아 있다.

 

10년도 훨씬 전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러 혼자 차를 몰고 포항에 갔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우동 한 그릇을 먹은 걸 빼면 꼬박 5시간을 운전했던 것 같다. 그렇게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차를 세우고 커다란 손 조형물을 향해 무작정 걸어갔다. 주변을 살피니 혼자 온 건 나뿐이었다. 1시간 넘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바닷가를 서성거렸다. 하지만 끝내 그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래. 그만하자.’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차를 돌려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 길고 지루했다. 내 앞에 펼쳐진 고속도로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목이며 허리는 왜 또 그리 아프고 결린지. 그날 결심했다. 다신 혼자 자동차로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아우디 Q3

 

그런 날 혼자 떠나게 한 건 인터넷을 뒤지다 본 한 장의 사진이었다. 독특한 지붕을 이고 앉은 하얀 건물과 새파란 하늘, 그리고 그 앞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대전에 있는 이응노 미술관이다. 난 무작정 대전을 향해 차를 몰고 달려갔다. 이번 여행길엔 아우디 Q3가 동행했다. 요즘 다음 차를 고민하는 중이라 장거리를 달리기에 Q3가 어떨지 궁금했고, 디젤 모델이라 기름값 걱정을 덜 수 있겠단 생각에서다. 내가 본 사진에서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달리면 좋았겠지만 한 달 넘게 한반도에 비를 뿌린 먹구름은 이날도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그리고 미술관에 도착할 즈음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아닌 게 어디야!’ 그렇게 위안하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응노 미술관에선 지금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디지털로 옮겨놓은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응노 미술관은 2007년 대전에 문을 열었다.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 설계했다. 하얀 콘크리트 건물은 반듯한 콘크리트 조각을 얼기설기 엮은 듯한 독특한 지붕을 얹었는데 건축가는 이응노 화백의 작품 ‘수(壽)’의 문자 추상을 지붕에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다고 했다. 이응노는 문자와 기호, 드로잉을 결합해 새로운 추상 양식을 발전시킨 화가로 유명하다. 주로 종이에 먹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전통적인 한국화가 아닌 추상화라는 것이 독특하다. 캔버스에 다양한 재료로 콜라주 작업도 했는데 천 위에 한지로 작업한 콜라주 작품 ‘구성’은 거친 질감과 독특한 형태가 그대로 묻어난다.

 

전시실 사이에 있는 초록 놀이터에선 식물과 어우러진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지금 이응노 미술관에선 <이응노와 구글 아트 앤 컬처>가 진행 중이다.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커다란 스크린에 옮겨놔 1전시실에 들어서면 세 면을 둘러싼 스크린에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작품이 클로즈업됐다가 다시 커지고 움직이고….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전시실 한쪽에 놓인 빈 백(Bean Bag)에 눕듯이 앉아 작품을 보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도 오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전시실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됐다. 그리고 난 조금씩 작품 속으로 녹아들었다.

 

 

사실 미술관은 혼자 가는 게 제일 좋다. 누구와 함께 가면 내 마음대로 그림을 실컷 볼 수 없고, 어설픈 감상평도 나눠야 하니까. 요즘 이응노 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1시간에 스무 명만 입장할 수 있어 북적이지 않고 작품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입장료는 단돈 500원. 껌 한 통 값도 안 되는 값에 귀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반갑다.

 

 

천천히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오후 2 시가 훌쩍 넘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요즘 대전에서 ‘핫’하다는 소제동으로 차를 돌렸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 가득했던 소제동은 최근 레트로 트렌드에 맞춰 독특한 분위기로 새 단장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치앙마이 방콕도 그중 하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태국 음식점인데 오래된 창고 건물을 개조해 태국 분위기 물씬 나는 음식점으로 꾸몄다.

 

 

새장처럼 생긴 커다란 조명과 나무로 된 테이블, 물에 떠 있는 것 같은 하얀 구조물과 새하얀 천을 드리운 천장이 그냥 태국이다. 대전에서 태국이라니. 안 그래도 요즘 해외여행을 못 가 우울한 참이었는데 오랜만에 여행 기분이 제대로 느껴진다. 소제동에는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가 많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좁고 오래된 골목을 걷는 재미도 좋다. 아, 근처에 주차장이 없으니 차는 대전역 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낫다. 대전역에서 소제동까진 걸어서 5분 거리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자동차 여행은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았고, 걱정만큼 운전이 고되지도 않았다. 날이 좋은 날 다시 한번 가야겠다. 그땐 이응노 미술관 앞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며 여유롭게 둘러봐야지. 대전은 혼자 떠나기에 괜찮은 여행지다.

글_서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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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서인수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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