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미진과 둘이서

밸런타인데이, 비글 여자친구와 집에서, 단둘이

2021.02.10

로브와 브라톱, 팬티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

 

2021년과 함께 불현듯 찾아온 폭설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접지력을 잃은 차들은 차선을 넘나들었고, 낮은 둔덕에도 미끄러지며 연신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지가 언젠데, 깜빡이를 켠 차들이 사슬처럼 뒤엉킨 하얀 사거리는 밤새 트리처럼 반짝거렸다. 멀리서 볼 땐 예뻐도 가까이선 참극이었던 그날 이후, 가까스로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비췄지만 골목 안의 눈까지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때 눈이었던 그것은 이제 더렵혀지고 심술맞게 얼어붙어 골목 사이사이에 때처럼 끼어 있었다. 모두가 바라던 눈은 어느덧 볼썽사나운 존재가 됐다. 이제 겨울이 끝날 때가 됐다는 말이다.

 

우리가 레이싱 모델 김미진을 만난 것은 폭설의 밤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날 아침엔 이번 주부터 기온이 오를 것이란 뉴스가 흘러나왔다. 촬영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스튜디오가 있는 골목으로 하얀 세단이 간신히 굴러 들어왔다. 새하얀 차체와 휠에는 도로 곳곳에 남아있는 눈 찌꺼기의 흔적이 역력했다. 더럽혀진 차와는 사뭇 다른 맑은 웃음을 가진 김미진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아침에 들었던 희망적인 기상예보를 떠올리는 웃음이었다.

 

호피 블라우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 체크 치마는 VVV.

 

그녀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스튜디오의 공기가 아까보다 좀 더 따뜻해졌다. 기분 탓일 수도, 그녀의 얇은 의상을 배려한 스태프가 히터를 더 세게 튼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지긋지긋한 겨울은 곧 끝난다. 마침 겨울이 끝나는 즈음엔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이번 화보의 콘셉트로 잡았다. ‘밸런타인데이, 집에서 비글 여자친구와 보내는 하루.’ 여기서 김미진은 비글 여자친구가 되기로 했다.

 

“시안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까지 안 해본 느낌이라 잘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대돼요.”

 

“집에 있는 설정이니까 가벼운 옷차림으로 누워서 과자를 먹는다거나, 옷장에서 유행 지난 옷을 꺼내 입어본다거나. 집에서 남자친구와 논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편안하게 촬영했으면 좋겠어요. 먼저 로브부터 입어볼까요?”

 

애써 연기를 하지 않는 고도의 연기가 필요한 콘셉트. 더구나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홀로 가벼운 옷차림에 어색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든 것도 잠시, 하늘하늘한 로브를 걸친 그녀는 터덜터덜 카메라 앞에 서더니 막힘없이 포즈를 취했다. 몸의 마디마디에 특정 각도를 주는 틀에 박힌 포즈가 아니었다. 그녀는 긴 팔과 다리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비글 여자친구로 분했다. 베이지색 톤의 배경과 하얀 피부, 몽환적이면서도 짓궂은 표정에 우리는 ‘예쁘다’를 가장 많이 말했지만 그다음으로 많이 나온 말은 ‘멋지다’였다. 그녀는 진정 프로다웠다. 그녀는 낯선 상황에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레이싱 모델을 하게 됐어요?”

 

“원래 미술을 전공했어요. 일본에서는 전공을 살린 일을 했는데 지진 문제로 한국에 돌아와 친구의 권유로 모델 일을 하게 됐어요. 아, 레이싱 모델만 한 건 아니에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DJ로 활동하기도 하고 순수회화,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 같은 미술 관련 일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최근엔 주식 방송에 리포터로 나와요.”

 

크롭톱은 VVV, 팬티는 스타일리스트 소장,

 

안정적인 직장도 다녀봤지만 맞지 않았다. 그때그때 끌리는 것에 집중해 모든 것을 바치는 편이 나았다. 김미진은 즉흥적이기도,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기도 했다. 뭔가에 끌리는 것은 다분히 충동적이지만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만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는 한 달 전부터 관리에 들어가요. 식단도 철저히 조절하고요. 오늘 촬영도 안 해본 콘셉트라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느낌을 연습했어요.”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마음속으로 이미 수십 번 이곳에 오갔다고 했다. 그녀의 연습과 노력으로 이날 촬영에서는 시행착오 없이 시작부터 A컷이 터져 나왔다. 과자와 초콜릿 먹는 시늉을 하는 컷에서 그녀는 실제로 준비된 소품을 야무지게 먹어가며 촬영에 임했다.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는 우리의 만류에도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실제 ‘비글미’를 뽐냈다. 현장이 좀 더 편안해지고부터는 더욱 적극적이고 과감한 포즈로 끼를 발산하기도 했다.

 

콘셉트를 표현하는 모델이 잘하니까 스태프도 덩달아 신이 났다. 스타일리스트의 캐리어에서 욕심을 잔뜩 부린 소품들이 나왔다. 호피 무늬 블라우스에 젖소 무늬 카우보이 모자. 김미진은 그마저도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덕분에 촬영은 전례 없이 이른 시간에 끝났다. 포토그래퍼는 메모리 카드를 이렇게 아낀 것이 처음이라며 흐뭇해했다. 김미진은 시뮬레이션한 보람이 있다며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촬영이 끝나고, 입고 온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도수가 높은 안경도 다시 썼다.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이름처럼 동네 동생, 옆집 누나 같은 친숙한 모습이다.

 

“오늘 콘셉트는 집에서 남자친구랑 보내는 거였는데, 이번 밸런타인데이에는 뭐 할 예정이에요?”

 

“글쎄요, 그때 라운지나 바가 오픈하면 거기서 음악을 틀고, 아니면 집에서 음악 틀고 혼술이나 하겠죠?(웃음)” 

 

김미진은 혼자 취하는 기분을 즐긴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술은 맥주다.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촬영 현장을 떠나는 그녀는 촬영장 스태프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누며 다음을 기약했다. 끝까지 맑고 유연한 퇴장이다. 

스타일링_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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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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