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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코닉 자동차들

특정 사회 또는 대중문화의 상징이 된 아이코닉한 자동차들

2021.05.05

(왼쪽부터) 지프 랭글러, 들로리안 DMC-12,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 캠퍼 밴

 

맥가이버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빠빠빠빠빠빠빠밤- 빠빠밤! TV 화면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세를 가다듬었다. 오늘은 맥가이버가 어떤 사건을 해결할까? 어릴 때 맥가이버는 현실적인 영웅이었다. 히맨처럼 우주의 왕자도, 공상 과학기술의 수혜를 입은 600만 불의 사나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래 과학기술의 집합체를 소유하지도 않았다.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도, 마하로 비행하는 에어울프도 없었다. 단지 위기 때마다 돌파구를 찾는 비상한 과학 지식과 손재주가 있었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현실에 발 닿아 있는 영웅이라 열광했다. 동네 철물점 아저씨처럼 친근했달까.

 

맥가이버 칼로 통하는 멀티툴 하나로 전 세계를 구하는 남자. 맥가이버 칼과 더불어 그를 상징하는 물건은 지프 랭글러였다. 당시 ‘짚차’로 불리던 그 지프 랭글러. 사각형 헤드램프로 유명한 YJ 랭글러. 틀에서 벗어난 다재다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와 랭글러는 잘 어울렸다. 제임스 본드의 본드카와는 질감이 달랐다. 비밀 무기를 장착하지 않아도 그 외관과 성격이 주인공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맥가이버가 맥가이버답게 타는 차. 이때 처음 인지했다. 자동차가 한 인물의 특징을 드러내는 소품 역할도 하는구나.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제 지프 랭글러를 맥가이버 자동차로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프 랭글러는 맥가이버처럼 하나의 상징으로 군림한다. 흙먼지 뒤집어쓰면서 위기든 모험이든 헤쳐 나갈 수 있는 자동차. 맥가이버는 잊혔지만 지프 랭글러의 이미지는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지프 랭글러를 맥가이버의 자동차로만 기억하진 않는다. 지프 랭글러는 원래 전장에서 태어나 험로를 누벼왔다. 맥가이버를 통해 대중문화 속 아이콘으로도 활약한 셈이다.

 

맥가이버에 등장한 1세대 랭글러 YJ

 

그럼에도 맥가이버가 남긴 잔상은 은근히 진하다.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요소로서 자동차의 재발견. 특별한 자동차로 지프 랭글러를 바라보게 한다. 맥가이버가 될 리 없지만 맥가이버를 보며 지프 랭글러를 꿈꾸던 것처럼. 지프 랭글러는 이제 모험이라는 이미지로 통한다. 꼭 험로에 안 가더라도 모험을 상상하는 장치. 하나의 아이콘으로 유혹한다. 지프 랭글러가 여전히 역사를 이어나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그럴 수 있는 계기이자 동기로서 맥가이버는 영향력을 미쳤다. 지프 랭글러를 패션카의 영역으로도 확장시킨 셈이다.

 

모험은 못 하더라도 모험을 꿈꿀 수는 있다. 포장도로만 다니더라도 지프 랭글러를 타는 행위로 그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 밀리터리룩이나 사파리룩으로 취향을 표현하는 방식과 같다. 맥가이버가 멋있어서 맥가이버 차를 동경하던 마음으로, 이제 맥가이버 대신 지프 랭글러 타는 남자를 꿈꾼다. 맥가이버는 한 모델을 동경하는 대상으로 치환했다. 지프 랭글러를 군용차가 아닌 아이콘으로 바라보게 했달까. 그 마음은, 이제 빛깔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여전하다. 동경하는 대상으로서, 오늘도 지프 랭글러를 품게 한다.

글_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들로리안 DMC-12

 

타임머신의 아이콘

나는 아직 드로이안이 익숙한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들로리안이라고 쓰는 게 맞다고 한다. 내 언어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현재로 돌아오고 싶을 때면, 들로리안 DMC-12를 상상한다. 내게 들로리안 DMC-12는 타임머신이다. 과거로 가고 미래로도 가는 자동차. 맞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백 투 더 퓨처>를 몇 번 보았는지 세어봤는데, 열한 번에서 포기했다. 그보다 더 본 것 같다. 영화에서 마틴은 들로리안 DMC-12를 처음 보고 감탄하는데, 대본에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표정’이라고 써 있을 거다. 내가 처음 들로리안 DMC-12를 봤을 때 그랬으니까.

 

외형은 1980년대 퓨처리즘의 전형이다. 페인트 도장 없이 소재를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이 첨단 기술로 여겨졌고, 그래서 스테인리스 스틸 질감을 드러내면 미래적으로 보였다. 도어는 또 어떤가. 갈매기 날개 모양으로 열리는 걸윙 도어는 ‘미래가 널 환영해’라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날아갈 모양새다. 물론 퍼득퍼득거리는 촐싹맞은 날갯짓일 테지만. 들로리안 DMC-12는 공개 당시 파격적인 형태로 주목받았다. ‘직선이 강조된 매스를 선보여온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갈 데까지 갔구나.’ 당시 포털사이트가 있었다면 이런 댓글이 달렸을 거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미래로 가야 한다. 타임머신은 미지를 탐험해야 하니까.

 

미래에 비트코인이 얼마까지 가나 보려고 냅다 운전석에 앉으면, 이게 웬걸 들로리안 DMC-12는 과거로 안내해준다. 문과 출신인 나에게 원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스포츠카는 다루기 너무 어렵다. 이것저것 누르다 보면 과거로 가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서도 퓨처리즘의 아이콘 들로리안 DMC-12는 30년 전으로 향한다. 88마일(시속 140km)로 달려야만 타임머신이 작동하는데, 주인공 마틴 역시 이공계는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열한 번 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공계는 아니다.

 

어쨌든 들로리안 DMC-12는 영원한 타임머신의 아이콘이다. 영화 속 미래보다 더 멀리 와버린 2021년에서 본 들로리안 DMC-12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타임머신이고,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미래를 꿈꾸게 하는 타임머신이었다. 물론 들로리안 DMC-12가 타임머신 아이콘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직선의 달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이 크다.

글_조진혁(<아레나> 피처 디렉터)

 

1950년에 나온 폭스바겐 타입 2, 마이크로버스, 콤비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히피의 정신이 녹아든 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영화 <미나리>의 모니카(한예리)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이 마련한 벌판 한가운데 트레일러를 보고 경악한다. 그 공간은 토네이도 속 뿌리내릴 수 없는 잡초의 삶처럼 위태롭다. 반면 한국에서 뒤늦게 합류한 순자(윤여정)는 이렇게 말한다. “바퀴 달린 집? 재미있기만 하다 얘!”

 

실제로 바퀴 달린 집에 살던 이들도 있었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 히피들은 밴이나 미니버스 안에서 생활하곤 했는데, 이때 인기를 끈 차종이 바로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다. 차박은 기본이요, 식사와 휴식, 서핑과 캠핑이 이루어지는 공간. 공간의 변화는 가치의 전복을 만들어낸다. 정착은 소유를 뜻하지만 이동은 공유를 부른다. 오늘 내 땅이 내일은 네 땅이다. 맘 맞으면 뭉치고, 아니면 흩어지는 노마드적 가치랄까.

 

사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이 히피 문화일 것이다. 뭐든지 빨리빨리 잠 안 자고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니까. 느긋느긋 될 대로 되라는 문화가 자리 잡을 리 없다. 친척 어르신 중에 히피 성향이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려보라. 아마 조부모든 친척 어르신이든 “그놈 자식은 아직도 그러고 산다더냐?”라며 역정을 내는 모습이 따라올 것이다.

 

그런 한반도에도 히피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일까. 차박이 유행하고 트레일러와 카라반을 구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현대차 디자인센터 이상엽 전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건물은 한 자리에 있지만, 자동차는 움직입니다. 5평짜리 차 안에서 일하고 커피 마시고, 그렇게 돌아다니다 강남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취침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이건 히피다.

 

미래 자동차의 핵심은 두 가지다. 자율주행과 전기차. 자율주행은 차 내부를 거실이나 라운지로 바꿔놓고, 전기차는 차 속 가전제품에 전원을 공급한다. 때맞춰 폭스바겐에서도 마이크로버스를 전기차로 재탄생시키겠다고 발표했다. I.D. 버즈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로 2022년에 유럽과 미국, 중국에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과거 모델과 달리 평탄화도 잘될 것이고 주행거리(480km)도 짱짱하다. 몇 년 후에는 I.D. 버즈를 타고 협재와 서귀포를 누비는 코리안 히피들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바퀴 달린 집은 재미있기만 하니까.

글_원호연(<에비뉴엘> 피처 에디터)

 

(왼쪽부터)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롤스로이스 팬텀

 

MTV에 스타보다 많이 등장한 차

얼마 전 한 역사 교사가 학생들에게 낸 과제가 이슈가 됐다. ‘만약 한국 사회에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 해당될까요?’ 질문 아래에는 카스트제의 네 개 계급과 맨 아래의 불가촉천민, 답을 작성할 수 있는 빈칸이 있었다. 학부모들은 “직업은 다 값진 것인데 불가촉천민을 적으라니. 특정 직업의 부모를 둔 학생이 상처받는다”며 분노했다. 나는 불가촉천민으로 곧장 N번방과 세 모녀 사건의 범죄자를 떠올렸다. 질문 어디에도 직업을 쓰란 말은 없었으니까.

 

‘계급’에서 ‘직업’을 도출해내는 건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이데올로기다. 직업이 곧 계급이란 이념은 차라리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태생적인 귀천은 없다는 말이 되니까. 직업이 계급이라면 연예인은 문화귀족이다. 이들은 계급의 장벽을 모래알처럼 통과한다. 천장을 부수기도 쉽지만 단숨에 불가촉천민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게 이 부류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상 최다 문화귀족이 포진한 곳은 LA, 할리우드다. 나에게 LA란 곧 2000년대의 동의어다. MTV 같은 위성방송의 전파를 타고 팝이 전성하던 그 시절, 강당에서 GOD ‘촛불하나’에 맞춰 수화 공연을 하던 아이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P.디디의 낯 뜨거운 뮤직비디오를 접하고 순수를 잃던 시절이다. MTV에서 방영한 애슈턴 커처의 <PUNK’D>, 패리스 힐턴의 <SIMPLE MY LIFE> 같은 시리즈도 쓰나미급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0년대 리얼리티 쇼에 등장한 할리우드의 영앤리치들이 탔던 차는 뻔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다. 팝 스타와 힙합 스타, 그 속에 들고 싶은 할리우드의 플레이보이도 에스컬레이드를 따라 탔다.

 

2001년 출시한 캐딜락 2세대 에스컬레이드. 1세대는 GMC 유콘에서 엠블럼만 바꾼 수준이었고, 2세대부터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나왔다.

 

에스컬레이드는 낮과 밤이 달랐다. 미국산 흑우 같은 우직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낮에는 ‘캘~리포니아 러업~’으로 시작하는 투팍의 음악처럼 느긋하고 낙천적인 바이브가 깔렸다. 밤에는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중요 부위를 간신히 가린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내리거나 올라탔다. 칠흑 같은 차체의 문이 닫히는 순간 그들의 세계에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었다. 까끌하고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에스컬레이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럭셔리 SUV다. 할리우드의 주요 인사들에게 쾌적한 이동은 필수다. 그들 곁에는 한쪽 어깨가 바위만 한 ‘브로’들이 항시 대기한다. 에스컬레이드의 실내는 그들을 가득 싣고도 산소가 부족하지 않을 만한 널찍한 공간을 갖췄다. 위용 넘치는 생김새는 하차감도 그만이다. 캐딜락이 쌓아온 레거시도 힘을 보탠다. 1950년대 테일핀을 단 캐딜락 엘도라도는 당시 신흥계급으로 떠오른 문화귀족의 상징이었다.

 

캐딜락 원은 미국 대통령의 전용 의전차이며, 캐딜락 시리즈 62는 마약으로 돈을 번 이민자 ‘토니 몬타나’의 차이기도 했다. 이보다 ‘아메리칸드림’의 본성을 꿰뚫을 수 있을까? 그러니 왜 그들이 에스컬레이드를 탔을까란 물음은 구태의연하다. 더구나 캐딜락 배지를 단 특대형 럭셔리 SUV는 1998년 당시 처음 출시된 신상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에스컬레이드는 할리우드 영앤리치를 실어 날랐다. 2000년대 아메리칸드림의 표본은 에스컬레이드였다.

글_장은지

 

롤스로이스 4세대 팬텀을 타고 퍼레이드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왕실이 사랑한 슈퍼럭셔리 세단

1952년 2월 5일. 케냐를 방문하고 있던 젊은 부부는 애버데어 국립공원 안에 있는 트리톱스 호텔에서 밤을 보내고, 이튿날 원래 숙소였던 새가나 로지로 돌아왔다. 이때 전해진 부인 아버지의 부고. 이는 분명 비보지만, 윈저 왕조의 새로운 군주가 즉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25세의 젊은 부인은 에든버러 공작 부인,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와 함께한 리무진은 롤스로이스의 팬텀이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롤스로이스는 영국 왕실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인증 업체(Royal Warrant)가 아니었다.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했던 4세대 팬텀은 애초부터 로열 워런트를 받기 위해 기획되고 설계됐다. 1950년 7월, 당시 공주 신분이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 전달된 첫 번째 4세대 팬텀은 그녀의 남편인 필립 공이 직접 운전하기를 원했기에 그의 신체에 맞춰 운전석을 제작했다. 에든버러 공작인 필립 공의 작위에 맞춰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사자 조각이 환희의 여신상 자리를 대신했다. 이후 롤스로이스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팬텀 역시 영국 왕실로 전달됐다.

 

4세대 팬텀은 딱 18대만 만들어졌다. 이 중 5대가 영국 왕실로 향했고, 나머지도 이란의 팔라비 왕가와 이라크의 하심 왕가 등 국가 원수급의 최고위층에게만 판매됐다. 5세대와 6세대 팬텀 역시 영국 왕실에 도입됐다. 팬텀은 엘리자베스 2세 즉위 이후 50년간 영국 왕실의 공식 의전차 자리를 지켰다. 2002년 엘리자베스 여왕 재위 50주년을 맞아 벤틀리가 특별하게 만든 스테이트 리무진을 제공한 뒤에도 팬텀은 귀한 자리마다 다시 등장했다. 2018년 5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에 함께한 차도 20대의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했던 4세대 팬텀이었다.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은 팬텀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왕가의 차’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때, ‘고객이 차를 고르는 게 아니라 롤스로이스가 고객을 선택한다’는 뜬소문이 돌았던 것만 봐도 롤스로이스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자존심을 인정받는 브랜드가 과연 얼마나 될까?

 

롤스로이스는 1998년 독일 기업인 BMW 산하에 편입되며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크루 공장의 전통 또한 굿우드로 이전하게 됐다. 하지만 롤스로이스는 여전히 영국을 대표하는 슈퍼럭셔리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팬텀은 특별한 소수를 위한 최상위 모델로 사람들의 인식에 각인돼 있다. 기저에는 왕실의 차란 깊은 인상이 있다.

 

현대 국가에서도 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더 이상 군림하지 않는다. 다만 왕가에 대한 환상은 대중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에서 해방되더라도 팬텀의 지위는 계속해서 세습될 거다. 1990년 이후 13년 동안 명맥이 끊어졌던 팬텀이었지만 밀레니엄에 재등장하고도 명성에 대한 공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왕실의 사랑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글_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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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장은지PHOTO : Heyhoney(일러스트레이션),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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