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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자동차를 가려라?

베테랑 자동차 저널리스트를 가장 실망시켰던 자동차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2022.07.12

자동차 기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당시 함께 일했던 편집장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차들은 정말 괜찮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다 고물 박스야.” 그 무렵 또 다른 선배 기자는 이와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나는 모든 자동차가 대단했으면 좋겠어. 만약 그렇지 않으면 실망스럽거든.”
 
실용주의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제조사들이 원래 의도했던 성능과 기능을 과연 새로운 승용차나 픽업, SUV가 제대로 보여주는지를 항상 시승과 평가에 반영해왔다. 지난 35년간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자동차 몇몇을 소개한다.
 
 
폰티액 트랜스 앰 GTA

 
1989년 중반 어느 화창한 오후에 앤젤레스 크레스트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폰티액 파이어버드 트랜스 앰 GTA의 브레이크에서 불이 났다. 알고 보니 겉만 번지르르한 차였다. 그 무렵 나는 HSV 홀든 코모도어 같은 호주산 머슬카에서 경험했던 유럽 수준의 브레이킹과 스티어링, 코너링 성능에 익숙해 있었다.

GTA는 너무 엉성하고 불안정해서 주행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혹은 직선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덜컹거렸다. 승차감도 최악이었다. 토션도 너무 뻣뻣하고 티톱 루프와 거대한 리어 해치도 서로 번갈아 가며 덜덜거리거나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차를 지탱하기 위해 애를 쓰면 쇼크 업소버가 과열되고, 돌처럼 단단한 굳이어 타이어는 이 유럽 스타일 알루미늄 덩어리를 간신히 도로에서 달리게 해주었다.

오리지널 폰티액 파이어버드는 소위 ‘포니카’의 선구자로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한 새롭고 독창적인 미국식 퍼포먼스카였다. 하지만 3세대 트랜스 앰 GTA는 실패한 패러디였을 뿐이다.
 
 
라다 사마라
 

이 차는 평가하기 너무 쉽다. 아마 라다 사마라를 한 번이라도 운전해본 자동차 기자라면 무조건 최악의 자동차 리스트에 올릴 것이다. 1984년 후반 VAZ-2018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서 출시한 이 차는, 폭스바겐 골프 같은 현대식 해치백을 만들려는 옛 소련의 시도에서 비롯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포르쉐의 4기통 1.3ℓ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를 연결한 앞바퀴굴림 모델이다. 앞 서스펜션은 스트럿과 코일스프링, 뒤 서스펜션은 토션빔을 탑재했다. 당시로서는 나름 괜찮았던 랙 앤피니언 스티어링도 갖췄다. 하지만 결과는 소련의 망작이었다.

1988년 후반 내가 호주에서 테스트한 사마라는 느리고 소음이 심할 뿐 아니라 대충 만든 느낌이었다. 기어 시프트도 뻣뻣하고 스티어링은 너무 무거웠으며 브레이크는 흐물거렸다. 외부 패널 틈새도 많이 벌어져 있었다. 내부도 암울했는데, 플라스틱 소재를 덕지덕지 배치해 일체성이 없었고 색감과 텍스처도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이 차는 소련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주선, 핵미사일, 전투 제트기는 잘도 만들면서 폭스바겐 골프는 따라 할 수 없다는 현실 말이다.
 
 
홀덴 피아자 터보
 

이스즈가 만들었지만 호주에서는 1987년 홀덴 브랜드로 출시했다. 미국에서 이스즈 임펄스로 출시한 이 피아자 쿠페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멋진 콘셉트를 잘 복제한 차였다. 하지만 벗겨보면 플랫폼은 GM이 1975년에 만든 T-카(쉐보레 쉬베트)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주행도 1970년대 중반의 일본차 같은 느낌이었다. 코일스프링이 튀어나올 듯한 느낌에다 차 앞면은 마치 이가 떨리듯 밀치고 나갈 것만 같아 운전 내내 암울했다. 코너링 중 아주 작은 요철 하나라도 마주치면 비틀리는 느낌에 오버스티어와 언더스티어를 오락가락할 지경이었다. 급제동을 하면 앞이나 뒤 타이어가 잠겼고(둘 중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뒤 타이어는 차를 자꾸만 옆으로 가게 만들었다.

젖은 도로를 달릴 때는 더 위험했다. 급작스러운 클러치와 147마력을 내는 4기통 2.0ℓ 터보 엔진의 끙끙거리는 소음은 휠 스핀을 유발할 정도였다. 그 시기의 마쓰다 RX-7, 토요타 수프라와 셀리카, 그리고 닛산 300 ZX 터보 같은 차와 비교하면 피아자는 아주 용서할 수 없을 최악의 차였다.
 
 
링컨 타운카
 
 
내가 디트로이트에 처음 갔던 때는 1991년이었다. 그해 포드가 주최한 호주 자동차 저널리스트 대표단 일원으로 포드의 다양한 제품과 역량을 볼 수 있는 쇼케이스에 참석했다. 디어본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기자단에게 링컨 타운카를 타게 해준 게 과연 그 쇼케이스 목적에 부합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리 모두 이미 그 전 12개월 동안 토요타의 완성도 높고 조용한 렉서스 LS400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링컨을 타고 나니 과연 포드 임직원이 렉서스를 구경이라도 해봤는지 의문이 들었다. 링컨은 술에 취한 물소처럼 트랙 위를 비틀거렸다. 그리고 V8 엔진에서는 지속적으로 숨 막힌 듯 쌕쌕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메리칸드림을 대표하는 자동차라고 하기엔 너무 격이 떨어졌다.

성공한 독일인들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살 수 있다. 성공한 영국인들에겐 벤틀리라는 옵션이 있다. 하지만 성공한 미국인들은 링컨 타운카 외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도 메르세데스-벤츠보다 싼 게 어디인가. 게다가 이 차는 대형 슈퍼마켓 주차장과도 잘 어울렸다. 당시 젊은 나이였던 나는, 혹시나 포드 이사진이 이 차로 충분하다고 만족한다면 어쩌나 걱정하기까지 했다.
 
 
스바루 XT 터보
 
Heritage Images / Contributor
 
하마터면 독특한 스바루 XT 터보를 마음에 들어했을 뻔했다. 내 생명에 위협을 가하기 전까진 말이다. 날카롭게 꺾어진 외관과 넉넉한 차체, 팝업 헤드라이트는 마치 콘셉트카 스튜디오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고급스러운 스타일은 내부로도 이어졌는데, 특히 아방가르드한 비대칭 2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옆으로 튀어나온 각종 버튼을 갖춘 장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과적으로 이 버튼 장치 때문에 나는 이 차를 멀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시골길에서 상향등을 켜고 시속 96km로 언덕을 내려가 우측으로 돌려는 도중, 갑자기 언덕 꼭대기 너머로 마주오는 차가 튀어나왔다. 나는 재빨리 왼손으로 상향등을 끄려 했지만, 버튼을 잘못 눌러 아예 헤드라이트를 꺼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차선은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헤드라이트를 다시 켜려고 스위치를 찾아 계속 더듬거렸다. 디자인의 흠결은 용서할 수 있지만 만약 디자인으로 인해 운전자가 위험에 처한다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새턴 뷰
 

GM 회장이자 CEO인 로저 스미스는 새턴이 GM을 확 바꿔놓을 거라고 말했다. 1985년 스미스 회장은 회사 설립 67년 만에 만드는 새 디비전에 50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6조2600억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첨단 로봇 제조공정을 도입해 고품질에 저가의 신차를 쉴 새 없이 만들어내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게 새 브랜드의 목표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20년 후(GM은 이 당시까지 총 150억 달러(약 18조7800억 원)를 쏟아부었다) 나는 처음으로 새턴을 타봤고 왜 예전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2006년형 새턴 뷰 레드라인은 보기에도 주행하기에도 아주 싸구려였다. 엄청 멀리서도 패널의 단차가 눈에 띄었고 내부는 합성 소재로 그득했다.
 
그중 디테일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가장 거슬렸다. 트렁크 리드에 삐뚤게 달려 있던 걸쇠가 왜 그리 거슬리던지.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트렁크를 열 때마다 그 삐뚤고 반짝거리는 걸쇠가 마치 슈퍼모델의 앞니에 시금치가 낀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새턴 내부에서는 아무도 이걸 느끼지 못한 걸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만약 신경 쓰였다면 왜 아무도 수정하지 않았을까?
 
 
TVR 타모라
 

2006년 드라마 <더 퀸>의 에피소드 중 어린 찰스 왕자가 아버지가 다니던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톤 학교로 보내지는 장면 기억하는가? 그곳에서 찰스 왕자는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엄격한 교칙을 따라야 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그런 학교가 인격 양성을 위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곤 했다. TVR 타모라를 운전하는 것도 나의 인격을 단련하는 과정 같았다.

1946년 설립된 TVR은 21세기 초반, 예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스포츠카 회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타모라는 2002년에 출시했는데 ABS 브레이크도 없고 심지어 에어백도 없었다. 6기통 3.6ℓ 엔진은 차체 무게 998kg인 이 차에 350마력의 최고출력을 선사했고, 이를 토대로 0→시속 96km 가속은 단 4초 초반대에 끝냈다.

처음엔 괜찮은가 싶었는데 갈수록 스피드 식스 엔진은 신뢰를 잃어갔다. 차체도 부품들이 서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각각 한데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떨어져 나가는 부품도 있었고 아예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접착제와 글라스 파이버 냄새가 진동했다. 완전히 인격 양성을 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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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앵거스 매켄지PHOTO : National Motor Museum/Heritage Images/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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